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9.06.29 15:46

(110강) 하늘에 속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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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45-49http://onlycross.net/videos/co1/co1-15454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5.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설교>

바울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과연 어떤 사람이 알아들을까?’입니다. 바울은 분명 예수를 말하고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부터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하기도 난해하다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수준 높은 복음을 말하는데 반해 우리의 신앙이나 성경 이해력은 아직 어린애와 같기 때문일까요?

 

 

바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를 저는 우리가 바울이 바라보는 것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만 보는 반면 우리는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를 본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나를 통해서 예수를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에게 쓸모 있는 예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인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우리는 천국가기 위해서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예수를 보는 것일까요? 자기를 보는 것일까요? ‘예수를 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이 마치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의 말 같지만 실은 자신에게 초점을 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말일 뿐입니다.‘예수를 잘 믿으면라는 말은 결국 내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믿는 자가 힘을 써서 그 천국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예수를 보게 되면 천국은 나에게 찾아오는 세계입니다. 인간이 천국을 그리워하고, 천국에 가고 싶어서 모든 노력에 최선을 다한다 해도 인간에 의해 결정되는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은 찾아오는 세계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신 사람들에게 천국이 찾아가는 것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천국 백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현실입니다.

 

 

이런 말을 알아들을 사람은 없습니다. 기존의 세상에서는 도무지 들을 수 없고 듣지도 못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없는 방식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예수를 보게 되면 천국에 들어갈 가능성은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인간이 자기 멋대로 천국을 상상하며 설친 것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왜 천국이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는지, 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자에게만 허락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21:18-20절에 보면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을 두고천국은 여러 보석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그것이 육의 몸의 생각입니다. 보석은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치관 그대로 성경을 읽기 때문에 천국이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것으로 이해하면서 마치 재벌이 집을 호화롭게 꾸며놓은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천국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상상되는 것일 뿐이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고방식에 어울리는 곳은 지옥일 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석은 신자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대우를 받았든 천국에서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세상에서는 돌이었다가 천국에 가서 보석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서부터 보석으로 존재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빛을 가진 보석으로 존재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자 됨에 대해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43,44)고 말한 것입니다.

 

 

본래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은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입니다. 우리가 나름 신앙을 내세우며 여러 가지의 일을 실천하고 도덕으로 옷 입었다 할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한다 해도 우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가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으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처럼 세상에서 빛이 있는 보석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로 부름 받은 자의 참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이 현실로 인정되지 않고 외면 받습니다. 이 현실에 대해 말하면 자꾸 그것 말고라며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현실을 자신과 상관없는 비현적인 것으로 거부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 문제를 끄집어냅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육의 몸과 관련된 것만 현실로 간주하며 그것을 자기 인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다고 고집하는 것을 보면 허망한 세계를 산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존재하는 신자의 현실을 말합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45,46)는 내용도 우리가 육신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생생한 현실의 문제입니다.

 

 

48,49절의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는 말 역시 생생한 현실입니다. 우리가그런 현실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발하고 거부한다 해도 우리는 이 현실 속에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만 이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놓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담을 만들 때는 생령의 상태였습니다. 생령의 상태라는 것은 죽음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말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죽음이 없는 생령의 상태가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죽음이 있는 몸으로 지음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 없는 상태는 몸의 죽음이 없다는 것이지 우리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아담을 생령이 되게 하셨다면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아담과 다른 몸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죄 있는 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죽음으로 작용하게 된 인간의 현실이 몸이 죽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 없는 상태의 생령이 된 아담의 몸으로도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까?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죄를 짓지 않은 상태의 몸이기에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만들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다른 세계인 천국은 죄를 짓지 않는 몸이 아니라 죄를 용서 받은 몸만 허락되는 세계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천국에서는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희생의 은혜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신자가 보석으로 대접 받는 것입니다.

 

 

죄 없는 몸으로도 천국에 갈 수 없다면 신자는 죄를 짓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한다거나 윤리와 도덕으로 바른 삶이 있는 신자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결국 이러한 사태는 천국을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하는 천국에 빠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말은 우리에게 생생한 참된 현실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마지막 아담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이라면 살려주는 영이 함께함으로 산 자가 된 것입니다. 이들이 신령한 사람이고 하늘에 속한 자들이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부활했을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영으로 오신 지금 현재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우리의 참된 현실에 대해 말한다고 한 것입니다.

 

 

8: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누구든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면 그는 살려줌을 받은 자입니다. 즉 죽은 자에서 산 자가 된 것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성령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기에 세상이 자랑하는 것들은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던져지는 영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8:10-11절에 보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이나 로마서에 말한 내용이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죽은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살고자 하는 모든 일은 헛수고라는 뜻이 됩니다. 천국은 살려주시는 예수님의 일에 포함되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그 일이 감사가 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일에는 마음 두지 않고 자신이 행한 일로 자기 이름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은 종교단체에서 활동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육의 몸으로는 썩어지면 됩니다. 욕된 몸으로 살면서 무시 받지 않고 대접 받으며 살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한 몸이니 병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현실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으로 오셨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은 늘 육의 몸으로만 향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은 어떻게 일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육의 몸에만 관심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심령을 고쳐서 육이 몸에 관심두지 않는 신자 되게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결국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의 일을 성령의 일로 왜곡하여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할 일은 세상에서 육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도무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자신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 하고, 양심껏 살고, 도덕과 윤리에 맞게 착한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신자답다는 칭찬을 받을 때,‘이런 나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어떤 인간도 자신의 이름과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을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신자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46절에서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에 대한 자각이 없이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것은 없습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처럼 육의 몸이 먼저입니다. 썩어지고 욕되고 약하고 흙에 속한 육의 몸을 자각함으로써 육으로 행한 나의 것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행하시고 베푸신 하나님의 것이 나에게 뜻이 되고 소원이 되는 그것이 신령한 사람이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은 것입니다.

 

 

48,49절을 보면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은 예수님의 형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형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형상은 흙에 속하여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흙에 속한 자이 형상에는 비할 바가 없는 빛나고 귀한 형상인 것입니다. 이처럼 빛나고 귀한 형상을 입은 신자가 있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천국을 여러 보석으로 장식된 곳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자의 형상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은 신자라면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신자는 해 같이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로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은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몸으로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신부인 자기 백성을 위해서입니다. 신부와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영광으로 몸으로 오시는데 신부를 육의 몸의 상태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은 영광된 존재,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셔서 마지막 때에 신부를 영접하시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만날 때, 즉 신부가 신량의 영접을 받을 때 신부가 신랑에게 내 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하늘로 가면서 준 것인데 바로 십자가의 피입니다. 예수님이 신부에게 남겨준 희생의 은혜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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