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12.16 16:25

(31강) 주께서 허락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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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설교>

여러분이 타인에게서 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 신자답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낸다면 가장 먼저 그 모든 것이 여러분 자신에게도 존재한다는 것부터 직시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타인은 나 자신을 보게 하는 거울로 내 옆에 존재한다는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돌출되고야 마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의한 흔적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는 고린도 교회처럼 하지 맙시다’라는 시각으로 문제를 대한다면 그것은 ‘나는 당신처럼은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너와 나를 구별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고린도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교회답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나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기 위해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고린도서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게 되면 큰 돌에 맞은 것과 같은 아픔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씀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들에게 간음한 여인은 모세의 율법을 어긴 죄인이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이 있던 곳은 죄인과 의인으로,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자와 돌을 맞아야 하는 자로 구분되었습니다. 하지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의인으로 자처하고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고 여겼던 모든 자까지 정죄의 대상임이 드러납니다.

 

 

결국, 여인의 간음을 부정하고 불의한 것으로 공격함으로써 간음이라는 행위가 없는 자신들은 정결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미화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정죄의 대상임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주제가 어떠한지는 모른 채 거룩한 자의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씀에서 드러난 것은 돌로 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죄 없는 자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 없는 몸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돌로 칠 수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모든 사람은 예수님에게 돌로 맞아 죽어야 할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돌을 들지 않았고, 오히려 돌에 맞아야 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대로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자들을 돌을 들고 만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만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십자가를 알고 믿는다면 자신이 정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로부터 증거되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시작이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도 복음, 둘도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려고 하고 거기에 뜻과 목적을 두게 되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라 종교단체일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만 성경에 관심을 둔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교회가 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듣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사탄적인 욕망으로 막혀 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이름을 내고 지금보다 더욱더 높이 오르고 싶어 하는 바벨탑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성경도 자신이 듣고 싶은 말로 보고 싶은 것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를 위하고 인간을 위한 성경 아닌 성경만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실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실상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문제없는 교회로 비칠 뿐이지 우리 또한 정죄 받아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말을 들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은 죄와 십자가 은혜라는 사실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혹여 ‘나는 십자가 은혜를 잘 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탄적 욕망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십자가 은혜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안다는 것은 은혜라는 너무 익숙한 단어로 인한 착각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은혜를 안다면 드러나야 할 것은 겸손임에도 불구하고 늘 교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십자가 은혜를 말하면서도 내적으로부터 드러나는 것이 여전히 교만인 우리를 예수님이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가를 통해서 날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진리의 길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18,19절에서 바울은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이들이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바울이 몸은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고후 10:10)라고 조롱함으로써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깎아내리려고 했던 거짓 교사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고린도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가 바울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고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심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만 없으면 자신들의 의도대로 교회를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이 교만입니다.

 

 

이들에 대해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에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복음이 훼손되고 바울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고린도로 가서 거짓 교사들을 축출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교회를 안정화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울의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잊고 산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하는 바울의 말은 바울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 가고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허락에 의한 것으로 믿는다면 바울은 매일의 삶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 때문에 살아가는 것으로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매여 살아가므로 나타나는 겸손입니다.

 

 

이것은 인격과 인품에 의한 겸손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믿음에 의해 나타나는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라는 말은 믿음과 상관없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이 하나님의 허락 때문이라면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바울의 믿음이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때문에 산다고 말은 할지라도 오늘의 삶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허락이라는 말도 불편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때문에 사는 것이라면 나는 왜 이렇게 살게 하셨습니까?’라는 불만이 우리에게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허락을 말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인생만큼은 나의 뜻대로, 내가 원한대로 되기를 바라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만물의 찌꺼기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고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안다면 그것이 곧 십자가의 능력에 의한 신자다움입니다.

 

 

신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인간관의 관계에서 자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즉 십자가 앞에서 자기에 대해 생각한다면 우리 또한 예수를 못 박아 죽인 장본인들이고 저주에 속한 멸망자일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생한 현실로 자리한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형편이 어떤 것이라 해도 복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 신자로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를 은혜로 알아보게 되는 그것이 능력입니다.

 

 

과연 무엇이 바울을 이러한 사도로 만들었을까요? 예수 믿는 자를 죽이겠다는 열심으로 서슬이 시퍼렇던 사람을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에게 인생의 전부를 맡겨 버리게 한 힘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것을 복음의 능력으로 말합니다. 복음에 의해서 십자가 용서를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의 힘은 힘으로 여겨지지 않고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용서만이 놀라운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았다면 그것은 이미 힘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십자가를 힘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육신에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믿는다고 인정을 하고 그 믿음으로 세상에서 힘 되는 힘다운 것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길이며 진리와도 무관하다는 것을 사도를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하시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아래 있는 것이 세상 만물이고 인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기에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은 없고 인간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도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인간은 선도 행할 수 없는 무능한 자로 설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행함의 강요가 무거움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은혜라는 말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 맞아 인간은 죄인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야. 내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연약한 인간이어서 당연한 것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니까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고 살아갈 뿐이야’이렇게 인간의 죄인 됨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음만 알고 있으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할 수 없음’을 이용하여 ‘하기 싫음’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기 싫어하는 자기 속성을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당연한 것으로 변명함으로써 하기 싫어하는 속성을 감추는 것입니다.

 

 

신자가 복음을 통해서 항상 간파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악함이고 교만입니다. 성경은 어느 한 부분도 자기방어용이나 공격용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돌이 나를 향하지 않고 예수님에게로 향한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우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태어난 것이고 죽는 것도 우리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허락으로 되어질 일입니다. 인생도 내 힘으로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살아지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 무언가를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라면 불안해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겸손이며 행복의 길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보게 되는 인간의 실체는 욕망입니다.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에 뜻을 두고 자기를 위해 살고자 발버둥 치는 인간의 교만과 욕망으로 가득한 모습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가볍고 쉽게 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욥 42:2~3절에 보면 욥이“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고 못 이루실 것도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을 뿐이고 알 수도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말을 들으라’고 큰소리치며 가르치는 스승 노릇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생각의 중심에 내가 있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한순간도 주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생임을 아셨다면 ‘무엇으로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복음으로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힘도 능력도 복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의 허락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동행하며 이끌어 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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