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06.10 13:57

(14강) 마귀의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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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4:1-13http://onlycross.net/videos/nuk/nuk-04011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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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설교>

 

◉ 악의 근원 ◉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의 입에서는 온갖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말들을 들어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말을 하기 보다는 민중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민중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말을 들려줘야 인기를 얻을 수 있고, 그 인기가 표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뱉은 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현실도 정치인들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말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유익을 생각하고 민중들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말이나, 듣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복 받는다’는 말에 약할까요? ‘참된 믿음은 신자의 마음을 세상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로 향하게 한다’는 말보다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자자손손 복 받고 잘산다’는 공약(空約)에 더 귀를 기울일까요?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참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재물로 살아가는 현실만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복 받는다’는 말로 안위를 얻고 싶기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언젠가는 복을 주시겠지’라는 막연한 한조각의 기대에 희망을 두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이러한 현실의 정체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로 하여금 현실의 정체를 보게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귀가 왕 노릇하는 마귀의 활동 무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을 통해서 생생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갖 악으로 가득합니다. 재물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거짓을 일삼으며 약자의 것을 약탈하기도 합니다. 항상 경쟁하면서 오직 이기기 위해 살아갑니다.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애를 쓰고 권력이라는 힘을 얻기 위해서 발버둥 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강자는 더욱 위로 올라가고 약자는 더욱 뒤로 밀려 나면 온갖 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약자들은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다며 원망을 내 뱉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과연 세상이 악해서일까요? 물론 세상이 악해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세상이 악하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귀라는 악의 근원이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일어나는 타락과 죽음의 이유가 모두 죄에 있으며 그 죄가 곧 마귀의 활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가 활동하는 이 세상에서 신자는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시험을 받으셔야 하는 이유 ◉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시험을 테스트로 이해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의 신앙을 테스트하기 위해 시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에서 통과를 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이니 시험에 지지 말고 이기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의도로 시험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마귀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세상의 실체와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주목하게 되면 결국 ‘마귀가 왕 노릇하는 세상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그 답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던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하게 되면 ‘예수님이 왕 노릇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역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것으로 죄의 길과 의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며 의의 길로 가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에 대한 안목이 열리는 것입니다.

 

 

◉ 무엇으로 시험했는가 ◉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아들이어든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천하만국을 보이며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어 네 것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제시한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거나 목표로 삼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들이고 누구든 마음속으로 ‘내 것이 되었으면’라고 열망하는 것들입니다.

 

 

마귀는 40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음으로 주리신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너의 배고픔을 해결해 봐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즉 구원자라는 것을 돌을 떡으로 만들어 증명해 보라는 뜻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이 경제적인 문제는 일시에 해결이 될 것입니다. 굶어 죽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일단 먹고 마시기 위한 삶에서 해방되기도 할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은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자를 원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중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린 자가 없고 배고픔이 없는 세계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누구든 그런 능력자라면 그와 손잡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보이는 세계에서는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자가 구원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그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라고 하는 것이 더 완벽한 말일 것 같은데 누가는 왜 그 말을 생략했을까요? 이것은 누차 말씀드린 대로 마태와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그 대상이 다른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로마의 압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데오빌로라는 로마의 높은 관원에게 쓴 편지입니다. 로마의 압제로 고통을 겪으며 주리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자신들을 배고픔에서 구원하는 능력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귀가 제시하는 메시아 상일뿐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참된 구원자는 말씀으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셨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가 편지를 쓰고 있는 데오빌로는 주린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것을 풍족히 누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데오빌로야 말로 성공자이며 복을 누리는 자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처럼 세상의 것으로 배부르고 풍족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여 보이지 않는 은혜의 세계에 대해 눈이 열렸을 때 그 은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험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데오빌로가 누리고 있는 권위와 영광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천하만국의 권위와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만국의 권위와 영광에 비하면 데오빌로의 권위와 영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천하만국의 권위와 영광보다 다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말에 귀 기울일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김으로 세상의 권위와 영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콧방귀를 낄 말로 들릴 뿐입니다.

 

 

세상의 권위와 영광이 복이라면 데오빌로와 같은 사람이야 말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복의 세계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세계의 백성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의 세계는 세상의 신분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의 근원입니다. 복의 근원 되신 분의 삶이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면 적어도 세상의 권위와 영광과는 상관없는 다른 복을 가지고 오셨다는 사실에 눈이 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믿음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왕 노릇하고 세상과는 다른 예수님의 복의 세계입니다.

 

 

세 번째의 시험은 신의 존재를 어떤 위험한 경우에도 우리가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육신이 어떤 위험에서도 건짐 받는 것으로 시험하여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고 백성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대로 하자면 데오빌로는 그가 누리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각하라고 불릴 만큼 권위와 영광을 누리고 있는 데오빌로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데오빌로도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답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

 

 

하지만 누가는 데오빌로가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이 열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서신을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왕 노릇하시는 은혜의 세계에 대해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시하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고 행복하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것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은혜의 세계에 눈이 열린 신자는 세상의 것으로 자유 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나를 자유하게 하실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신자는 예수님이 왕 노릇하시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보이지 않는 은혜의 세계보다는 주리지 않고 배부르며 세상의 권위와 영광을 누리고 어떤 위험에서도 하나님이 지켜주는 그런 세상에 마음을 두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보이는 세상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복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야 말로 마귀의 시험에 빠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도록 마귀의 시험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데오빌로와 같은 권위와 영광의 자리를 우러러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모든 길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운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만이 답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의 것이 우리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길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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