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07.29 16:22

(21강) 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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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17-26http://onlycross.net/videos/nuk/nuk-05172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설교>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의 중심에 인간을 놓고, 신앙 열심과 헌신과 봉사와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기 위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쉽습니다.

 

 

오늘 본문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가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은 접어두고 ‘어떻게 하면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일에 열심 내게 하고 서로 연합하여 봉사 하게 할까?’에 관심을 둔다면 본문의 해석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열심과 연합을 강조하며 주를 위해 열심내고, 신자들끼리 서로 연합하여 교회 일에 힘쓰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복음서에도 기록된 동일 사건에 대한 해석은 모두 동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 예수와 함께 한 주의 능력 ◉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 문제는 생각처럼 쉽지 만은 않습니다. 이유는 본문의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17절)는 말과 함께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구절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 본문의 내용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동일하게 기록 되어 있는데, 유독 누가만이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17절입니다.

 

 

특히 17절을 보면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문구대로 해석한다면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것이 예수님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의 능력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은 예수님이 곧 우리의 주가 되시는 분인데,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고 말함으로써 마치 예수님이 주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한 주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신약에서 주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누가는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예수님과 분리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점 때문에 본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먼저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는 말 때문에 예수님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져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런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 그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병 고침의 행위를 하나님과 연결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병 고침을 받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졌음을 말함으로써 단순히 병을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결과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가 고침 받은 일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깨끗하게 된 나병 환자를 제사장에게 보내어서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된 것은 단지 병이 나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소문을 듣고 몰려 온 수많은 무리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덕분에 병을 고침 받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병이 나았다면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쳐준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쳐주셔서 건강한 몸으로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위해 오셨다면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시험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마귀가 내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에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영광을 위해 ◉

 

 

예수님은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 되게 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안다면 신자는 자신의 본분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즉 자신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풍병자가 고침 받은 일도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말은 교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표어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할 뿐이지 정작 관심은 자신과, 자기 교회로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현장에는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와 있었습니다. 이들이 무슨 의도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자리에 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영광’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야 말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고 큰 소리치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규례와, 생각과, 방식을 지키기 위해 살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중풍병자를 향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아붙이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누가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문둥병을 고치신 일을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한 것으로 말한 것은 예수님의 병 고치심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증거임을 밝히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의 병 고침의 의미를 알았다면 예수님이야말로 주의 능력이 함께 하는 신적 존재임을 알았을 것이고,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도 알았을 것입니다.

 

 

◉ 그들의 믿음 ◉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님에게 함께 했다면 병 고침은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이 믿음이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이끄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이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그들의 믿음이란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린 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 중풍병자가 포함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의 믿음에 의미를 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상태에 의미를 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지붕까지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린 것을 보면 예수님만이 중풍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즉 중풍병자에게는 예수님만이 마지막 희망이고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비난을 예상할 수 있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뚫어서라도 중풍병자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자신의 침상을 메고 온 사람들로 인해서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메고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끌 수 있을 뿐입니다. 중풍병자가 자신의 나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이것을 믿음으로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지붕을 뚫은 것을 인간의 열심으로 해석을 하며, 인간의 열심이 병 고침이라는 기적이 있게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중심이 된 해석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중풍병자의 죄 사함 ◉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왜 죄 사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사실 중풍병자의 관심은 죄 사함이 아니라 중풍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풍병자의 죄 사함은 그의 의도와 원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가 중풍병자 이야기를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죄 사함은 인간의 열심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열심이 있는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자신들이야 말로 죄 사함을 받은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중풍병자는 자신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중풍병에 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한 중풍병자를 향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은 분명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을 자극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이 죄 사함 받는다면 자신들의 열심과 행위의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아붙이는 것도 자신들의 열심과 공로의 가치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했을 뿐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 있지만 그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어떤 자인지, 또 어떤 말을 하는지 듣고 살피고자 하는 의도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그들의 몸은 예수님 앞에 나와 있다고 해도 마음은 예수 밖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풍병자와 다른 점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 그리고 중풍병자를 비교 했을 때 누가 천국에 어울릴까요?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을까요? 이것을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목사, 장로와 병들고 가난해서 교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자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이끈 것은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은 믿음이 우리를 붙들어서 이끌어 감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고백이 있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풍병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를 예수님 앞에 나아가게 하고, 예수 안에 있게 함으로 죄 사함의 은총 아래 있게 하는 것이 믿음의 일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끈 것은 믿음입니다. 내 열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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