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뜻은 자기를 향하고 자기를 위한 욕망이었을 뿐임을 알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만이 참된 것임을 알게 된 사람으로 새롭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영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중생은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새롭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성령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육과 영을 분별하게 되는 새로운 눈이 뜨이고, 세상을 보는 눈도 세상을 향한 자기 뜻과 욕망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생한 자는 죽은 자입니다. 이처럼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즉 십자가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욕망이 죄라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피 앞에서 인간은 땀 흘리며 괴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 마땅한데 편안한 인생을 꿈꾸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피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 갑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이미 시작된다고 봐야 합니다.
즉 내가 언제 성령을 받았는가?를 따져서 그 시기를 중생으로 시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그 택하심에 의해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일 전체가 신자에게는 중생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하나님의 일 안에서 중생한 새로운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기 때문에 중생에 끝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뜻은 자기를 향하고 자기를 위한 욕망이었을 뿐임을 알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만이 참된 것임을 알게 된 사람으로 새롭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영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중생은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새롭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성령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육과 영을 분별하게 되는 새로운 눈이 뜨이고, 세상을 보는 눈도 세상을 향한 자기 뜻과 욕망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생한 자는 죽은 자입니다. 이처럼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즉 십자가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욕망이 죄라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피 앞에서 인간은 땀 흘리며 괴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 마땅한데 편안한 인생을 꿈꾸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피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 갑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이미 시작된다고 봐야 합니다.
즉 내가 언제 성령을 받았는가?를 따져서 그 시기를 중생으로 시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그 택하심에 의해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일 전체가 신자에게는 중생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하나님의 일 안에서 중생한 새로운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기 때문에 중생에 끝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목사님의 말씀대로면.."구원의 서정" 이 모두가 중생이라고 봐야되는건지요.. 부르심,회개,중생,칭의,성화..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