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12.23 10:16

(41강) 제자와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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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9:1-6http://onlycross.net/videos/nuk/nuk-0901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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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설교>

 

◉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

 

눅8장에는 예수님께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고친 일과,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고침 받은 일,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난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군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은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난 일은 모든 군중의 관심을 예수님에게 집중시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8장 마지막 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경고를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기적의 사건을 예수님의 권능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경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사건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예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과 권능을 증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신비한 현상을 목격 한다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의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셨고, 이것은 군중들이 목격한 기적의 사건 자체가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의 사건만 일어난다면 세상도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하고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인의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믿어주기를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8:28절에 보면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칭합니다. 이것은 귀신도 예수님의 존재를 믿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귀신도 믿고 있는 예수님의 존재를 세상이 믿어주기를 위해서 기적의 사건을 행하셨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권능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요? 예수님의 권능을 보여주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서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권능이 나타난다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권능을 직접 목격했던 당시의 유대인들이 원했던 것은 자기 유익이며 배부름이었습니다. 즉 자신을 위해 예수님께로 몰렸던 것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이 원하신 바가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권능을 보여주신 이유는 다른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 하신 것입니다.

 

◉ 능력과 권위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권능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보내신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제자들에게 모든 권위를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능력과 권위로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내용의 초점을 전도의 사명에 두기도 합니다. 2절의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라는 구절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 나라 전파, 즉 전도를 위해 제자를 보내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것을 말하면서 전도의 현장에는 능력과 권능의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고 합니다.

 

즉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곳에는 예수님의 권능이 역사한다는 증거로 병 고침과 귀신 들린 사람이 고침을 받는 일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병 고침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4장에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진 은혜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권능입니다. 하지만 이 권능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자체를 의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병들고 귀신 들렸다는 것은 육신의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인간 자체가 병들었고 귀신 들린 상태로 살아갑니다. 악한 권세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병들었고 온전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이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인간을 생각해보십시오. 욕망도 미움도 경쟁도 시기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본래의 정상적인 모습임을 생각해 본다면 선악과를 먹은 이후의 인간은 병들고 귀신 들렸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악과 사건 이후 한 몸의 관계는 깨어지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희생하며, 자존심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악한 마음, 이것이야 말로 병든 것이고 귀신 들린 것입니다.

 

 

사람은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돈을 힘으로 간주하며 돈이 있는 자는 그것을 권세로 이용합니다. 이것이 악한 영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았다면 이 같은 악한 영, 즉 더러운 귀신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전파해야 할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에서 이 같은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석교회는 어떨까요? 이러한 문제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육신의 질병과 정신적인 문제를 고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에 붙들려 있고 어떤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도외시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로 접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

 

3절을 보면 제자들을 보내시며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전도를 위한 방식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인도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여행하는 자로 말씀합니다. 즉 어느 한곳에 정착하여 인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것이 보냄 받은 제자들의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느 한 곳에 정착하게 되면 그것을 자신의 자리로 삼고 그 자리를 지키고 더욱 크고 넓게 확대하려고 하게 됩니다. 목사가 교회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것도 교회를 자신의 정착지로 삼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자신의 정착지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고 확대하려는 욕망이 교회 부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러운 귀신에 붙들려 있음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권능은 이러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며 예수님이 홀로 걸어가신 그 길을 걷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전파를 위해 제자들을 보내신 것을 보시면 그들에게 주신 것과 주지 않으신 것이 있습니다. 주신 것은 능력과 권위입니다. 주시지 않은 것은 여행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들입니다. 여행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배낭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며 여분의 옷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고 있는 신발과 입고 있는 옷 한 벌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능력을 이용해서 배낭도 구하고 돈도 구하고 옷도 구하라는 뜻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뭔가를 갖게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할 뿐입니다. 심지어는 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능력도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오직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낼 뿐입니다. 그 권위는 더러운 귀신이 제어되고 병이 낫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행을 위해 배낭과 돈과 옷과 지팡이를 준비하는 것은 여행에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행을 하는데 돈이 없고 여분의 옷이 없으면 심적으로 불안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우리 마음을 비우게 하시는 것이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모든 준비는 예수님이 해주신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날그날 예수님이 준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게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며 삽니다. 노후의 인생을 위해서도 준비하는 것이 많습니다. 물론 그러한 준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적게 준비되어 있거나 아예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나라 전파를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제자들과 동일하게 여행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주신 것은 돈도 옷도 아니라 능력과 권위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과 권위는 돈이 되는 것도 옷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생명에 들어가게 하신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 하나님 나라의 능력 ◉

 

세상은 이 같은 사랑과 은혜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 성에서 떠날 때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땅을 벗어날 때 발에서 먼지를 떨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러운 귀신과 병으로부터 우리를 고치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곧 이방인이라는 증거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전 4:20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에서 보고자 하는 능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어둠속에 살아가던 우리를 건져 구원에 이르게 한 능력입니다.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고 그 나라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은 세상 것으로 자기 인생을 든든하게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준비된 자신의 모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신 권능이고, 신자가 나타내어야 할 권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행하는 자로 세상에 보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로 보냄 받았습니다. 세상의 것을 소유하여 그것으로 나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이방인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수치도 부끄러움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되는 십자가입니다. 여행하는 자로 살라고 준비해 주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악한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우리를 제어하고 영혼의 병을 고치며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의 힘으로 삽니다. 이것이 신자에게서 나타나야 할 능력이며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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