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5.09 19:46

(27강) 허탄한 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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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13:1-7http://onlycross.net/videos/eze/eze-13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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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4.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5.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에서 견디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6.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7.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설교>

지난 주일에 신자를 역사가 아니라 묵시를 사는 사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역사를 현실로 풀이하면 신자는 현실이 아니라 묵시를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묵시와 역사, 즉 묵시와 현실은 우리에게는 늘 갈등의 요소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묵시보다는 현실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서 목도하게 됩니다. 묵시는 보이지 않고 지금 당장 체험되는 것이 아니지만 현실은 언제나 생생한 삶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묵시를 산다는 것은 굉장한 능력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사는 것과 다르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미 완성된 세계를 산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세계에서 묵시를 산다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역사의 세계를 내가 산다면 결코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 즉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러므로 누구든 묵시를 산다면 그것은 그가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를 장악하여 사는 것이기에 말씀이 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묵시를 사는 사람은 말씀을 현실의 삶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말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묵시를 사는 신자는 말씀에서 현실이 아닌 완성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릴 것은 묵시는 구약에서만 사용된 용어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묵시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묵시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세상의 종말까지 모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완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묵시를 사는 것이고 종말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정되어진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말씀 안에서 이 길이 어떤 길인가를 보게 되고 이 길의 끝이 완성된 영광의 삶이며 이것이 세상 끝날까지 변치 않으실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여기에 우리의 기쁨과 고백과 나의 뜻과 소원을 둔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러므로 신자가 묵시를 살아가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된 것을 말씀에서 알게 되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마치 여호와가 하신 말씀인 것처럼 속이며 말하는 것을 허탄한 묵시, 거짓된 점괘라고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장은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향한 경고의 내용입니다. 경고를 받는 대상자인 선지자들은 예언을 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3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예언으로 위장했던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한다는 것이 무었을 말하는 것일까요? 쉽게 말해서 목사가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목사 자기 입장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역사를 사는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사는 사람의 말과 묵시를 사는 사람의 말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동일한 성경 말씀을 가지고도 극명하게 다른 말이 나오게 됩니다. 가령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는 말씀이 역사의 시각과 묵시의 시각에서 어떻게 달라질까요? 눈치는 채셨겠지만 역사, 즉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내게 능력을 주시는 예수 안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든 관심은 현실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이라는 말에 괄호를 치고 거기에 오늘 나에게 필요하고 있어야 하는 자기 소원을 넣어서 하나님 앞에 구하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 아들이 수능시험을 잘 보게 될 것을 믿습니다와 같이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사는 사람들이 성경을 대하고 이해하는 전형적인 생각입니다.

 

 

이처럼 현실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매력적인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6절의 말씀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허탄한 것이며 거짓된 점괘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묵시를 살아가는 사람은 사도와 동일하게 묵시 안에서 그 말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이 서신을 섰을 때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할 때 가장 급한 것은 바울이 옥에서 풀려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바울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어져야 많은 사람들을 흡족하게 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참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는 말을 했습니다. 비참이라는 형편이 자신의 길을 방해할 수 없고 풍부하다고 해서 역시 자신이 가는 길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할까요? 그것은 바울이 지금껏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가야 할 길의 능력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시작이 자신이 아니고 세상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자신이 옥에 갇히고 비참에 처해진다 해도 하나님이 바울을 세워 하고자 하신 그 어떤 일도 방해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묵시 안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말로 들릴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역사, 현실이 삭제되고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묵시 안에서 그리스도의 완성을 바라보고 그 완성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아멘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문제는 무엇이 참된 묵시고 무엇이 허탄한 묵시인지 외적으로 드러나는 표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면 어리석은 선지자의 말은 듣지 않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따른다면 동일한 화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기의 심령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데 누가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증거는 그의 말에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말이 옳다고 해서 그가 참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보면서 묵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증거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말을 들으면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본인이 붙들려서 하는 말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는 서로의 뜻과 생각과 마음이 오직 그리스도 한분으로 통일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딤후 4:3-4절을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말 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그것은 허탄한 이야기의 내용이 사람들이 원하고 이루고 싶어 하는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선지자가 말하는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가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치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 생활 잘하면 하나님이 백배 천배로 갚아주신다는 말이 그대로 자신에게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점쟁이가 점을 치고 그 결과로 말하는 점괘라는 것은 모두가 거짓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좋은 점괘가 나오면 그 점괘대로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사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모든 자기 현실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진리는 관심의 밖의 문제일 뿐입니다. 진리를 믿는다고 하나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쳐내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진리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그 지시를 따라 살게 하십니다. 그 길에 고난이 있다고 해도 우리의 완성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능히 가게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실에 매인 거짓된 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말은 당연히 허탄한 묵시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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