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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5:5-7

고후 5:5-7http://onlycross.net/videos/co2/co2-050507.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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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설교>

기독교가 열심히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 중의 하나가 믿음과 삶의 일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삶으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누구도 이러한 말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 즉 삶으로 나타나고 증거 되어야 하는 것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굳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그리스도인에게 믿음과 삶의 일치는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날마다 드러나고 확인되는 것은 믿음과 삶의 일치가 아니라 불일치된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기독교인이 이해하고 있는 믿음과 삶의 관계에는 깊은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민과 갈등을 안겨주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다면 삶 또한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어떻게 하면 믿음과 삶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고민하지만 결국 자신의 부족과 믿음 없는 탓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는 왜 이런 수준 밖에 안되나’‘나는 성령 받지 못한 믿음 없는 자인가?’라는 자책과 함께 내면의 자기 분열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믿음과 삶의 일치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가령 빌 1:27절에 보면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서 실천되어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믿음과 삶의 일치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삶이 일치 되지 않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되면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행함, 즉 삶으로 나타나고 증거 되어야 한다는 소위 믿음과 삶의 일치론은 고민과 갈등만이 아니라 비난과 판단으로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믿음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타인을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울을 향한 고린도 교회의 비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도 수시로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몇 주 동안 코로나19 문제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배당 사용을 중지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도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계속하는 교회들을 향해 세상은 비난을 퍼붓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할 교회가 이웃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결국 믿음과 삶에 대한 기존의 이해 속에서 믿음과 삶의 문제가 서로 충돌되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리는 주일성수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의 봉사와 이웃 사랑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실천으로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예배라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코로나 감염이 되어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배를 지키기 위해 이웃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고민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결과일 뿐입니다.

 

 

바울은 7절에서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과 보는 것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은 삶으로 실천되어 나타나고 증거 되어야 한다는 말과 충돌됩니다. 삶의 실천은 곧 보는 것으로 행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삶의 일치를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닌 보는 것으로 행한다는 결론이 됩니다.

 

 

저는 지금 믿음과 삶은 일치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여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의 헛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몇 가지의 실천을 근거로 해서 믿음을 판가름 하겠다는 것 자체가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는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우리에 대한 판단은 사망의 몸이라는 것뿐입니다. 선한 것이 나올 수 없고 죄만 토해내는 죽음의 존재, 이것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유일한 판단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이 판단 위에서만 진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잘못은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것에서 찾는 것입니다. 물론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증거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 전혀 증거 같지 않은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되고 외면 받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시며 믿음으로 행하는 자와 보는 것으로 행하는 자의 차이를 유발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 신앙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행한다는 증거가 자신에게서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이 보는 것으로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윤리와 도덕적인 행실을 믿음과 연결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사는 것을 정당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윤리와 도덕을 사도다움이나 믿음을 보여주는 도구로 삼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는 것으로 증거 되고 확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중요한 것은 그 믿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구원될 수 없는 죄인으로 판정하고 그 길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시고, 구원될 수 없는 자를 구원하신 은혜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믿음과 삶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은 예수를 죽인 죄인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시작하겠다는 의도에 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라는 것보다 좀 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드러날 존재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용서와 구원을 명목으로 죄인이 아닌 구원 받은 자다운 삶의 실천에 믿음의 의미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십자가와 분리된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분리된 새로운 시작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열심과 믿음으로 의를 실천하여 신자다움을 보여주는 길로 가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은혜의 사역으로 고정해 놓고, 예수를 믿는 자는 은혜 받음에 보답하는 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실천하고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결국 예수님의 의가 아닌 자기의 의를 증거 하는 길로 가는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는 것으로 행하고자 하는 의도는 자기를 증거 하는 것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자 됨이 어떻게 증거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 문제에서 먼저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 믿는 자로 인정해 주는 것과 신자 됨의 증거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신자를 예수 믿고 천국가기 위해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예수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니까 예수 믿는 자는 이웃에게 해를 끼치면 안된다는 것이 신자와 교회를 향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속에서 예배당에서의 예배를 강행하는 것을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규정하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고후 13:4-5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약한 자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계신 것처럼 사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와 함께 산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에게는 다른 힘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울에게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기도하여 믿음의 능력을 받아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일까요? 이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보는 것으로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 됨은 자신을 죽어야 할 존재로 바라보며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만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신자 됨을 세상이 과연 이해하고 인정할까요? 오히려 세상이 인정하는 신자 됨에 뜻을 두는 것이야 말로 세상으로 바라보며 보는 것으로 자신을 증거 하고자 하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바울은 5절에서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합니다.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는 것은 고후 1:22절에서도 언급한 내용인데 누구에게든 성령이 임했다면 그는 구원 받은 자입니다.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되었음을 증거 하는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면 우리는 행함을 구원 받은 보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합니다. 또한 행함으로 성령 받음의 여부를 확인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다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함이 아닌 예수님의 다 이루신 행함만 높이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세계는 성령으로만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항상 자기에게 관심을 두는 우리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는 말에서 또 다시 자신이 성령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를 향한 욕망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이 믿음으로 살고, 성령을 받았다는 것에 존재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가 아닌 나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여러분이 성령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싶습니까? 그러한 마음이 우리가 죄인 일 수밖에 없는 증거임을 아는 것이 성령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고 성령으로 사는 신자는 죄인의 길로 가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를 이루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죄인의 길로 가면서 자신의 믿음이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인도 받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구별되기 때문에 보는 것으로 신자 됨을 확인하고 판단하고자 하는 것을 예수님의 행함이 아닌 자기 행함 가운데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보는 것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믿음을 확인하려는 유혹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면 신자의 담대함은 성령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서 드러나는 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성령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담대함을 얻고자 하는 것은 자기 몸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인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6절에서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라는 말로 몸과 주를 분리합니다. 몸과 주가 따로 있기에 몸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성령이 함께 하고 성령으로 다스림 받으며 주께서 피 흘리신 십자가로 인도되는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믿음의 세계는 성령이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 말하는 믿음에는 앞에다른이라는 말을 붙여야 합니다. 다른 믿음, 다른 복음, 다른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은믿음으로 행하는가? 보는 것으로 행하는가?’로 드러나고 구별됩니다. 물론 이러한 구별도 성령 받은 신자에게만 해당될 뿐입니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서 연결된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하나 됨은 모든 지체가 죄인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믿는 믿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친분이나 단합된 모습이 교회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때문에 건전한 교회, 건강한 교회, 개혁하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은 의를 이루신 그리스도가 아닌 교회에 관심을 두는 것이며 믿음 아닌 보는 것으로 행하는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우리의 실상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죄의 실상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의 의미가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 됨은 그렇게 죄 가운데서 증거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의 실천으로 불가능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의 의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의 의 앞에서 우리의 의로움이 무너짐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 경험을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항상 보는 것에 이끌리고 보는 것으로 행하는 세계에 눈독을 들이는 죄를 죄로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시면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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