<본문>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설교>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대할 때는 창조된 만물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창조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를 시작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고, 세상의 창조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의 전부가 아님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 기사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새로운 창조에 대한 예언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서 더렵혀진 태초의 창조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시는 것으로 창조의 완성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시사한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초의 창조는 완성된 창조의 세계를 지향하고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는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의 의미가 아니라 처음의 창조보다 더 나은 영광된 세계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새 창조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첫 사람인 아담이 실패한 죄를 이기신분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를 이긴 승리자라는 영광된 신분에 참여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는 처음부터 빛과 어둠으로 나누어져 시작합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어떤 구도로 흘러가게 될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분명 빛과 어둠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빛의 아들들이 있는 반면에 어둠의 자식이 있습니다. 어둠은 창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세상의 상태였고 빛은 없는 가운데서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빛은 없는 가운데서 있게 된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따라서 빛의 아들들 역시 없는 가운데서 있게 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을 통해서 빛과 어둠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빛에 속한 자는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반면에 어둠에 속한 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한다는 사고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신 후, 둘째 날에는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십니다. 그리고 궁창을 하늘이라고 칭하십니다.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이 한 곳에 모이게 하여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드러난 뭍을 땅이라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십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궁창, 즉 하늘입니다. 하늘이 있게 하시고 하늘과 땅으로 나누시고 물이 모인 것을 바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늘은 우리가 바라보는 공중, 그 하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7절에서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나누었다고 한 것을 보면 궁창 즉 하늘 위에 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그 물은 노아 시대 때 세상을 심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물을 궁창 아래와 위의 물로 나누신 것은 물을 심판의 용도로 사용하시기 위한 뜻을 가지고 계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 9장에 보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으실 것을 언약하시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십니다. 그런데 홍수 후에도 인간은 변함없이 악을 행하는 자로 번성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여전히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물이 땅을 덮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즉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무지개입니다.
홍수 심판을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신 것은 인간의 존재 근거가 인간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우게 하시고 자신의 존재 근거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두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상에 있게 하심으로 무엇이 빛에 속한 자인가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의도에 의해서 홍수 후의 세상은 자비를 아는 인간과 알지 못한 인간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들었던 사건입니다.
술에 취해 벌거벗은 노아를 본 함은 그 사실을 셈과 야벳에게 알렸고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쳐 들어가 옷으로 하체를 덮습니다. 노아가 깨어난 후에 그것을 알고 함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 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홍수 후의 인간은 저주에 속한 자와 복에 속한 자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주에 속한 자는 어둠의 사람이고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복에 속한 자는 빛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고 자비하심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단지 인간을 창조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담긴 인간을 창조하고자 하신 것에 뜻에 두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자로 새롭게 지음 받은 새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선악과를 먹는 것을 두고 보신 것입니다.
빛과 어둠으로 나뉘는 기준에 인간의 행함은 없습니다. 세상이 인간을 판단하고 선과 악으로 나눌 때는 그 행위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아는가 모르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만 참된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은혜와 자비를 모른다면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업적을 쌓았다고 해도 어둠이고 저주에 속한 자로 규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인 것입니다.
11,12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합니다.
열매와 채소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이 있게 하신 땅위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열매와 채소를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심판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무지개를 보면서 깨닫게 되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담겨 있는 새로운 창조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창조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창조 사건에 접근하면 결국 진화론과 싸우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게 되고 창조 사건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창조가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창조를 믿는 신자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이 창조를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창조를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마음에 담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창조 사건에서 자기 존재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보면서 하나님에 의해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의 수중에 뭐가 있는가를 계산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저울질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 136:5-6절을 보면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7-9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큰 빛, 해와 달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뿐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고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