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6.13 17:28

(32강) 무가치한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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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15:1-8http://onlycross.net/videos/eze/eze-1501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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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7.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8.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설교>

여러분은 신자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엇이 신자를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청렴한 생활일까요 아니면 선한 일일까요. 사람들은 이 문제에서 많은 착각을 합니다. 세상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있어야 가치 있는 신자로 인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스스로 가치 있는 신자가 되고자 하고 결국 자신의 가치 향상이라는 욕망으로 움직이는 죄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치 있는 교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교회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일에 힘쓰는 것이나 세상에 대해서도 가치 있는 신자로 돋보이기 위해 힘쓰는 것들 하나하나가 욕망에 의한 움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신자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알아주고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자 하는 것들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신자의 존재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가치 있는 신자가 되게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신자 된 여러분께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여러분을 가치 있는 신자가 되게 하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헛된 가치에 마음을 두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삿 9장에 보면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에 서서 세겜 사람들에게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감람나무에게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고 하자 감람나무가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삿 9:9)라고 답합니다.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자신들의 왕이 되라고 하자 무화과나무는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삿 9:11)라고 답하고 또 다시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라 하자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삿 9:13)라고 답합니다.

 

 

왕 되기를 거절한 세 나무는 각기 나무로서의 자기 영광을 왕 되는 것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역할에 두었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가치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에 거하는 것이 곧 자기 영광임을 알았기에 왕 됨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가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유혹에서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시나무는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삿 9:15)고 말합니다.

 

 

가시나무가 세 나무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쓸모없는 나무일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왕이 되는 자기 영광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고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사기의 내용을 보면 포도나무는 포도주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포도나무의 가치는 열매에 있습니다. 만약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할 포도주를 생산할 수 없게 되기에 다른 여러 나무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가시나무보다 나을 것이 없게 됩니다.

 

 

포도나무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릇을 걸 못 조차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에 던져질 땔감이 될 뿐입니다. 또한 5절에서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고 말한 것처럼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온전할 때도 쓸모가 없는데 불에 탄 후에는 더 그러할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루살렘을 심판하신 이유입니다.

 

 

14장을 보면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볼 때에 그들에 의해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3절)고 말하는데 이처럼 예루살렘에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15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포도나무의 가치는 열매로 말미암습니다.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로는 무엇을 만들 수도 없고 사용처도 없는 말 그대로 아무 짝에 쓸모없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이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뽑아서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이러한 포도나무로 빗대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껏 살펴 본 대로 단순히 쓸모없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또 심판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은 열매 없는 이스라엘에 열매가 있게 하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생각하시면 오늘날 신자에게 하나님으로 인해 맺게 되는 열매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열매가 어떤 과정 속에서 맺게 되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으로 현대 교회를 뒤 덮고 있는 가짜 열매가 가짜라는 것 또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16:2절을 보면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루살렘이 얼마나 가증하고 비참하고 부끄러운 존재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그토록 가증한 존재라면 하나님의 말씀처럼 심판이 마땅하고 또 심판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을 낱낱이 드러내며 자신의 가증함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매있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보면 열매는 자신의 가증함을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가증한 존재라는 사실에 전혀 눈을 뜨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만 붙들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는 무엇 하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다른 민족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심판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마 3:8-10절을 보면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가 언급되는 것은 나쁜 열매도 있다는 것인데 과연 좋은 열매는 무엇이고 나쁜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좋은 열매는 어떻게 맺어지는 것일까요? 현대 교회를 보면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신자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좋은 열매 역시 기독교 상식선에서 인정되는 것으로 전도의 열매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열매에 대해서 이런 방향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열매를 맺는 것은 본인의 일이고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서는 본인의 믿음과 열심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열매 아닌 열매가 열매로 인정되고 열매가 보이는 사람은 그만큼 신앙이 인정되는 폐단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라면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매 맺는 포도나무가 되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열매가 없으면 쓸모없는 나무일뿐이어서 불에 던져질 것이니 열매를 맺어 쓸모 있는 나무가 되어라는 식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이 같은 내용의 권면을 접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열매는 우리의 능력으로 스스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 7장에 보면 열매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17-20절)

 

 

세상에는 좋은 나무로 인정될 나무는 없습니다. 선이 나올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모든 나무는 못된 나무일뿐입니다. 좋은 나무는 예수님뿐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열매는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께 속한 백성들에게서만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이기에 못된 나무에게서 맺어지는 나쁜 열매와는 구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으로 인해 맺어지는 열매라면 그것으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을 한다 해도 생명과는 무관한 것이기에 자기가 한 일을 나타낼 이유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거짓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주의 이름으로 행한 일을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불법을 행하는 것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루살렘을 심판하심으로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또한 어떤 예루살렘을 원하시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자신들이 다른 모든 이방 나라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무엇에도 쓸모없는 존재일 뿐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민족으로 이방 나라보다는 더 낫고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열매 없는 포도나무로 간주한 것입니다.

 

 

열매는 나무와 연합된 관계에서 맺어집니다. 즉 아름다운 열매는 좋은 나무와의 연합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연합하여 나무에게 속한 존재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가증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즉 심판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적 실체에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과 연합의 관계로 끌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 재앙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의 사건이 되는 것이고, 이것을 알았기에 재앙에 대해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아무리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으니 심판을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은 우상을 섬기지 않으니 심판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떳떳해 하고 자신의 열심과 노력으로 창출해 낸 열매로 스스로를 나타내고 이름을 높이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복음을 잘 아는 것처럼 은혜와 십자가를 떠들고 있으니 이것이 자신의 쓸모없음을 외면한 채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힘쓰는 종교인의 모습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께 쓸모 있는 신자 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미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성취되었기에 우리가 쓸모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가치는 무엇으로 드러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시고 부르시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 있게 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알면 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이토록 짓밟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몰랐던 것에 대한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으로 자신들을 받아주셨기에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맺게 하시는 열매입니다. 그리고 이 열매로 인해 이스라엘은 가치 있는 존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신자를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이 맺게 하신 열매이기 때문에 그 열매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해야 열매가 맺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이 잘못된 길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증한 존재이고 부끄러운 자일뿐입니다. 오히려 내가 행한 것으로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으로만 가득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나의 가증함을 보게 하시고 심판이 당연함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도 부끄러운 자로, 쓸모없는 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열매가 여러분을 가치 있는 신자로 세상에 존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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