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9.19 19:58

(79강) 종과 상전

조회 수 347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엡 6:5-9http://onlycross.net/videos/eph/eph-0605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동영상은 없습니다.

 

 

<본문>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설교>

 

사도 바울이 에베소 신자들에게 계속 말해왔던 것은 신자의 신자 됨에 대한 원인과 결과입니다. 본래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고 진노의 자식이었을 뿐인데 그런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신자 되게 하셨고 신자 되게 하심으로 어떤 신분으로 새롭게 하셨는지에 대해서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바울의 증거를 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더욱 깊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신자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을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로 말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본문의 종과 상전의 관계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아래 있게 된 빛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종과 상전은 극과 극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상전은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인 반면에 종은 인간으로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종은 상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고 상전은 종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종과 상전의 관계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종의 신분이나 제도는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 구조 안에서 종과 상전은 사라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구조 안에서 상전은 분명 존재하고, 그 상전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위치의 인간 또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과 상전은 현대 사회에서도 존재하고 신자 또한 종의 위치, 상전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보다는 상전의 위치에 있고 싶어 합니다. 권력과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만 바울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관계입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권력과 힘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비록 사회라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실제 살아가는 현실은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잊게 되면 사회라는 현실에서 예수님과의 관계 밖에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방식과 사고를 가지고 자기를 위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신자의 신자 됨은 교회 생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교회 생활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여긴다면 그는 신자 됨에 대해 무지한 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조건과 환경에서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고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물음 앞에서 종과 상전은 사회적 존재 위치를 초월하여 전혀 새로운 관계로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종들을 향하여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5-7절)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제 종의 입장에 있다면 바울의 말은 불편하게 들릴 것입니다. 종은 그 신분만으로도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종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종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종의 입장을 고려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입장을 바울이 고려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종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상전 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관심은 종이든 상전이든 하나님이 있게 하신 조건과 위치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으로만 향할 뿐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있게 하신 조건과 형편에서 자신이 처한 신세나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하고 불평하기보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일에만 마음을 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전도 다르지 않습니다. 9절에 보면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말합니다.

 

 

상전에게는 종을 위협하는 것을 그치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종과 상전의 참된 상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종의 상전은 그리스도이시고 상전의 상전도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주께 순종해야 할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이 있게 하신 사회적 조건을 마치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이며 그 자리에서 주께 순종하는 종으로 존재하는 것이 참된 신자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기는 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 사회적 조건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이왕이면 이기는 자의 위치와 조건이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즉 이기는 자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바른 수단과 방법을 넘어서라도 이기려고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는 이기는 것만이 최고이고 복이 아니라 지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역할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가 함께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모두가 종이고 모두가 상전입니다. 누군가에게 순종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누군가를 위협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라도 참된 복음을 말한다면 마땅히 그 말에 순종하게 됩니다. ‘너만 아냐?’라는 말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참된 복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서 내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몸, 교회의 관계에서 나의 자존심이라는 것은 나와질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며 충돌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의 형편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 풍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풍족한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것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형편의 어려움과 풍족은 모두 지나가는 것일 뿐이고 영원한 것은 그리스도의 세계이며 신자는 이미 그 세계의 백성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이고 기쁨이며 감사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조건과 위치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여기거나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해서 우월한 자리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엡 2: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처럼 신자는 이미 하나님께 선물을 받은 자로 존재합니다. 세상에서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믿음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이긴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이라는 신분도 상전이라는 신분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미 없는 것입니다. 상전이되 상전으로 살지 않고 종이되 종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 신자로써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에 마음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나가는 것들 때문에 실망하지 마시고 이미 주어진 영원한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12
2015.10.31 431 에베소서 (83강) 구하라 신윤식 3348
2015.10.24 430 에베소서 (82강) 진리의 사람 신윤식 3396
2015.10.03 429 에베소서 (81강) 씨름의 상대 신윤식 3624
2015.09.26 428 에베소서 (80강) 전신갑주 신윤식 3909
2015.09.19 » 에베소서 (79강) 종과 상전 신윤식 3479
2015.09.12 426 에베소서 (78강) 부모와 자녀 신윤식 3638
2015.09.05 425 에베소서 (77강) 그리스도와 교회 신윤식 3579
2015.08.29 424 에베소서 (76강) 피차 복종하라 신윤식 3597
2015.08.22 423 에베소서 (75강) 성령의 충만 신윤식 3565
2015.08.15 422 에베소서 (74강) 세월을 아끼라 1 신윤식 3606
2015.08.08 421 에베소서 (73강) 어둠의 일 신윤식 3568
2015.08.01 420 에베소서 (72강) 빛의 열매 신윤식 3564
2015.07.25 419 에베소서 (71강) 빛의 자녀 신윤식 3542
2015.07.18 418 에베소서 (70강) 헛된 말 신윤식 3293
2015.07.11 417 에베소서 (69강) 성도에게 마땅한 일 신윤식 3356
2015.07.04 416 에베소서 (68강) 하나님을 본받음 신윤식 3436
2015.06.27 415 에베소서 (67강) 성령의 근심 신윤식 3458
2015.06.20 414 에베소서 (66강) 선한 말 신윤식 3201
2015.06.13 413 에베소서 (65강) 도둑질 하지 말고 신윤식 3320
2015.06.06 412 에베소서 (64강) 분을 품지 말고 신윤식 455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6 Nex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