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9.08.31 14:53

(119강) 서로 문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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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6:19-20http://onlycross.net/videos/co1/co1-16192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설교>

교회는 하나님이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이 함께 함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사람의 뜻이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의해서만 신자 되고 영생을 얻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린다고 해서 교회 되는 것이 아니고대한예수교장로회 은석교회라는 간판을 붙여 놓았다고 해서 교회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다만 영생 받기로 작정된 자들이 함께 하는 모임인 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이라는 시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꽃이 시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꽃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서 시인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되고 시인의 마음과 뜻에 자리하는 꽃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는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불러 줌으로 성립되는 것입니다. 인간 개인의 이름을 불러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이름 안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모든 자를 불러 종속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신자라고 하고 이들이 함께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인간 개인의 이름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인간의 이름이 높임 받고 자랑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름들이 모여서 교회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이름 안에 부름 받아 종속된 자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관계로 함께 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 주심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러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그 이름에 종속되어 예수님을 나의 주로 부르게 되는 관계에 있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참된 교회는 단순한 인간관계와 조직으로 성립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은 자신의 가치 없음과 자신의 힘으로 되어 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자기 존재의 가치와 자랑됨을 추구하며 부르는 이름이라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부른 것일 뿐입니다. 이방인들이 신을 부르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의미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게 된 내막에 대해서 알게 되면 자기 이름에는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교회가 이러한 신자의 관계로 함께 한다면 인간이 행한 일은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신 일만 높이고 자랑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신자의 관계에서 서로를 문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문안하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문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편지 말미에는문안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본문에서도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19,20)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안은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가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말처럼 누군가를 문안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또는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묻는 것으로 문안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가 말하는 문안이 그런 것이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시아의 교회들,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모든 형제들로부터 문안을 받았다면 고린도 교회 또한 문안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곳을 방문하여 문안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편지를 쓴다는 것 또한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서로 만나고 편지를 쓰면서 문안하는 것이 신자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문안이 신자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면 교회는 그러한 문안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오고가며 문안을 한다면 관계는 더 두터워 질 수 있습니다. 만나지 않거나 문안이 없는 것보다 서로 만나 문안을 묻고 편지로라도 문안을 묻는다면 그러한 문안이 없는 것보다는 분명 인간적 관계는 나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인간적 관계가 탄탄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일까요? 모든 관심이 복음으로만 향해 있는 바울에게 그런 의미의 문안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바울의 문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안부 인사를 넘어서 있습니다. 단순한 인간관계에서의 문안이 아니라 죽음의 존재로 지내다가 하나님이 영생주시기로 작정하심으로 예수 안에 부름 받은 신자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문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구원 받음에 대한 축하 인사를 나누라는 의미의 문안일까요? 그렇다 해도 어쨌든 서로 만남이 있어야 가능한 문안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문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서로 문안하라는 말을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회라면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라는 점에서 안부 정도는 묻고 지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교회처럼 먼 거리에 있는 교회까지 안부를 전하며 관심을 두고 알고 지내야 할 이유까지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교회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고 또 알고자 하는 관심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과 무관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는 자기에게만 관심을 두는 인간성을 가진 우리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사람들로 함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한다는 말을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문안에서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의 문안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주와 관계가 없는 인간의 문안이라면 문안의 대상은 자신과의 친분, 이득의 문제 등을 따져서 대상이 결정됩니다. 미워하는 자는 당연히 문안의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고 모르고 지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역시 문안의 대상에서 멀어집니다. 결국 인간의 문안은 문안하면서도너와 나로 따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안한다는 것은 문안하는 사람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안은 인간의 관계에서 안다는 뜻이 아니라 주 안에서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주 안에서 서로를 아는 자로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주 안에서 서로를 아는 관계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서로 문안하라는 말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교회가 고린도 교회를 알지 못하고 만난 적이 없다 해도 주 안에서는 얼마든지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문안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 안에서 서로를 잘 아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알고 신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주 안에서 서로를 아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결국 인간관계를 초월하지 못한 앎의 관계에 머물 뿐입니다. 그리고 각자 개인의 감정과 친분 관계에 따라 앎의 비중도 달라질 것입니다. 친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앎이 동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주 안에서라는 말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 1:1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해당됩니다. 고린도 교회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음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이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하나님이 영생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는 이름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작정하심과 부르심이라는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거룩해지거나 성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윤리와 도덕으로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들이 어떻게 성도라는 이름에 속하게 되었는지의 내막을 알게 되면 주 안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모든 것은 무시되고 주의 피 흘림의 공로만 인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13:47-48절에서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하는 내용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를 부르시고 영생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안다면 마치 자신이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처럼 행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가 주 안에서 서로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의 인간관계처럼 신상에 대해서 모르고 출신학교나 성격 등에 대해 모른다 해도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신자는 서로를 잘 아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주 안에서 부름 받은 모든 지체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얼굴 모습이 어떤지, 키가 어떻게 되는지, 말이 어눌하다고 했는데 말투가 어떤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가 하나님이 영생주시기로 작정하셔서 부름을 받았고 믿음을 받아 그리스도를 전하였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우리 또한 바울의 믿음에 속해 있기를 소원하는 마음도 있게 됩니다. 세상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주 안에서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바울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딤후 1:9절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닌 은혜로 주 안에서 삶을 얻었습니다. 행위로 주 안에 있게 된 자가 없음을 알가에 누구에 대해서도 행위가 아닌 은혜의 시각에서 보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의 은혜를 공유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목사도 행위가 아닌 은혜로 주 안에 있게 된 것이고 여러분도 행위가 아닌 은혜로 주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동일한 주의 공로와 주의 은혜 아래 있기에 인간의 관계를 초월하여 서로를 아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의 신자의 문안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정도의 문안이 아닙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옆 사람과 서로 인사하는 문안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문안도 아닙니다. 주 안에서의 문안은 오늘도 그리스도가 피 흘리신 공로와 은혜로 삽니다라는 고백과 교통으로 하나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문안도, 아무에게나 하는 문안도 아닙니다. 주 안에 부름 받은 형제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문안인 것입니다.

 

 

16:장에 보면 바울이 개인의 이름을 각각 부르며 문안하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른 명이 넘는 이름을 부르며 문안하라고 하는데 그 이름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로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각자 개인의 이름이 높임 받거나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하나로 족한 줄 아는 관계로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각자에게서 주의 은혜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이름을 부르며 문안한다 해도 결국 문안의 내용은 주의 은혜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문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서 만나고 문안을 한다면 세상 일이 잘되는지, 몸은 건강한지, 평안한지의 여부를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된다고 하면 믿음 생활 잘해서 주가 주신 복이라며 덕담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안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시기가 되고, 낙심이 되고 자신에 대한 실망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생각한다면 육신의 평안을 묻는 문안은 의미 없다고 할 것입니다.

 

 

심판이라는 작정된 현실을 생각하면 주 안에서 주의 공로로 거룩하다 여김 받게 된 은혜 아래 있는 것이 주가 주신 평안입니다. 교회는 주의 평안에 뜻을 두고 주의 평안으로 기뻐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평안과 상관없이 주의 평안으로 문안하게 됩니다. 굳이 누군가에게주의 평안을 빕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육신의 평안이 아니라 주가 주신 평안 안에 있는 것이 곧 구원임을 믿는 믿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문안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신자는 서로 모르지 않습니다. 전혀 알지 못한 곳에 각자 존재한다 해도 주의 평안으로 기뻐한다면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이 영생주기로 작정하셔서 부르심으로 성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며 신자가 신자를 아는 것에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십자가로 하나 된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행함에 가치를 두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수시로 나의 이름을 높이고 싶어 하는 우리를 말씀으로 낮추시면서 주의 은혜만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 아래 있음을 아는 믿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서로를 문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주 안에 있는 모든 신자는 서로를 아는 관계로 함께 합니다. 은혜로 하나 되었고 은혜로 교통되는 존귀한 관계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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