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9.11 13:05

(153강) 복 있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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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45-51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24455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설교>

 

◉ 종말은 기다림이 아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세상의 끝에 대해 생각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루살렘의 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세상의 끝에 대해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멸망의 때에 있을 징조를 말씀하시고, 그 같은 징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징조를 징조로 보지 못한 채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삶에 몰두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예루살렘의 실상임을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 삶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삶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자로써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은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주관자의 뜻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신자로서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삶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을 보면서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못하게 됩니다. 지진이 나고 기근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삶만 무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재난이 있다고 해도 내 자식 유치원 보내고 학원 보내는 일이 더 신경 쓰이고, 내 일이 더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을 향해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44절)는 말씀을 하십니다.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은 종말을 믿고 기다리는 신자로써 특별히 준비해야 할 다른 삶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40,41절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데려가고 버려둠을 당한 사람의 삶의 차이는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방식의 삶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려감과 버려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42절). 그리고 깨어 있는 신자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자에게 종말은 단지 시간적 의미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시간적 의미란 세상의 종말이 이루어질 날과 시간에 관심을 둔다는 뜻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먼 훗날에 일어날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종말을 시간적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종말에 대해 말씀하신지 이천년이 지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뭔가 우리의 인식에서 지금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사건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말을 시간적 의미에서 생각하게 되면 종말이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고 결국 현재의 삶과는 관계없는 문제로 여긴 채 자기의 삶에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 종말과 삶의 문제 ◉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에서 종말을 단지 기다려야 하는 어떤 때로 말씀하지 않고 삶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45절의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고, 49절의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 여기고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악한 종’입니다.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종말을 시간적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간적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에 빨리 올 것인가 더디 올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 지금까지 오시지 않았으니 더디 올 것이라는 계산 아래 자신의 삶에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말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사는 것이고,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주인에게 맡은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을 믿는 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한 종은 동료들을 때리며 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만 있습니다. 종으로써 할 일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주인이 맡긴 일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자기 생활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산 종의 결말은 주인이 왔을 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복이 있을 것이고 악한 종은 벌에 처해지며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는 것으로 각기 다르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신자가 감사할 것은 영화나 드라마의 결말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지만 세상의 결말이나 우리 인생의 결말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결말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멸망의 때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으로 결말을 보여주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삶에 대해 실망도 불만도 갖지 말고 신자에게 맡겨진 일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제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멸망의 때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주인이 맡긴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잘 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자의 임함’을 재림의 사건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예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것으로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50,51절)는 말씀은 지금 제자들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자리에 있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곧 세상 마지막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심판으로 이어질 것임을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현재의 삶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내 일만 잘되면 된다는 식으로 내 생활에 몰두한 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멸망의 함정으로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보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지혜롭고 충성된 종을 주인이 왔을 때 복 있는 자로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지혜롭고 충성된 종의 자세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종말을 알고 세상의 끝과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대해 믿는다면 복 있는 자로 말씀한 종에 대해 마음을 두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분은 심판의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멸망이 아니라 복 있는 자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 같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 옳습니다.

 

 

구원은 원하면서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것처럼 악한 종의 삶을 즐긴다면 그는 진심으로 구원을 원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삶을 즐기고자 할 뿐이고 구원은 단지 선택 사항으로 보장받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의 삶이 그와 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물론 삶을 즐기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나의 삶에 즐거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인에게 맡은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맡긴 일은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입니다. 때를 따라 주인의 창고에서 양식을 꺼내다가 집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배부르게 하는 것이 종의 일입니다. 종이 이 일에 게으르게 되면 주인의 집 사람들이 양식을 먹지 못해 배고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이 주인에게 맡은 일을 게을리 할 때 자신으로 인해 양식을 먹지 못하는 주인의 집 사람들이 있게 됨을 생각하면서 양식을 나눠주는 일에 충실한 것이야 말로 주인에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자세인 것입니다.

 

 

때를 따라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입니다. 이 일에 매이면 자신의 삶을 즐길 수도 없습니다. 주인도 없는데 자기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자기 삶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맡긴 일보다는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배고프게 될 주인의 집 사람들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악한 종의 자세입니다.

 

 

◉ 종에게 맡겨진 일 ◉

 

 

양식을 꺼내다가 주인이 맡긴 집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존재한 이유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줄 자로 세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단지 제사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 은혜와 사랑이 어떠한가를 보여줄 도구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성전 또한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종이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방탕한 생활로 전락한 것처럼 성전에서 장사판이 벌어지면서 횡포를 부리는 곳이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에 멸망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을 향한 것이고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내용임을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예루살렘이 망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전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제대로 행하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와 먹고 마시는 것처럼 자기 생활에 몰두하고 즐기는 악한 종으로 전락하였기에 멸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이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창고에서 양식을 집 사람들에게 나눠줄 종을 세우셨고 그들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인의 뜻을 따라 양식을 제 때에 나눠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으로써 존재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제자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신자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애당초 자기의 삶을 즐길 자로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에 우리가 원하는 삶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일을 맡았고 그 일은 양식을 제 때에 나눠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생명이 되는 복음을 나눠줄 자로 부름 받은 것이 신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의 일에 몰두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라는 것에 매이는 것이 교회가 교회의 일에 매이고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양식을 나눠주는 것을 번거롭게 여깁니다. 양식을 나눠눠서 주인이 맡긴 집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보다 내 배부름과 즐거움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악한 종의 자세이며 이것이 바로 종말의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멸망의 자리에 처할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길로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 길로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누구든 죽는다는 길로 간다면 그것은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멸망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길을 가다가 망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고 있고 그러면서도 멸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여러분께 맡겨진 종의 일은 양식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일이 아니라 주인의 집 사람들의 배부름을 위한 일입니다. 이 일을 하는 그가 자신의 생활이 아니라 주인이 맡겨준 일에 몰두하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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