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3.09.08 09:54

(76강) 청함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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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4:15-24http://onlycross.net/videos/nuk/nuk-14152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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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설교>

 

◉ 잔치 비유와 천국의 비밀 ◉

잔치와 연관된 예수님 말씀은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잔치 자리는 청함 받은 자가 높임 받거나 돋보이는 자리가 아님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잔치에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자의 사람들은 갚을 수 있고 후자의 사람들은 갚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잔치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잔치는 오직 베푸는 것이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잔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삶을 현재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증거 되는 천국의 삶이란 천국 잔치에 청함 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높임 받거나 돋보이기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며, 보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베푸시는 잔치에 청함을 받아 참여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말씀은 천국의 현재적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고 높임 받기 위해 신앙의 열심을 내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천국과는 상관없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안식일 규례에 매인 바리새인을 통해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다는 것도 천국의 삶에 어긋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갚음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쳐 헌신한다는 것이야 말로 오히려 천국과 상관없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을 잔치에 청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이 가난하고 몸이 불편하고 저는 자들이며 맹인들이고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현재적 삶은 베푸신 은혜를 누리는 것이고 그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지 갚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왜 비유로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눅 8: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감추어 놓기 위한 용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에 따른 왜곡된 해석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잔치에 대한 비유의 말씀인 본문 역시 천국의 비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23절의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에 초점을 두고 이 내용을 전도하여 예배당을 채우라는 의미로 해석 합니다.

 

 

교회 부흥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에게는 아마 본문에서 다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를 잔치에 청하는 것으로, 전도했을 때 거절하는 것을 청함을 거절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래도 전도를 포기하지 않고 사람을 강제로라도 데려와서 예배당을 채워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천국의 비밀을 보지 못한 왜곡된 해석일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잔치 비유에서 예수님은 예배당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한 내 집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지 예배당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라고 하신 사람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을 예배당을 사람으로 채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전도하여 채워야 할 사람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교회도 그런 식으로 전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말씀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교회 부흥이라는 자기 욕망을 채우는 일에 더 몰두한 모습만 드러내는 것입니다.

 

◉ 바리새인의 오해 ◉

 

본문의 말씀은 잔치 자리에서 함께 먹고 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어집니다. ‘떡을 먹는 자’는 ‘초대 된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무릇 하나님 나라에 초대된 자는 복되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이 사람을 ‘함께 먹고 있던 사람’이라고 한 것을 보면 바리새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심기가 많이 불편해졌을 것입니다.

 

 

사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3절)는 말씀은 그 자리에 있는 바리새인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는 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을 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될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 한다면 그 대상은 예수님이 청하라고 한 부류의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일에 철저하며 신앙적으로 성실히 살고 있다고 여기는 자신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제 아무리 가난하고 몸이 불편하고 맹인과 같은 사람들 편을 든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되어 떡을 먹을 복된 사람은 우리들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리새인들처럼 규례를 지키며 열심히 신앙 생활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즉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 나라 잔치에 청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를 깨뜨리기 위해 하신 말씀이 본문의 내용이기 때문에 예배당을 채우는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 청함을 거절한 자 ◉

 

예수님은 이 사람의 말에 대해 잔치에 이미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잔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잔치 시각이 되어 청한 자들에게 종을 보내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오소서’라고 하였으나 그들이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거절한 이유는 밭을 사서 나가봐야 한다는 것이고, 소 다섯 겨리(열 마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고, 장가들어서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잔치 보다는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드는 일은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오랜 시간 준비를 해서 이루는 일입니다. 일단 밭을 사고 소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장가들기 위해서도 역시 돈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그 계획을 위해 오랜 시간 돈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계획을 이루었다면 마음이 많이 설렐 것입니다. 때문에 잔치보다는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노해서 종에게 이르기를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종이 주인의 말대로 했지만 여전히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 대신에 주인이 잔치에 채운 사람들의 특징이 뭔가 하면 이들은 하나같이 잔치에 청함을 받을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한 것은 강제로 데려오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청함을 사양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권하여 데려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는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 즉 이방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이라면 유대인이 베푼 잔치에 청함 받았을 때 선뜻 허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어떻게 여기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방인인 나를 잔치에 오라고 청할 수 있지’라고 의구심을 가지면서 사양했을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 신분을 알고 사양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기어코 데려오라는 것을 강권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의 청함을 받아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 같은 자를 청한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은 자신이 청함 받을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청한 주인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잔치에 당연히 청함 받을 것으로 여기는 바리새인의 마음입니다.

 

◉ 청함 받은 자와 천국 ◉

 

예수님이 말씀한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은 바리새인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바리새인을 하나님 나라 잔치에 당연히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여김으로 잔치에 청한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는 자로 드러냄으로써 이 같은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잔치에 청한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주인이 베푼 잔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청와대 만찬에 청함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중에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가야 한다며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장가가는 날 까지 변경하면서 참석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만찬에 청함 받은 것 자체부터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마음은 자신이 도무지 청와대 만찬에 청함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것은 바리새인 같은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바리새인 같은 사람으로 채워지면 외적으로는 훌륭한 교회로 부각될 것입니다. 모든 교인이 신앙생활에 열심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그 교회는 뭐가 달라도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함보다는 서로가 자신을 높은 자로 여기며 ‘나 같은 자가 천국 안 가면 누가 가나’이런 마음으로 천국을 당연한 결과로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청한 분에 대한 감사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청함을 받았으되 잔치를 맛보지 못할 자로 규정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개의 기독교인은 신앙을 외적인 열심에서 찾습니다. 열심이 있을수록 천국이 당연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을 받을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잔치에 청한 주인에 대한 감사함은 자기 의에 묻혀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 의가 중심되어 나 같은 자를 청한 주인에 대해 감사함이 없는 사람을 천국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자기 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본문의 말씀을 세상 일보다는 교회 일에 더 힘쓰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게 힘을 써야 천국에 들어가고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는 먼지만큼이라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 천국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소유한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처럼 자기 의와 단절되어서 오직 예수님의 의로만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이러한 비밀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지금껏 들어온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비밀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식의 수준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이 예수님의 의로만 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기 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것은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많이 들어서 머리에 기억되고 있는 내용일 뿐 그 말씀에 끌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강권해서 데려오는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열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천국,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의 열심을 근거 삼아 더 큰 상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천국에 어울리는 것을 나 같은 자를 잔치에 청하시고, 강권해서라도 그 자리에 앉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을 복으로 여기며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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