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3.02.10 10:02

(48강) 꾸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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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9:51-56http://onlycross.net/videos/nuk/nuk-09515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설교>

 

◉ 다를 것 없는 인간 ◉

 

제자들이 보여주는 제자답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은 계속됩니다. 변화산과 변화산 아래에서의 일,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누가 더 큰지에 대한 문제로 서로 변론이 있었던 일과 함께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금한 일, 그리고 본문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 지역을 지나가시는 것을 거절하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나 오히려 예수님께 꾸짖음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은 왜 저런 제자들을 돌려보내시지 않고 계속 데리고 다니시느냐는 것입니다. 그전에 애당초 제자들을 부르실 때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제자를 삼으셨을만한데 왜 저토록 제자답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자를 제자로 삼으셨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은 의문이랄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인간은 더 낫고 못난 존재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 답입니다. 본문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꾸짖음을 받았지만 다른 제자들이라고 해서 나을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열 두 제자 말고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면 예수님 마음에 들도록 잘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잘났다고 여기는 누구를 데려와서 제자 삼는다고 해도 열 두 제자와 동일하게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을 것이고, 역시 예수님에게 꾸짖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꾸짖음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의 그런 실체를 알지 못하고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으니 자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자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않겠다는 극도의 이기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나은 사람이고 누가 못한 사람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서로 이런 구별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내 자신이 못난 자고 예수님에게 꾸짖음을 들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아예 누군가를 향해서 못난 자라는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이 같은 사실이 늘 마음에 와 닿아야 합니다.

 

 

제자답지 못한 사람을 예수님은 계속 데리고 다니십니다. 물론 그들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책망을 하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만약 제자들에게 책망이 없다면 어땠을까요? 당연히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할뿐더러 자신에 대한 오해만 커지게 됩니다. ‘난 괜찮은 사람이다’는 오해 말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 오해야 말로 예수님의 따르는 일에 있어서 큰 걸림돌임을 생각해 본다면 말씀의 역할은 가장 먼저 나에게서 이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반드시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늘 우리를 꾸짖습니다.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꾸짖음으로 나를 보게 하시고 나 또한 예수님이 아니면 영원한 사망에 갇힐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들이 보여주는 본심이 바로 우리의 본심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사마리아 사람 ◉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길을 떠나시려고 합니다. 누가가 기록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 기록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쪽 갈릴리에서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마리아로 미리 보내십니다. 사마리아는 유대 사람과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제자들을 보내어 준비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예수님이 큰 능력을 행하는 분이었다고 해도 유대와 사마리아라는 감정을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공관복음에서는 오직 누가만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이 이방인인 데오빌로에게 쓴 서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누가는 아마 구원의 보편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원칙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보편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고 낮음을 따지고 비교하고 차별하는 인간의 속성을 제자들을 통해서 드러내시고 그것을 꾸짖으심으로써 신자가 벗어나야 할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갈등은 매우 컸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순수 유대 혈통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정복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을 죽이거나 추방하고 이방인들을 불러서 그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방인 정착자들이 그곳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과 혼인하여 혼혈인을 낳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만이 아니라 이방의 신도 섬겼습니다. 이들을 북 이스라엘의 옛 수도인 사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남쪽 이스라엘, 즉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정복되어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도 여호와를 섬기므로 재건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 사마리아 사람은 순수 유대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을 저주에 들어갈 사람으로 정죄를 했고 당연히 성전에서 함께 예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은 그리심 산에 자기들의 신전을 세우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라는 말만 들어도 침을 뱉을 정도로 싫어했고 혐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활동하고 있었던 지역은 북쪽 갈릴리였고, 예수님이 가고자 하신 예루살렘은 남쪽에 있었으며 그 중앙에 사마리아가 위치하고 있었기에 사마리아를 지나가고자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53절). 왜 굳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할까요? 이것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단순히 유대인에 대한 민족적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자신들의 신전을 세우고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은 그리심 산에서의 예배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요 4:20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묻습니다. 어느 곳에서의 예배가 더 우월한가를 묻는 의미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그리심 산이나 예루살렘에서의 예배 모두 참된 예배가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보다 그리심 산에서의 자기들의 예배가 더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꾸짖음의 의미 ◉

 

이러한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함으로써 그들 또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신 것입니다.

 

 

이들을 꾸짖었다는 것은 어른이 아이의 잘못을 야단치는 의미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서에서 언급되는 예수님의 꾸짖음은 강력한 세력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열병을 꾸짖으시고(4:39절),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고(8:24), 귀신을 꾸짖으십니다(4:41, 9:42). 다른 복음서에서도 꾸짖음의 대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열병이나 바람, 풍랑, 귀신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즉 우리의 시각으로는 꾸짖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꾸짖음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은 그것을 인간을 지배하며 믿음의 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악한 세력으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꾸짖음은 그들은 잘못을 야단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그들 생각과 감정이 마귀적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문제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곧 마귀적 속성이며 그러한 속성이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맞지 않음을 드러내시는 꾸짖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야고보와 요한 두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서로 변론함으로써 보여준 제자들의 속성이고 문제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분노를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말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하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을 배척하였고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심판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보다는 이들을 더 문제 삼으십니다. 과연 이들의 무엇을 문제 삼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자신을 예수님 편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불을 명하여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합니까’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을 불을 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을 따르기에 하늘의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예수를 반대하고 배척하는 사마리아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생각을 꾸짖으심으로써 자신을 예수 편에 있다고 생각하고 멸망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척하는 마귀적 생각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예수님과 함께 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셔서 함께 해주시고 동행하시면서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 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도, 그리고 우리도 마귀적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 꾸짖음을 받아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한 우리를 예수님이 붙드시고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 제자들의 착각 ◉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그들 생각이 마귀적임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함께 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에 대한 배척으로 시작합니다. 환영이 아니라 배척이 곧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자신을 환영받아야 할 자로 여기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위 예수 믿고 예수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배척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들이 멸망의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사마리아 사람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예수를 배척했다고 인정할 것이니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선교를 하고, 좋은 일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자신이야 말로 예수 편에 서서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고 따라서 인정을 받고 환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은 자신을 반대하는 대상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매인 것이고 그것이 곧 마귀적이며 이것이 예수님의 꾸짖음의 의미입니다.

 

 

자기 의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되겠지만 그 생각 자체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의에 사로잡힌다면 자신과 함께 하지 않거나, 자기를 반대하고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는 오로지 판단과 비판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히려 심판을 받아야 할 마귀적 속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신 예수님은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한 여행을 계속하십니다. 부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제자들과 계속 함께하시고 생명의 길로 데려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은총입니다. 이 은총에 의해서 우리 또한 생명의 길로 가고 있음을 잊지 마시고 자기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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