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9.05 19:43

(77강) 그리스도와 교회

조회 수 357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엡 5:22-33http://onlycross.net/videos/eph/eph-05223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창 2:24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설교>

 

본문은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좋은 부부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2절)고 말한 것을 보면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내세워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과 뒤에 언급되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한 내용 때문에 지금껏 교회에 대해 말하던 바울이 갑자기 가정 문제를 말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하고 이어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계속 복종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본문의 내용은 지금의 부부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실천을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만약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면 순순히 수긍하며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설사 받아들였다 해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반대로 남편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고 하면 역시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사랑은 자기 몸을 내어 놓으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여 결혼을 하겠지만 자기 몸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일 남편은 없습니다. 결국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부부가 된다 해도 드러나는 것은 복종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현실뿐입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은 지독한 자기중심이라는 죄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부부가 아닌 혼자 몸으로 살아갈 때는 잘 보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부부라는 관계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때는 아주 선명하게 잘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16절)고 말하고,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8절)고 말합니다. 때의 악함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사건 사고를 생각할 것 없이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면 됩니다. 자기중심에서 자기를 위하여 살면서 복종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실체를 보며 때의 악함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늘 안전지대에 있다고 생각하고 악함은 자신 밖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하는 바울의 의도에 가까이 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게 그리스도는 머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교회를 위해 몸을 버리는 사랑을 베푸셨다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사랑 아래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버리심으로 악한 우리가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연합되기 전에 우리는 홀로 살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살면 됩니다. 함께 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책임져 주는 분을 의지하는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분이 책임지시고 대신 우리는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문제를 대신 책임져 주시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종은 힘에 대한 강제적 굴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자연히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이 아내에게 자신을 머리로 여기고 주께 하듯 복종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을 아내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사랑하지도 않고 복종만을 원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적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26,27절을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이고 말씀으로 아내를 거룩한 자 되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남편은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편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이 같은 사랑을 받은 관계로 함께 하는 신부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의 위치에 있는 교회로서 남편에게 할 일은 복종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존재하고 자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정의 행복이 등장합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면 가정이 행복해집니까?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여기고 사랑한다 해도 그것으로 아내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사랑한다 해도 아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로 그것이 남편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놓으셨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세요’라며 늘 불만만 늘어놓습니다.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가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자기 만족, 자기 행복으로만 달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참된 가정은 없습니다.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로 묶어서 가족이라고 하지만 참된 가족 역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말씀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처럼 사랑해주면 내 가정이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환상 속에 사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종하라는 남편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단지 돈 벌어다주는 남편이 아니라 자신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남편임을 알고 아내 된 나의 어떤 모습에 대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큰 사랑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모였을 때 증거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만 드러날 때 그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 아래 있기에 그리스도께 잘 보여야 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 부부가 서로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부부가 서로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면 뭔가 노리고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이 잘 보이고자 하는 것은 부부의 관계에서 나올 수 없는 모습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아무리 많이 사랑한다고 해도 아담이 하와를 보고 말했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관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린 죽는 순간까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나누어진 관계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참된 가정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때문에 아내든 남편이든 서로에게 기대를 하기보다 주를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주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 사랑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남편을 보고 아내를 보기보다 주를 먼저 생각한다면 상대방의 트집을 잡기보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먼저 마음을 두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여러분에게 조금씩 만족과 감사로 채워진다면 남편의 부족, 아내의 부족보다는 나 자신의 부족함이 먼저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가 교회에서 나타나지는 것이 부부관계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09
2015.10.31 431 에베소서 (83강) 구하라 신윤식 3348
2015.10.24 430 에베소서 (82강) 진리의 사람 신윤식 3396
2015.10.03 429 에베소서 (81강) 씨름의 상대 신윤식 3624
2015.09.26 428 에베소서 (80강) 전신갑주 신윤식 3909
2015.09.19 427 에베소서 (79강) 종과 상전 신윤식 3478
2015.09.12 426 에베소서 (78강) 부모와 자녀 신윤식 3638
2015.09.05 » 에베소서 (77강) 그리스도와 교회 신윤식 3579
2015.08.29 424 에베소서 (76강) 피차 복종하라 신윤식 3595
2015.08.22 423 에베소서 (75강) 성령의 충만 신윤식 3565
2015.08.15 422 에베소서 (74강) 세월을 아끼라 1 신윤식 3605
2015.08.08 421 에베소서 (73강) 어둠의 일 신윤식 3567
2015.08.01 420 에베소서 (72강) 빛의 열매 신윤식 3563
2015.07.25 419 에베소서 (71강) 빛의 자녀 신윤식 3540
2015.07.18 418 에베소서 (70강) 헛된 말 신윤식 3293
2015.07.11 417 에베소서 (69강) 성도에게 마땅한 일 신윤식 3356
2015.07.04 416 에베소서 (68강) 하나님을 본받음 신윤식 3435
2015.06.27 415 에베소서 (67강) 성령의 근심 신윤식 3458
2015.06.20 414 에베소서 (66강) 선한 말 신윤식 3201
2015.06.13 413 에베소서 (65강) 도둑질 하지 말고 신윤식 3320
2015.06.06 412 에베소서 (64강) 분을 품지 말고 신윤식 455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6 Nex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