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7.25 17:32

(71강) 빛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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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7-8http://onlycross.net/videos/eph/eph-0507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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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설교>

 

사도 바울은 8절에서 신자를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빛이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여 자신이 빛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힘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빛으로 존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빛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라고 말한 것처럼 어둠에 익숙하고 길들여진 존재가 우리입니다. 그런 우리가 빛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둠을 어둠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어둠을 좇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도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합니다. 이 말이 고상한 윤리와 도덕적인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고상한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는 본을 보이셨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서 영광을 얻고자 하는 길로 가신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영광됨을 위해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길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신 빛의 길입니다.

 

 

신자는 예수님께 속한 자로 예수님이 가신 길로 가야 할 빛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윤리나 도덕과 무관했던 것처럼 신자 역시 윤리, 도덕과는 무관한 길로 가야 할 사람입니다. 즉 빛으로 사는 것은 훌륭한 행실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의 자녀로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빛은 어둠을 비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어둠의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도와 구제를 힘써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세상이 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향한 환상일 뿐입니다.

 

 

어둠은 스스로를 어둠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빛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들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빛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을 환영하지 않고 죽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자신들이 어둠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어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니 어둠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이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거하여 계속 빛으로 남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빛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임을 생각한다면 빛의 자녀로 행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환영하고 인정받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세상이 곧 어둠인데 빛이 어둠으로부터 인정하고 받고 환영받는 것은 모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사도의 말에서 특별히 나타내고 실천해야 할 행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런 생각이 어둠이었던 우리를 여전히 어둠에 붙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둠과 빛은 생활환경이나 행실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어둠의 세계는 범죄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빈민가와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빛은 그런 어둠의 세계에 도움을 주어 환경을 개선하고 범죄가 줄도록 도와주는 선행을 베푸는 것 정도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둠과 빛이라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세상에는 이미 빛의 세계가 존재했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빛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은 어둠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둠의 상태는 세상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어둠은 곧 죄의 세력에 장악된 상태를 뜻합니다. 윤리와 도덕 역시 죄에 장악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둠일 뿐입니다. 윤리와 도덕적으로 살고 선행을 행하는데 어떻게 어둠일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둠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상태임을 생각한다면 왜 세상이 말하는 선행까지도 어둠일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행을 뛰어 넘어서 종교 활동까지 어둠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반발한 것입니다.

 

 

어둠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기에 용서가 없습니다. 이것이 어둠의 특징입니다. 반변에 빛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아래 있습니다. 빛의 자녀라는 것도 용서로 인해 거룩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어둠이었던 우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용서로 이미 빛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특별한 선행이나 종교적 행함을 요구하는 의미의 ‘행하라’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어둠에 있게 되면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함으로 죄를 씻고 구원 받고자하는 열심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항상 자신의 행함을 보면서 구원을 확신하기도 하고 자기 구원에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빛의 자녀로 존재한다면 자신의 행함이 아니라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로 인한 용서에 마음을 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행함으로 거룩하게 되었음을 믿기 때문에 자신의 행함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고 따라서 교회의 관계로 함께 했을 때도 행함을 기준하여 형제의 믿음을 평가하거나 차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빛은 우리가 만들어 내어야 할 덕목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천으로 우리가 빛으로 증거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힘과 실천으로 스스로를 빛으로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이 곧 어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고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빛의 지녀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로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완전으로 믿는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모든 의를 부인하는 그가 빛의 자녀인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를 부인하게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완전으로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율법은 자연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는 빛의 자녀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켜야 할 율법은 없는 것이고 다만 율법의 완전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여김 받는 생명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은 자신의 행함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함과 상관없이 의로운 자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행과 종교적 실천이 없어도 이미 의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로운 자로 사는 것이 빛의 자녀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의 근거를 자신의 행함에서 찾는 습성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둠에 깊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때문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이미 그리스도로 의로워 졌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둠의 사고방식이고 고질적인 습성일 뿐입니다.

 

 

복음을 말하면 많은 신자들이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살라’는 말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라’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 복음이 납득이 안되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인한 자유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기 때문에 율법에 매이지 않은 자유자로 사는 것이 빛의 자녀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어려워합니다. 행함이 있는 것을 신앙인의 삶으로 인정하는 어둠의 습성에 오랫동안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자유가 되고 그 자유가 빛으로 드러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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