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5.08.08 18:13

(40강) 주의 길의 공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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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18:21-32http://onlycross.net/videos/eze/eze-18213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1.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25.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6.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29.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30.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설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이 유행한 것은 재앙과 고통이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 조상의 죄로 인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3절)고 말씀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속담을 쓰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일까요? 이 속담을 말하는 사람마다 죽이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벙어리가 되게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속담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하심으로 속담을 쓰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속담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모든 재앙과 고통이 자신들의 범죄로 인한 것임을 알았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범죄 한 영혼에게 그 죄를 물으시는 분이시고 이스라엘의 재앙 역시 그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합니다.

 

 

죄가 전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의가 전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의로 살고 자기의 의로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재앙과 고통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음을 깨닫고 재앙과 고통으로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죄를 모르기 때문에 속담을 만들어 재앙과 고통이 공평하지 않다는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29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의 길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으로 말은 하지만 행하시는 일들이 공평으로 다가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자신의 행함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그 보상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한 분으로 비춰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나라가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이방 나라에게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온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으로 믿는 것은 어렵다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들이 겪고 있는 재앙과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고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시면서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공평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공평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 중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돈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간관계에도 치우치지 않을 사람이 있기가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자신에게 치우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자신에게 치우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공평치 않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치우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펼쳐지지 않은 모든 일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 또한 공평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처한 현실 또한 그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자신들 중심으로 일하시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들으며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하나님은 자신들을 이방인보다 더 못한 존재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조상의 죄를 자신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으로 여긴 것이고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한 대로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을 섬겼으니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미워하시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요?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는 아직 나지도 않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않았을 때 이미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된 일입니다. 이것이 과연 공평하다 생각됩니까? 이런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문하는 것은 ‘그럼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을 자로 규정된 사람은 불쌍하지 않습니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할 자로 정했다면 어떻게 살아도 구원 받고 미워할 자로 정했다면 아무리 믿음으로 살아도 지옥가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고 그런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처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무지한 까닭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나기 전에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난 후에 그 행위를 보고 택하셨다면 과연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로 택함 받을 사람이 있을까요?

 

 

지구의 인구가 70억쯤 된다고 하는데 단언컨대 그들 중 누구도 행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로 택함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아담 이후로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착각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앙과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존재일 뿐입니다. 따라서 재앙과 고통이 당연합니다. 이것을 안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에게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힘에 붙들려서 꼼짝을 못하고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현실은 이방인보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참하게 짓눌려 삽니다.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현실에서 이방인들로부터 조롱도 받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서 조차 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 고통을 당한다는 말까지 듣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바벨론으로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일에 마음을 두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현실을 부당한 것으로만 바라봅니다. 받지 않아야 할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이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악함이고 심판은 당연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악한 존재이기에 반드시 죽는 것이 당연한데도 하나님이 죽이시는 것을 조상의 죄를 자신들에게 전가시키는 부당함으로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에게 치우친 공평하지 못한 생각인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셔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우리가 요구할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해 보세요’라는 요구를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마치 자신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현실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행한 것에 비하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공평하지 않은 자기 길로만 가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21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27절에서도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고 말합니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죄에서 돌이켜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이라 할지라도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가증한 일을 행하면 그 허물과 죄로 죽는다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24, 26절).

 

 

악인이라 해도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산다고 합니다. 반면에 의인이라 해도 범죄하고 가증한 일을 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 아래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설사 오늘 의를 행한 의인이라 해도 내일 악인이 행하는 가증한 일을 행하면 그 죄로 죽는다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 아래 자기 의로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또한 악인이 죄에서 돌이켜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 할지라도 그가 그의 평생에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의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공평하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심판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고 말합니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의에서 떠나 범죄 하면 그가 행한 공의는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의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지금의 허물과 죄는 생각하지 않고 행한 공의만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공의를 행한 행함에 합당하게 대접해 주실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설사 의인이라 할지라도 오늘 범죄 했다면 공의에서 떠난 것으로 여기시고 그의 공의로운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이러한 공평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행한 의를 기억합니다. 때문에 현재의 재앙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행함을 기억하시고 행한 대로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고 하시지만 스스로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31절)고 하지만 누가 스스로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죽음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길로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무능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행함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대로 하실까요? 하나님은 말씀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함에 대해 그대로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죽을 자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행한 인간은 죽을 자인데 죽을 자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을 자인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시고 죽을 자인 우리를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정의고 공평인 것입니다. 21,22절을 보면 악인이 죄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그 범죄 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종의와 공의를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범죄 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의 의를 기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를 기억한다면 하나님은 ‘의인이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면 죽는다’는 원칙으로 대하실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을 공평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넘치는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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