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18.10.13 15:08

(74강) 엘리후의 정의

조회 수 166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욥 34:1-9http://onlycross.net/videos/job/job-3401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설교>

욥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지식과 이해로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의 내용으로는 고난 받지 않아야 할 사람이 고난 받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신앙의 내용을 기준으로 해서 고난 받아야 할 사람과 받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 분류한다면 당장 현실과 부딪히게 됩니다. 현실은 그러한 기준과는 달리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작위로 선택하여 고난을 안겨준 것처럼 뚜렷한 기준이 없이 전개되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는고난 받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 분류될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고난 받지 않고 있다 하여 고난 받는 자보다 더 낫다거나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나 엘리후에게는 자기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나는 고난과 무관하다는 여유자의 위치에서 욥의 고난을 해석하고 조언하는 것으로 욥을 도와주겠다며 다가올 뿐입니다. 고난과 하나님에 대한 욥의 태도를 고쳐 보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엘리후에게는 신앙인의 정의로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라고 말합니다.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를 알아보자는 것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고집하는 욥의 불의를 증명함으로써 욥으로 하여금 의로운 자라는 말을 취소하고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엘리후에게 있어서 정의는 옳지 못한 것을 지적하여 바르게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5-9)라는 말로 욥을 책망하는 것도 엘리후에게는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후의 이러한 생각은 16,17절의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따라서 욥을 다스리심으로써 정의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후도 욥의 고난을 죄로 인한 것으로 본 것이고 죄에 대한 징벌을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를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죄에 대한 징벌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과연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라지고 없다고 해야 할까요? 욥의 말처럼 불의한 자도 평안하게 살고 죽는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이 정의를 세우신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이며 불의는 무엇입니까? 아마 평소에는 이런 생각 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는 무의식적으로도 정의와 불의에 대한 행동이 도출됩니다. 가령 주일 예배에 빠진 이웃이 있다면 그것을 믿음이 없는 불의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에 만나게 되면 주일 예배에는 빠지면 안됩니다라고 지적 합니다. 이것이 무의식 가운데 나오는 정의와 불의에 대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는 우리의 이해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에 빠진 것이 몸이 아파서였다면 그것도 불의일까요? 몸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괜찮다고 한다면 결국 불의는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따라서 정의도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정의의 한계입니다.

 

 

그러며 하나님의 정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33:15-16절에 보면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한다는 것이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예언대로라면 이 땅은 예수님에 의해서 정의와 공의가 실행되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바라볼 때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 현실은 정의와 공의가 실종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정의보다는 불의가 오히려 힘을 가지고 활동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정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이해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죄를 범한 존재로 규정하셨습니다(33:8). 이스라엘이 죄를 범한 존재라는 것은 이 세상 자체가 죄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역시 자기의 죄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 잘 섬기면 구원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열심과 의를 향한 노력이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백성으로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 또한 자신의 착함으로 복을 받는다는 사고방식에 있음을 생각하면 세상이든 이스라엘이든 자기의 힘으로 복과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동일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드러난 것은 세상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죄를 죄로 드러내시고 죄라고 하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보게 하시는 것이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본래 자리를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자기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엘리후의 조언에 따라 욥이 의롭다는 말을 취소하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친구들과 엘리후에게는 만족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욥이 정신을 차리고 바른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무의미한 것일 뿐입니다. 옳은 말을 한 것이 그가 옳다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1, 2장에 보면 욥이 자식과 재산 모든 것을 잃는 재앙을 겪었을 때 입술로도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 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다’‘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않겠느냐라는 옳은 말로 그의 신앙 수준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신의 생일까지 저주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식과 재산과 건강을 잃어버린 욥은 그가 최후의 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욥의 고난 기간이 30년이라는 계산이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라 해도 고난의 기간이 짧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되는 고난에서 욥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실을 통해서 욥을 미처 알지 못했던 깊은 신앙의 세계로 끌어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무지한 존재일 뿐이라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이기에 엘리후가 생각했던 정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정의를 말하는 엘리후 또한 자신의 본래 자리에 대해서는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욥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상실되는 고난의 현장이며 그럼에도 십자가를 소망하게 하는 것이 믿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알 수 없는 믿음에 의해 붙들려 가는 것이 신자입니다. 이러한 신자 됨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가 우리에게 실현된 증거입니다. 결코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됨을 지적하고 책망하여 그의 말과 행실을 고치는 정의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 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바라볼 뿐입니다.

 

Chapter 74

 

Elihu’s Justice

 

Furthermore Elihu answered and said,

Hear my words, O ye wise men; and give ear unto me, ye that have knowledge.

For the ear trieth words, as the mouth tasteth meat.

Let us choose to us judgment: let us know among ourselves what is good.

For Job hath said, I am righteous: and God hath taken away my judgment.

Should I lie against my right? my wound is incurable without transgression.

What man is like Job, who drinketh up scorning like water?

Which goeth in company with the workers of iniquity, and walketh with wicked men.

For he hath said, It profiteth a man nothing that he should delight himself with God. (Job 34:1-9 KJV)

 

(Sermon)

 

There is no way for human mind to understand why Job is in the afflictions because he is not the one who deserves it in the manner of faith. We can encounter a stumbling stone if we try to distinguish those who are in afflictions and who aren’t in terms of the life of faith because the reality doesn’t look accordingly.

 

The reality seems so random that anyone unluckily gets afflictions without any criteria because all are done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One thing for sure is that there is no one who doesn’t deserve affliction on earth. Thus, even if one is not in afflictions now, it doesn’t mean one is better than those who are in afflictions or one is in a special relationship with God.

 

However, Job’s three friends and Elihu don’t have such point of view. They all stand at the position of judging Job as if they had nothing to do with afflictions while interpreting his difficulties and giving him advice. It is the righteousness of Elihu as a believer that he tries to change Job’s attitude toward God and his afflictions.

 

In Verses 2 to 4, it says, “Hear my words, O ye wise men; and give ear unto me, ye that have knowledge. For the ear trieth words, as the mouth tasteth meat. Let us choose to us judgment: let us know among ourselves what is good.”

 

It could be understood that Elihu, righteous, would make Job, unrighteous in his stubbornness, confess Job is unrighteous by comparing the two between Job and Elihu. That is, to Elihu, the righteousness is to point out what’s wrong and correct it.

 

In this sense, Elihu is pursuing justice while criticizing Job by saying, “For Job hath said, I am righteous: and God hath taken away my judgment. Should I lie against my right? my wound is incurable without transgression. What man is like Job, who drinketh up scorning like water? Which goeth in company with the workers of iniquity, and walketh with wicked men. For he hath said, It profiteth a man nothing that he should delight himself with God.”

 

We can see his such thought in Verses 16 and 17, “If now thou hast understanding, hear this: hearken to the voice of my words. Shall even he that hateth right govern? and wilt thou condemn him that is most just?”, meaning that God loves justice, so He will establish it by governing Job. By looking at it, we can find that Elihu also views Job’s affliction is of his sins and the work of God is to punish him to show God’s righteousness.

 

Yet, Elihu has a misunderstanding of the righteousness of God by far. If the righteousness of God were shown through God’s punishment, how would we have to understand the reality? Would we have to say there is the righteousness of God or it has disappeared? Isn’t it true that it is hard to say that since the wicked live happily and die in peace in the world like Job had said?

 

What do you think righteousness and unrighteousness are? You might be living without taking a deep consideration of such. Yet, we unconsciously show our behaviors regarding righteousness and unrighteousness. For instance, if we see one who didn’t come to the worship service on the Lord’s day, we consider one lacking faith, saying “you shouldn’t miss it on the Lord’s day” when we meet one the following week. This is our unconscious judgement regarding righteousness and unrighteousness.

 

Yet, righteousness can’t be defined by our own understanding. What if one couldn’t make it because of severe illness? If that were OK, unrighteousness would be defined by situations. Thus, righteousness would be the same thing. This is our limitation of the understanding of righteousness.

 

Then, how should we understand the righteousness of God? In Jeremiah 33:15-16, it says, “In those days, and at that time, will I cause the Branch of righteousness to grow up unto David; and he shall execute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land. In those days shall Judah be saved, and Jerusalem shall dwell safely: and this is the name wherewith she shall be called, The LORD our righteousness.”

 

The prophet says that the Branch of righteousness shall execute judgement, fulfilled by the coming of Christ. If so, the righteousness and justice of the world has been accomplished. Do you think the world seems so when you take a look at it? It is true that it looks non-existence of righteousness and justice in the world. It is full of unrighteousness. However, such view is of our misunderstanding of righteousness.

 

God calls the Israelites sinners in Jeremiah 33:8, meaning all in the world are sinners. Yet, the people in the world are unaware of it. The Israelites are in the same position, thinking that they will be saved if they serve God in their devotion. They assume that God is pleased if they have zeal for God and efforts for righteousness. Knowing that people in the world think their good deeds will bring them blessings, we can learn that whether the Israelites or non-Israelites, all are alike, having mind that salvation and blessings can be obtained by their own efforts.

 

To such world, Jesus Christ came, revealing the world itself is sin, which He exposed by being crucified. This is the righteousness of God. It is the work of righteousness of God that He puts sin at where it is supposed to be and makes men be able to see where they are. It can’t be merely fulfilled by one, saying, ‘I am a sinner’ because one is at a total loss when realizing where one is supposed to be.

 

If Job had accepted Elihu’s words and said, ‘I am unrighteous before God’, would it be all fine? He would seem good to his three friends and Elihu, thinking Job has been changed by receiving their advice. Yet, it would be meaningless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because saying something right doesn’t justify the person.

 

In Chapter 1 and 2 of the Book of Job, we can see Job sinned not with his lips. He said,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th taken away;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showing us the life of his faith. Such person came to resent God and curse the day of his birth, abandoning what’s left in him, his life of faith, revering God, after having lost his children, possessions and health.

 

Some calculate the period of his afflictions as thirty years. It might not be accurate but it is for sure it wasn’t a short period of time. In such time, there is nothing left in Job. God is leading such person in profound depravity like Job into a deep world of faith. That is for Job to see himself absolutely ignorant and powerless before the presence of God. Since this is the work of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Job, we can say it is radically different from Elihu’s point, not knowing his original position himself.

 

Through meditating the Book of Job, we can learn that it is faith that we lose all we would like to pursue at the cross, the afflictions to us, and we would come to love the cross in spite of that. Believers are those caught up by such power, unknown to the world. Giving thanks to God is the evidence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alized to us. It is far different from so-called righteousness that one points out others’ wrong doings and correct them. That’s why we, believers, do nothing but look up to the righteousness of God!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8 욥기 (92강) 욥의 결말 신윤식 2019.02.16 5439
607 욥기 (91강) 욥에게 가서 신윤식 2019.02.09 1491
606 욥기 (90강) 욥의 회개 신윤식 2019.02.02 2260
605 욥기 (89강) 다 내 것이니라 1 신윤식 2019.01.26 16990
604 욥기 (88강) 그리하면 신윤식 2019.01.19 1591
603 욥기 (87강) 욥의 대답 신윤식 2019.01.12 1767
602 욥기 (86강) 하나님의 자유 신윤식 2019.01.05 2782
601 욥기 (85강) 들나귀의 자유 신윤식 2018.12.29 1807
600 욥기 (84강) 네가 아느냐 신윤식 2018.12.22 1603
599 욥기 (83강) 네가 신윤식 2018.12.15 2719
598 욥기 (82강) 여호와와 하나님 신윤식 2018.12.08 5547
597 욥기 (81강) 하나님의 명령 신윤식 2018.11.30 1554
596 욥기 (80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24 1491
595 욥기 (79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17 1489
594 욥기 (78강) 기다릴 뿐이라 신윤식 2018.11.09 2927
593 욥기 (77강) 옳은 듯 옳지 않은 신윤식 2018.11.03 1643
592 욥기 (76강) 엘리후의 요구 신윤식 2018.10.27 1441
591 욥기 (75강) 전능자의 공의 신윤식 2018.10.20 1531
» 욥기 (74강) 엘리후의 정의 신윤식 2018.10.13 1662
589 욥기 (73강) 중보자와 대속물 신윤식 2018.10.06 829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