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1.18 09:55

(45강) 하나님의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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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4-19http://onlycross.net/videos/eph/eph-031419(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능력을 초월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모든 일은 우리의 지식으로 측량할 수 없는 깊고 높고 놀라운 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은 ‘신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비하신 분이고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신비롭고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는 것 역시 신비인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신비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을 말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을 누가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측량할 수 없기에 이해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 역시 신비입니다.

 

 

롬 5:3절에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말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한다는 것은 환난에서 건져 줌으로 인해 즐거움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환난은 그대로 있지만 다른 무엇인가로 인해 즐거움에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환난에서 건져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신을 찾는 것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환난을 막아 보거나 또는 주어진 환난에서 건짐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은 그리스도와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그리스도가 인생에 답이 된다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환난이 있을 때도 그리스도가 답이 되어야 하고 풍요로운 삶에서도 항상 그리스도가 답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이라는 신비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19절 뒤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충만’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우리에게 나타내고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충만의 그것이 무엇일까요? 물질적 풍요입니까? 아니면 현재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질병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지금 말씀드린 것으로 인생이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풍요로 채워지고 평안으로 채워지고 기적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들로 채워진다고 해서 인생의 충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늘 부족함과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 나았다고 해서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결국 세상에는 우리의 충만이 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 말로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고 충만입니다. 제한적이지 않고 무한하며 측량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기에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충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기독교의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빙자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방향이 자신의 충만으로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충만이시라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더 이상 스스로를 채워야 할 무엇이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그리스도로 인한 충만을 모르기 때문에 기도가 종교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도의 기도에서 어떤 차이점을 발견합니까? 사도의 기도는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방향도 목적도 아닙니다. 더 이상 채워야 할 필요가 없는 충만으로 충만해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즉 이미 확보되어 있는 충만의 세계에 눈을 뜨고 그 충만을 누리는 신자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자신이 현재 보다 더 나아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니만큼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얼마만큼 나아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만약 평생 동안 나아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평생 자신에 대한 충만은 누리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것 밖에 안돼’라며 자신에 대한 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신자에게 나아져야 할 것이 있다면 신앙의 신비한 세계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사랑이 우리를 충만하게 한 충만의 세계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게 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신앙의 신비를 알게 되면 내가 나를 나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헛된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저울질 하는 것 또한 미련한 일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나아지려면 이러한 나아짐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인격적으로 행동적으로 나아지는 것이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믿음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격이 훌륭해지고 행동 또한 나아지는 것을 믿음의 열매, 또는 증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믿음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니면 사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여러분에게 나타나야 할 믿음의 증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대면하고 알게 된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곧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하기에 세상 것으로 충만하고자 하는 싸움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누가 더 믿음이 좋은지 경쟁하는 싸움에도 휘말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은혜와 사랑에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는 삶으로 가기를 힘쓰게 됩니다. 이것이 충만의 믿음입니다. 삶의 방향이 내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충만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충만을 오해하여 자신이 강해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능력 충만’‘성령 충만’‘은혜 충만’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 속 내막은 자신이 능력과 성령과 은혜로 충만하여 강해지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자신에게로만 집중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기독교인들의 병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미 충만한 것으로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 깊고 더 넓고 더 높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게 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의 충만이 되어서 그리스도가 여러분께 나타낸 것으로 나타내는 길로 가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께 충만이 되는 것을 서로 나누는 길로 가는 것에 소원을 두시고 그것을 여러분의 믿음의 길로 삼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땅의 것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하려고 힘쓸 때 신자는 하나님이 충만하게 하신 것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인생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도의 방향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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