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1.04 19:37

(2강) 사도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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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3-8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10308.wmv<본문>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골 1:3-8  개정)


<설교>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교회에서 예수님의 말씀, 생명이 되는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진심으로 복음을 사모한다면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 증거될 때 그것을 눈치 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말하고 복음을 말하면서도 목사가 다른 복음을 말하고 인간의 말만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아멘 합니다. 이것은 본인도 결국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교회 현실입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이 나타나게 되면 세상이 아니라 교회에서부터 먼저 배척을 받습니다. 참된 복음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 발각 되는 것을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자기 교회의 존재성을 붙들려는 욕망에 의해 이미 소경된 상태이기 때문에 참된 것의 참됨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 교회를 흔드는 것은 모두 비진리고 내 교회를 굳건히 세워주는 것만을 진리로 간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 이런 것은 이미 관심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성경이 기준이 아니라 교회 성장이 판단 기준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진리고, 성장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교인들의 열심을 훼방하는 것이라면 비진리로 평가되어 밀쳐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성경을 얘기하고 예수님을 얘기하는 것을 생소하게 여기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서로 둘러 앉아 담화를 나눌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세상 돌아가는 얘기고,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그런 세상사가 아닙니까? 그러다가 누군가가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님의 용서의 은총을 말하고 그냥 살고 있는 것이 은혜라는 말을 하면, 그러한 말이 오히려 낯설게 들리지는 않습니까? 그런 우리가 모여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만약 내가 마음이 바뀌어서 십자가가 빠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은석교회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생명이 되는 복음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다면, 십자가가 빠진 다른 복음이 전해지는 자리에는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관심이 없다면 목사가 어떤 말을 하든 상관없이 오랫동안 내 정성과 열심과 돈이 투자된 교회를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도는 교회에 다른 복음이 들어온 것을 참지 못합니다. 골로새 교회도 거짓 선생들로 인해서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복음이라고 해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통일교, 안식교와 같은 이단들이 아닙니다.


2: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상하고 품위 있게 보이는 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나 복음이라는 말로 위장을 하지만 그 내면은 사람을 사람의 전통과 초등학문으로 끌어갈 뿐입니다. 그 한 예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2:16)는 구절입니다.  


음식문제나 절기를 지키는 문제 등을 내세우면서 사람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 것을 믿음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비판하면서 절기를 지켜야 하고 음식도 부정한 것은 가려서 먹는 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사도가 전한 복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가 돈 때문에 목사파 장로파로 나뉘어서 분열이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부도덕한 이성관계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사 음식은 더러운 것이니까 먹지 말라는 식의 가르침이나, 절기는 하나님이 지키라고 한 것이니까 지키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고 가르치는 문제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로 다가옵니까? 사도가 편지를 써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됩니까? 골로새 교회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가 아니라 사도에게 복음을 배운 에바브라가 골로새에서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교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바울이 담임하고 목회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같으면 다른 교회가 문제가 발생했건 말건, 교회에 혼란이 생기든 말든 내가 담임하는 교회가 아니니까 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내 교회라는 의식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내 교회가 부흥되면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에게 골로새 교회는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한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감사의 말을 합니다. 3-5절을 보면 바울의 감사는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해서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교회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나와지는 감사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들어 세울 수 있습니다. 예배당 공간을 마련하고, 목사가 있고 예배드리는 것이 있으면 다들 교회라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셨습니다. 예수의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특징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 기뻐하고 복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을 생각하고, 사람의 수를 보기보다는 생명의 복음 아래 모이기만을 소원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다함께 그리스도의 믿음 아래 모이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모임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음 아래 모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 예수님에게 모든 가치를 두고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이 몸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는 말을 합니다.


골로새의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 열매가 맺은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믿음의 열매를 맺어 자란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칭찬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바라보는 것은 복음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즉 골로새 교회의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복음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초대 교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어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즉 저도 여러분도, 이 은석교회도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 또 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흔적인 것이지 사람의 흔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이라는 이유로 모이는 것이라면, 그리고 믿음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열심의 흔적이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이고 그 능력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감사할 것은 사람의 열심과 실천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고 세밀하게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가 완성되어질 그때까지 중지되지 않고 변하지도 않은 채 계속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도구로 왕성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이 모인 교회는 쇠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은석교회가 쇠퇴하고 은석교회가 문을 닫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즉 은석교회는 계속 존재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생명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교회를 바라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서 때로는 기뻐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하는 것도 교회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있고, 그 기대를 자신이 몸담은 교회를 통해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지금도 피 흘리며 우리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면 교회가 어떻든 상관없이 예수님의 용서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교회에 대해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다 잊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여러분에게 역사함으로써 항상 새롭게 주의 은혜를 알아 가시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증거임을 아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여러분의 시선이 그리스도에게로만 고정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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