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03.02 10:22

(4강) 선택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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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1:3-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10306(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설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약 성경을 주신 이유와 목적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성경을 읽는 것이라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배우기보다 성경을 읽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읽었다는 것으로 자기 신앙을 확인하려고 하고, 그것을 구원의 증표로 삼으려고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기독교인이 범하는 오류고 중대한 착각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구원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법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법칙이라면 하나님은 왜 성경을 주셨을까요? 많은 사람은 성경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자만 구원을 받는다면 성경에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도가 말한 신령한 복은 우리를 택하여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복이든 세상 복이든 성경에 복을 얻기 위한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자의 복 또한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경을 왜 주셨으며 신자가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대상은 하나님이 택한 신자입니다. 신자와 신자가 아닌 자는 성경을 보면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자가 아닌 자는 자기 구원과 복에 관심을 두고 성경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성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부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완성된 구원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마음을 두며 구원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은 택한 자기 백성을 이 일에 초청하기 이하여 성경을 주시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고 이유며 목적임을 분명히 한다면 자기에게 관심을 두고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임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고 성경을 읽는 것이 많은 기독교인이 범하는 중대한 오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안에서 구원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선택은 창세 전에 되어진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의도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결국 인간 창조와 사탄의 등장 선악과를 먹은 범죄, 이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예정된 일이라는 의미가 됩니다(5,6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또한 인간 구원에 초점을 두고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선택과 예정 안에 우리의 구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선택과 예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선택과 예정이라면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이유가 모호해지고 우리의 존재 이유 또한 알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목적으로 선택하고 예정하셨으면 지금 당장 영원한 구원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을 목적으로 한 선택이고 예정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요즘 말로 철밥통입니다. 어떻게 산다고 해도 구원에서 탈락되지 않습니다. 결국 힘써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정을 우리 인생에서 벌어질 모든 사건과 일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창세 전에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인생의 어느 순간도 하나님과 무관하게 진행된 적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의 예정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뜻이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택하신 아들들로 하여금 어떤 삶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내버려두셨을까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으면서도 인간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왜 그냥 방치하셨을까요?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예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뜻에 의해 범죄 한 것이 됩니다. 즉 범죄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허용하셨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범죄와 죽음을 통해서 인간은 흙에 지나지 않은 존재일 뿐임을 알게 하시고, 그러한 인간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아들이 되게 하신 그 은혜를 바라봄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는 것을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안에 있는 신자는 자신의 구원에 일조하는 자로 나설 수 없습니다. 자신의 구원에 조금이라도 일조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것은 이미 찬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나에 대해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안에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5절을 보면 사도는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사도가 말한 ‘우리’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바울을 포함한 에베소 교회의 신자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도는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는 모든 자를 가리켜서 우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곧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는 하나님이 선택한 신자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곧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자신의 구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또 다른 반증이기도 합니다.

 

 

자기 구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자이고 흙에 불과할 뿐이며 먼지와도 같은 자기 존재를 잊고 있기에 ‘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도 구원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이라는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고 찬송이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 5:20)는 말을 합니다. 설마 이 말을 은혜를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는 죄를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분은 없겠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그 죄 또한 적지 않음을 안다면 마치 지금은 죄가 작은 것처럼 ‘은혜를 알기 위해 죄를 더 많이 지어도 됩니까?’라는 말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붙들려 있는 우리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심으로 그 은혜로 인한 감사와 찬송이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넘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더한 곳’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속에 감추어지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죄가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말씀의 세계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죄의 세력에 붙들린 자임을 실감해야 하는 것이 ‘죄가 더한 곳’이라는 말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더한 곳’은 말씀이 있는 자리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자신의 죄의 깊이를 보게 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즉 교회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은가를 날마다 말씀 안에서 보게 되며 실감하고 그런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감사하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는 계획을 세우시고 그 일에 우리를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무너져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택한 백성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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