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부터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생각은 자신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가?로 관심이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생각하시고 예수님을 배우시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자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아갈 때 그 앎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과, 신자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고 그 삶을 자신이 나타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난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 됨을 알게 된 그 앎이 나타납니다. 함께 하는 형제를 자신을 기준해서 판단하지 않게 되고, 실천을 따지면서 '내가 더 낫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을 죄로 인해 죽은 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저주에서 건지신 예수님의 은혜가 가장 크게 다가오고 따라서 세상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바울처럼 배설물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 것으로도 자랑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를 자신보다 못하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에 의해 나타나는 행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까?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행함을 생각하게 되면, 결국 대다수의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행함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어떻게 살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나는 그리스도를 다 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다 알고 믿음도 있으니까 남은 것은 실천이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도 물으셨으니 답을 드린다면 신자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그리스도로 인한 용서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감사가 신자의 생각과 삶을 다스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모든 것이 만족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세요'라고 말씀드려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늘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달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에 붙들려 살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생각은 자신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가?로 관심이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생각하시고 예수님을 배우시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자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아갈 때 그 앎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과, 신자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고 그 삶을 자신이 나타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난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 됨을 알게 된 그 앎이 나타납니다. 함께 하는 형제를 자신을 기준해서 판단하지 않게 되고, 실천을 따지면서 '내가 더 낫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을 죄로 인해 죽은 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저주에서 건지신 예수님의 은혜가 가장 크게 다가오고 따라서 세상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바울처럼 배설물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 것으로도 자랑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를 자신보다 못하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에 의해 나타나는 행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까?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행함을 생각하게 되면, 결국 대다수의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행함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어떻게 살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나는 그리스도를 다 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다 알고 믿음도 있으니까 남은 것은 실천이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도 물으셨으니 답을 드린다면 신자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그리스도로 인한 용서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감사가 신자의 생각과 삶을 다스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모든 것이 만족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세요'라고 말씀드려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늘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달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에 붙들려 살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바른 답변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그은혜에 붙들려 감사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찬바람부는 겨울에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