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8.21 16:01

(150강) 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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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23-28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242328.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설교>

 

◉ 미혹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이유 ◉

 

 

세상에는 이단과 사이비가 많습니다. 이들은 전혀 복음이 아닌 말로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설사 이단과 사이비라는 말을 듣지는 않는다 해도 복음과 상관이 없는 말로 교인들을 미혹하는 목사 아닌 목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도 되지 않는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세력이 점차 확장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왜 저런 이단과 사이비를 벌하시지 않느냐’라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가 성행하지 못하게 하시고 대신 참된 복음만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고 확장되게 하시면 믿는 자가 더 많아질 것이 아니냐’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거짓된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세력이 그 힘을 키우고 확장되어 가는데도 그냥 두고 보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끝의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23,24절)고 말씀합니다.

 

 

여기저기서 그리스도라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고 다른 복음과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는 이 모든 것들이 세상 끝을 보게 하는 징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징조를 통해서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 끝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위해 거짓된 자들을 존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징조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이 징조가 그대로 초대교회에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스스로를 높이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자에 대해 경계할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살후 2:4).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에 대해 경계할 것을 말한 것을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이 이르기 전 초대교회에는 거짓 사도와 거짓된 복음들이 성행했고 택한 자들을 미혹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의 징조로 말씀하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등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를 보여줌과 오늘 우리에게는 세상의 멸망의 때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말씀 안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면 세상은 결코 평온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세상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징조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갈 곳이 아니며, 우리를 보호해주고 지켜줄 곳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세상이 힘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피할 곳이 되시고 반석이 되심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살게 할 것입니다.

 

 

◉ 십자가와 큰 표적과 기사 ◉

 

 

믿음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증거합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게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으면 어떤 현상이 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고 보이는 것을 믿음으로 대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택한 백성을 미혹하는 도구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며 택한 자들을 미혹한다고 합니다.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함을 증거하고 자신들이 참된 선지자며 그리스도라고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미혹은 세상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세상의 끝이 이르기 전까지 사탄 역시 택한 자들을 미혹하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인해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만 마음을 두는 견고한 믿음위에 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에 쉽게 매료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임을 생각해 보면 큰 표적과 기사는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미혹의 조건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큰 표적과 기사는 누가 봐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이라면 그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참된 선지자고 사도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보여주기를 요구합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12장과 16장 두 번에 걸쳐 표적을 구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인정할 근거를 눈에 보이는 표적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는 말씀으로 표적을 구하는 것이 곧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증거합니다.

 

 

하늘로써 오는 표적, 즉 눈에 보이는 어떤 증거물을 요구하는 그들이야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믿지 않을 자들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사람의 마음을 끌 만한 눈에 보이는 매력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세상을 놀래게 할 만한 표적이 나타난 현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은 믿음이지 보이는 표적이 아닙니다. 그 어떤 큰 표적과 기사도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믿게 하는 능력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믿는 신자는 오직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뿐이기 때문에 어떤 표적과 기사에도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고한 믿음입니다.

 

 

◉ 보이는 것의 미혹 ◉

 

 

보이는 것에 매료되는 것은 제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1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성전을 보이려고 나아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축되고 있는 성전이 과연 무너지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세계 외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공로로 쌓아 올린 의와 착함, 아름다움 그 어떤 것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징조로 미리 말씀하시면서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미혹하는 거짓된 자들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택한 자들을 미혹한다는 것은 택한 자를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우상을 믿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과의 관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으며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보이는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찾는 것은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택한 자에 대한 미혹입니다. 그래서 거짓된 것은 항상 보이는 것으로 택한 자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하늘에 속한 새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새 시대로서의 영광은 드러나지 않고 가리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새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의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기 쉬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혼란의 시대와 신자 ◉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이 알 수 있게 나타나신다면 그때는 여기 저기 사사로이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모두 알 수 있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는 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26-27절에 보면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합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인다면 번개가 치는 지역의 모든 사람은 번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세상 모두가 알 수 있게 임하실 것이기 때문에 광야에 있다는 말도 골방에 있다는 말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광야로 몰려들고, 골방에 있다고 하면 골방에 몰려듭니다. 이것으로 누가 의와 상관이 없는 부정한 자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28절)는 말씀으로 표현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것을 통해서 독수리가 시체를 가까이 하고 좋아하는 부정한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독수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시체를 좋아하는 부정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주검을 가까이 하는 독수리처럼 보일 뿐입니다. 복음인지 복음이 아닌지 분별할 생각은 없고 단지 자기 마음에 들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에 이끌려 모여들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아멘’이라는 말로 응답을 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현실 하나하나가 말해주는 것은 세상은 끝이 있고,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참으로 혼란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수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지역에 선교사가 있어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기독교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은 복음이 혼잡해진 혼란의 시대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당연히 들을 수 있어야 하는 복음을 쉽게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지금의 시대입니다. 복음은 곧 외적인 어떤 결과, 다시 말해서 세상의 복이나 교회의 부흥과 같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으로 외적 결과에 치우침으로써 정작 복음은 외면해 버리고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며 자신의 힘과 의지로 결과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결과에만 치중하여 ‘저기에 가면 은혜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하면서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주검을 가까이 하는 독수리와 같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는 보이는 것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신앙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택한 자라면 이 믿음으로 보이는 것에 미혹되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신앙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거짓된 교훈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분을 위해서 지금도 거짓 선생을 남겨 놓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보이는 것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오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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