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2.27 16:59

(127강) 품꾼의 불평

조회 수 5788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 20:1-16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200116(2).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설교>

◉ 현재의 삶과 연결되어야 하는 천국 ◉

 

지난 주일에는 각기 다른 시간에 품꾼을 부르고 삯은 모든 품꾼에게 동일하게 지불하는 포도원 주인을 통해서 천국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포도원 주인을 통해서 배우게 된 천국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 중점이 천국에서의 상은 다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은 일한 대로 받는 것이지만, 포도원 주인은 일한 대로가 아니라 모든 품꾼에게 동일한 삯을 지불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한 시간, 분량, 결과 등을 따져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의 삯이 아니라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주인이 품꾼을 부른 것은 애당초 포도원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품꾼들의 생계, 즉 생명을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의 상이 다르다는 논리는 자기 백성의 생명을 위해 부르신 하나님이 사랑을 무시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동일한 본문으로 일을 더 많이 하고도 가장 적게 일한 품꾼과 동일한 삯을 받은 품꾼들의 불평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일반적 상황이라면 품꾼들은 주인에게 받은 품삯으로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에 품삯을 받을 때가 가장 즐거워야 합니다. 물론 품꾼들은 품삯을 받기 전까지는 그런 즐거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즐거움은 가장 늦게 온 품꾼이 삯을 받는 것을 보면서 가지게 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불평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거움과 기쁨 대신 갖게 되는 불평이나 원망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이 함께 하시는 새 사람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다스리는 세계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천국이나 구원, 영생이라는 말을 현재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용어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천국은 죽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구원된 것으로 여기며, 영생 또한 나중에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존한 상태의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재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상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 구원, 영생 이 모든 것은 현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천국과 구원, 영생 이 모든 것은 단어는 다르지만 각기 다른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천국이 곧 구원을 의미하고, 구원이 곧 영생을 의미하며, 영생이 곧 천국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 하나를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십자가에 죽으심)이 되심으로써 죄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진 신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천국이고 구원이며 영생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들은 단순한 기독교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생생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신자가 현재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산다면 그것이 곧 천국이고,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앎으로써 참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이며 영생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실감하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우리의 시선은 항상 육신이 몸담고 있는 주변 환경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주변 환경의 좋고 나쁨을 통해서 편해지기도 하고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육신이 누리는 편함의 상태를 천국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 신자는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 ◉

 

그런데 신자가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육신이 몸담은 환경은 변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을 누리는 환경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 무시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앎으로 인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까? 없다면 뭔가 신자로써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과 구원, 영생이라는 이 말들이 지금 현재와는 상관없는 저 멀리 있는 세계, 즉 죽은 다음에나 누릴 것으로 밀쳐 버리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앎으로써 달라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입니다. 물론 마음의 본질이 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령 미움이 있는 마음이 미움이 전혀 없이 사랑만 있는 마음으로 달라진다는 뜻이 아니란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뜻으로 표현하자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불평의 원인 ◉

 

여러분은 살면서 기쁨과 미움과 실망과 분노 등등의 마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어느 한 사건이 기쁨이 되었다가 실망이 되고 분노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포도원 품꾼들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품꾼은 일일 노동자입니다. 일일 노동자는 하루 노동한 삯으로 하루, 또는 이틀을 온 가족이 먹고 살기 때문에 하루 일할 곳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포도원 주인에 의해서 포도원 일꾼으로 택함 받고 부름 받았다는 것은 매우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 날 하루는 공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며, 온 가족이 굶지 않게 되었다는 기쁨인 것입니다. 만약 일할 곳을 얻기가 힘든 시절이었다면 기쁨은 더 컸을 것입니다.

 

 

주인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일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기쁨도 포도원 주인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포도원을 가진 부자인데 나는 노동이나 하면서 겨우 먹고 살고 있는 처지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쨌든 품꾼들은 가장 늦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면서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은 저 사람보다는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동일한 삯을 받자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품꾼들은 포도원의 품꾼으로 부름 받고 일을 하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기쁨과 기대와 실망과 불평이 교차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들의 불평은 이해가 되고 타당하며 논리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으로는 기쁨과 감사라는 능력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행복 또한 상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품꾼의 불평의 원인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대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실망과 불평으로 이끌어 가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한 불평과 실망은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기쁨과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누리고 더 높은 자리에 오름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위해 타인과 경쟁하면서 이기려고 하고, 이기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자기 능력을 보이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대가가 타인보다 많을 때는 흡족해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적을 때는 실망하면서 불평을 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연봉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일하게 월급을 지불하는 것보다는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르게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공평하고 정당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천국 문제까지 그대로 연계되어서 세상에서 사는 동안 착한 일도 많이 하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을 잘했으니 천국에서도 남과 다른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무엇에 마음을 둘까 ◉

 

품꾼의 불평은 한 시간만 일하고도 자신과 동일한 삯을 받은 품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수고와 능력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여겨졌기 때문에 불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주인의 약속대로 자신이 받은 것에만 시선을 두었다면 불평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사람에게 주어질 약속된 삯이었고, 그것은 온 가족이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일용할 양식이 주어졌다는 것에 마음을 두면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적게 일한 사람이 적은 삯을 받는다면 그 사람의 가족은 그만큼 힘들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적게 일한 품꾼에게도 자신과 동일하게 지불한 주인의 마음에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결국 해답은 우리의 존재에 초점을 두는 것에 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기쁨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가가 기쁨으로 다가온다면 다른 사람이 얼마를 받는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을 평가하고 계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은총을 받고 삽니다. 사람은 공기가 없으면 살수 없지만 부자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공기를 마시지 않습니다. 부자는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다섯 끼 열 끼를 먹으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온갖 즐거운 것들을 잠도 자지 않으면서 평생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싸고 좋은 집에 살면 편리한 것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좀 더 나은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돈을 가지고 누리는 것들은 참으로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은 돈으로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이 받은 것을 바라보면서 많고 적고 따지고, 그것으로 불평해 하면서 하나님에게 받은 은총의 본질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품꾼에게 처음에 자신을 일꾼으로 불러준 주인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다면 그 고마움이 끝까지 유지되었어야 합니다. 그것은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데나리온이 주어진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주인이 준 한 데나리온으로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인에게 한 데나리온을 받은 모든 품꾼이 주인에게 감사하는 같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품꾼이 기뻐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기뻐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 김병섭 2011.03.01 15:15
    동영상 스마트폰에서도 볼수있게 해주세요...
  • 신윤식 2011.03.01 19:29
    스마트폰에서 열리는 동영상이 따로 있나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25
2011.05.29 71 마태복음 (139강) 큰 계명 신윤식 5335
2011.05.22 70 마태복음 (138강) 부활 문제 신윤식 5888
2011.05.15 69 마태복음 (137강) 세금 문제 신윤식 5145
2011.05.08 68 마태복음 (136강) 혼인잔치 비유 신윤식 5423
2011.05.01 67 마태복음 (135강) 악한 농부 신윤식 5387
2011.04.17 66 마태복음 (134강) 세리와 창녀 먼저 신윤식 5719
2011.04.10 65 마태복음 (133강) 권위의 문제 신윤식 5559
2011.04.03 64 마태복음 (132강)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 신윤식 6377
2011.03.27 63 마태복음 (131강) 성전과 예수님 신윤식 5191
2011.03.20 62 마태복음 (130강) 나귀 새끼와 예수님 신윤식 6614
2011.03.13 61 마태복음 (129강) 불쌍히 여기소서 신윤식 5532
2011.03.06 60 마태복음 (128강) 인자가 온 것은 신윤식 5803
2011.02.27 » 마태복음 (127강) 품꾼의 불평 2 신윤식 5788
2011.02.20 58 마태복음 (126강) 천국과 품꾼 신윤식 6013
2011.02.13 57 마태복음 (125강) 보상의 문제 신윤식 5444
2011.02.06 56 마태복음 (124강) 천국과 부자 신윤식 5586
2011.01.30 55 마태복음 (123강) 부자의 근심 신윤식 5587
2011.01.23 54 마태복음 (122강) 천국과 아이 신윤식 5480
2011.01.16 53 마태복음 (121강) 천국과 고자 신윤식 8420
2011.01.09 52 마태복음 (120강) 천국과 이혼 신윤식 5440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Nex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