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5.08 17:13

(136강) 혼인잔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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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1-14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220114.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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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설교>

 

◉ 유대인의 천국관을 책망하는 비유 ◉

 

본문의 비유는 “천국은 마치”라고 시작하는 것을 보면 천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천국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갖고 있었던 천국관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1절에서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본문의 혼인잔치 비유는 21장에 말씀하신 비유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장에는 이미 살펴 본 대로 두 아들 비유와 포도원의 악한 농부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들은 예수님에게 권위에 대한 문제를 따지는 유대 지도자들의 악함을 드러내고 책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농부의 비유를 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켜 하는 것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중심사상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의로운 백성이며 따라서 천국도 당연히 자신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아버지의 말에 ‘알았다’며 겉으로는 순종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거부하는 맏아들이며, 오히려 율법을 어기며 죄를 범하고 살아감으로써 저주의 자식으로 여겼던 세리와 창녀들이 처음에는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지만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하는 둘째 아들이며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의 천국관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의 사고와 원칙을 뒤엎는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리와 창녀는 죄밖에 없는 더러운 존재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천국에 간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대제사장과 장로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적으로 의롭고 신실한 지도자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포도원의 악한 농부 비유에서는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주고 타국으로 떠난 주인이 열매를 받고자 할 때 주인이 원하는 열매를 내 놓기보다는 오히려 종을 죽이고 나중에는 아들까지 죽여 버린 악한 농부가 곧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며,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쓸모없는 돌로 여겨 버려 버린 건축자와 같으며 결국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 스스로가 걸려 넘어져서 깨어지고 깔려서 먼지처럼 흩어지고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비유들은 자신들을 당연히 천국 백성으로 여겼던 유대 지도자들의 생각을 뒤 엎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의 비유가 이 두 비유와 계속 연결된 내용임을 생각해 보면 천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된 천국관을 드러내고 어떤 사고방식이 천국에 합당하지 않는 가를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본문의 비유가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전도를 의미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9,10절)는 구절을 신자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교회에 가득 채워야 한다는 뜻으로 왜곡하여 말하지만 그러한 말들은 성경 구절을 이용하여 교회를 향한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뜻과 의도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자신의 욕망과 자기 의도에만 충실한 전형적인 종교인의 말일 뿐입니다.

 

 

◉ 임금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 ◉

 

 

본문의 비유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풀고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고 하였는데 오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감히 임금의 초청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임금에게 초청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만사를 제쳐두고 초청에 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임금이 다른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오라고 하였을 때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임금의 종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잔치에 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종을 죽이고 모욕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당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천국관을 드러내고 책망하기 위한 설명임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 말씀을 대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 비유를 보면 먼저 임금에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임금의 아들을 위한 혼인 잔치에 미리 청첩장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이들은 어떤 조건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시고 언약을 세우시고 성전을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 이 모든 것이 임금에게 청함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청함을 받은 상태였을 뿐 온전한 혼인잔치는 아니었습니다. 즉 아들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이나 그들을 택하여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나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온전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이나 성전에서의 은혜는 아들이 옴으로 인해서 온전히 누리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임금 아들의 혼인잔치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각자 핑계를 대고 자기 볼일을 보기 바쁘고 나중에는 종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아들의 혼인잔치에 무관심했고 싫어했습니다. 오직 자기 일이 중요했고 자기 일에 바빴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왕의 초청을 거절 할 수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우리의 상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당시 청함을 받은 사람에 해당되는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알아 가는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임금의 초청을 거절하고 종까지 죽였다는 것은 임금을 철저히 무시했음을 뜻합니다.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의 권세에 순종하기보다는 오직 자기를 위해 살았고 자기 길을 갔을 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임금에게 청함을 받은 특별한 존재로 여겼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을 청해준 임금의 은혜를 생각했었다면 임금의 백성으로써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임금의 다스림으로 인해 주어진 복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일에 중요성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청함에 순종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청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그처럼 임금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며 임금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임금의 권세와 은혜를 무시하고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 청함까지 거부하고 싫어하며 살아가는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 천국은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로만 ◉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을 창조주로 섬기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경외하며 마지막 때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로 믿고 있는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고 그 권위에 굴복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아들의 혼인잔치를 내 일보다는 덜 중요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내 일에 충실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아들의 혼인잔치에 참여해서 얻는 기쁨보다는 세상에서의 내 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기쁨을 더 누리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현실을 이 비유에서 엿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른다고 합니다(7절). 임금의 분노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노하신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일까요? 당연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당연한 것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입니다.

 

 

임금은 다시 종들에게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9절)고 지시하고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는 결국 잔치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예복에 관심을 두면서 예복이 무엇인지를 그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제 생각은 예복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는 것은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났으니 우리는 예복을 입은 자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자’는 것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일 뿐입니다.

 

 

14절을 보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으로 비유를 끝냅니다. 결국 천국은 청함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택함을 받은 자들이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청함을 받았으되 자신의 일까지 버려둔 채 임금의 부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았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잔치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예복을 입지 않으면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오직 택함으로만 들어간다는 것이 비유의 핵심인 것입니다.

 

 

택함으로만 들어간다는 말씀 앞에 인간의 의나 행함은 무력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택함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택함 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음을 생각한다면 택함은 인간의 모든 의와 행함을 내려놓게 하고 나같은 자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택함 받은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천국 백성임을 당연시 했습니다. 제사장과 장로와 같은 지도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습니다. 자기 의로 똘똘 뭉쳤을 뿐 하나님의 은혜가 현재의 자신을 있게 했음에 대해서는 무시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세를 무시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의 일에 매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과연 천국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복종하고자 하는 뜻도 없이 다만 내 일에 매어 사는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십시오. 이런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임금이 청하고 그 청함에 순종하여 들어가는 천국이 아니라 임금의 택함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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