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8.02.17 15:52

(40강) 주를 위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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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설교>

성경은 행함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심판의 조건 역시 행함이 아닌 것이 됩니다. 행함이 악하다 하여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음행을 했다 하여 심판을 받거나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음행을 해도 괜찮습니다. 이런 말에 불편함을 느끼실 것을 알지만, 만약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도 도덕과 윤리가 믿음에 혼합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음행을 해도 괜찮다고 말한 것은 음행을 한다 해도 구원 받는 일에는 지장이 없으니 마음 놓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라 구원의 조건과는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괜찮다는 것입니다. 음행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설사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서 벗어난 행위라 해도 그것이 우리를 심판으로 끌고 가지 못하기 때문에 괜찮은 것입니다.

 

 

이는 11절의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는 내용에서도 드러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와 같은 자들이란 9,10절에서 언급된 불의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음행, 우상숭배, 간음 등을 행한 불의한 자들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불의하다고 하는 행함이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 일에 있어서 음행을 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간음을 하고 탐색하고 남색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탐욕을 부리고 술 취하고 모욕하고 속여 빼앗는 짓을 한다 해도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에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성령 받은 신자가 음행과 같은 불의한 일을 행할 수가 있느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과 윤리가 혼합되어서 믿음의 증거, 확인을 윤리적인 행함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믿음에서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불의한 일을 해도 괜찮으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마음 놓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울의 취지를 크게 오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말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로 번역하고, 새번역에서는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로 번역하고, 공동번역에서는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참고하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말에는 ‘자유’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가하다는 자유는 무엇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을 행하든 행하지 않든 그것과는 무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도 진리 안에서는 우리의 행함과 무관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은혜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의는 차별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을 받은 자 받지 않은 자 율법을 행한 자 행하지 않은 자로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는 율법을 행해도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율법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한 일을 행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 안에는 모든 것이 가하다는 자유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도 괜찮은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할 수 없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바울은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신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유익하지 못한 일은 삼가야 한다. 그것이 진짜 자유다’라는 뜻일까요? 다시 말해서 ‘음행을 해도 되지만 유익되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말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음식에 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는 것처럼 자기 배의 즐거움을 위해서 어떤 음식이든 먹을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배를 위한 음식의 즐거움과 자유는 결국 없어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음식을 위한 배, 즉 몸은 하나님께서 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음식과 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것이 육체의 즐거움을 위한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기 몸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지만 몸도 즐거움도 하나님이 없애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몸에 대한 참된 의미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바로 몸은 오직 주를 위해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해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를 위해 있는 몸은 19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성령의 전으로써 영원한 몸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는 말은 음행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음행을 하면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기 때문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음란이 아니라 주를 위해 있는 몸이라는 시각에서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몸으로 나아가야 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가 자신의 불의한 행동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모든 것이 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불의한 행동도 신자를 예수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괜찮은 놀라운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가하다는 것을 구실 삼아 자기 몸으로 불의한 일을 즐기는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이 신자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로써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새로운 몸으로 존재하며 주를 위하여 있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11절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는 것도 그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자기 몸을 위한 어떤 일에도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은 주를 위하여 있다는 것이 몸에 대한 바울의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생각하며 음행을 해도 괜찮은 것이지만 음란을 위하여 있는 몸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있는 몸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음행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음행을 피한다면 그것은 세상이 생각하는 도덕을 초월하여 주의 몸으로써, 그리고 성령의 전으로써 무엇을 쫓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몸에 매이지 않는 자유가 음행을 피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음행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을 때 결국 음행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현실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에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주어진 감격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몸이 아니라 주의 몸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는 부활에 관한 내용인데, 바울이 왜 갑자기 부활을 얘기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부활을 얘기하는 것은 신자에게 몸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권능으로 다시 살리셔서 영원히 주와 함께 하는 주의 몸으로 존재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몸 그대로의 부활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의 몸으로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는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폐하실 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몸은 하나님이 폐하실 것에 불과하니까 아무런 가치가 없다, 따라서 이 몸으로 무엇을 한다 해도 육에 속한 일일 뿐이며 구원과 연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괜찮다’라는 논리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내게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당시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 이원론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육신으로 하는 모든 것은 가치 없는 것이고 구원은 영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음행이 있다 해도 그것은 육신의 문제일 뿐 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으로 음행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이 ‘내게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신자에게 몸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위한 몸으로 새롭게 전환되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시각에서 생각하자면 몸으로 선을 행해서 사람됨이나 신앙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몸을 자기 소유로 여기고 자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믿음과 상관없는 것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반대로 육신은 사라질 것이고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음행에 대해서도 가볍게 대한다면 그것 또한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몸이 아니라 주를 위한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로는 몸을 내 몸으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고 나의 생각으로 움직이며 존재 하는 이상 내 몸은 내가 관리한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주를 위해 있다는 말에 대해서도 ‘신자는 자기 몸을 음란과 같은 죄를 행하는데 사용하면 안 되고 오직 주께 영광 되는 일을 하는데 사용해야 하다’는 뜻으로 쉽게 생각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말이 더 기독교인의 생각에 일치되면서 타당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몸으로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라는 문제로 고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로 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20절에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지만 과연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그럴듯한 항목을 정해주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힘쓰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기만족에 매이는 것입니다.

 

 

다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신자입니다. 이것으로 신자는 이미 완성의 세계에 존재합니다.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완성의 세계는 불의한 자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의 세계를 생각하면서 ‘불의한 자인 내가 구원 받았으니 이제 나는 무엇을 한다 해도 구원 안에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무엇을 바라보는 것일까요? 불의한 자인 자신을 완성의 세계에 있게 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라 완성의 세계에 있는 자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여전히 자신의 몸을 생각하는 오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이한 주의 몸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놓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주의 몸으로 새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예수 안에서는 나를 위한 나는 사라지고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되지 않는 영역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 안에서 살아갑니다.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을 예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다면 신자에게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피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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