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2.08 09:48

(48강) 하나 되게 하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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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3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0103(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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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설교>

 

현대 사회의 분할된 집단은 횡적 관계보다 종적 관계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있는 뛰어난 인물을 중심으로 결합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것인데 이것이 집단의 응집력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 응집력이 강할수록 집단의 개개인에게는 우리라는 의식이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종적 관계가 잘 형성되는 것이 그 단체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횡적 관계에 문제가 도출 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응집되는 종적 관계에서의 하나 됨에 관심을 둠으로 인해서 진정한 의미의 하나, 즉 횡적 관계가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의 종적관계와 횡적관계는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교회는 종적관계에 있을까요 횡적관계에 있을까요? 결론은 올바른 종적관계에 의해서 나타나는 횡적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타나는 한 몸의 관계, 즉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의 종적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횡적 관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와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모여서 집단적 결속과 화합을 이루어 하나님과 연합하는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유대주의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 안에서 민족적 결속을 통해 자신들만이 하나님과 하나 된 관계에 있다고 여겼는데 지금의 교회가 추구하는 하나 됨에는 이러한 유대주의의 흔적이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한 몸 사상은 하나님과 종적 연합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존재하는 한 몸은 동일한 마음으로 동일한 말을 하게 됩니다. 죄로 인해 죽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자신을 죽은 자로 바라보기 때문에 높고 낮음이 나타날 수 없는 이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 하나 된 관계이며 바른 종적 관계로 인해 나타나는 횡적 관계,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세상의 인간관계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신분이 힘이 되고 영광이 되고 높음이 되는 것은 교회에서는 쓰레기로 취급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교회가 이러한 세계이기 때문에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집단으로 모이는 교회는 교회가 아님이 드러납니다. 만약 은석교회가 교회라면 은석교회가 곧 하나님과 연합된 구원의 집단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은석교회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부름 받아 함께 한 백성을 교회로 일컫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죄로 인해 죽은 자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증거하게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며 이 사명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통일되게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라 이름하는 현대 교회가 진심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동일한 관심과 생각으로 존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각기 내 교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말하나 그 생각과 마음은 하나님으로 향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 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고 말한 것처럼 교회는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 된 관계에 있습니다. 이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것이 교회의 본분인 것입니다.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전에 무엇이 하나 된 관계를 깨뜨리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모든 신자가 동일한 위치, 동일한 신분으로 존재함을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자의 동일한 위치, 동일한 신분은 무엇일까요? 두말 할 것 없이 죄로 인한 심판이라는 위치고, 진노의 자식이라는 신분입니다. 어떤 사람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동일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위치와 신분에서 모든 인간은 차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판 아래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출되었고 의의 생명에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열심, 봉사, 헌신, 믿음과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이루어진 은총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나의 행함과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평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 됨은 무엇으로 무너질까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은총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볼 때입니다. 자신을 바라봄으로 자기 의가 눈에 들어올 때 하나 됨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행함을 드러내고 자기 의를 위해 일하고 자기의 것을 자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킨다면 그것은 성령이 알게 하신 인간의 본질적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성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교회의 부흥이 아님은 물론이고 교회의 사회참여도 아닙니다. 교회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묶여진 하나라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고 하나 된 관계에 있게 하셨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말합니다. 겸손은 나의 실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온유는 판단치 않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누군가를 판단할 자격이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 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무엇입니까? 단지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는 동일한 존재로 보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교회에서 자기 유익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관심을 두고 예수님을 믿고 섬기기 위해 모인다기보다는 하나님께 위로받고 사람들에게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교회로 모이면서도 날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로 보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로 모이는 우리의 실제 모습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을 원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때리고 죄를 보게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을 의롭게 한 것처럼 함께 하는 모든 성도 역시 동일한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의롭게 된 관계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나는 물론이고 함께 하는 모든 지체를 살렸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이 말은 교회는 인간의 행함의 여부로 차별되고 나누어지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 생활에 부지런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과 자질을 보시고 구원할 자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창세전의 일입니다. 우리의 행함과 자질과는 무관하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교회 역시 인간의 행함이나 자질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늘 믿음이 경쟁으로 흐르는 현대 교회는 교회로서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만 바라보기를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쥐고자 하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주를 바라보십시오. 주께서 여러분께 주시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쥐고자 하는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마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은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사랑에 매인 자가 되고자 하는 갈망으로 함께 하는 것이 교회이며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관계입니다.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서로 용납하지 않고 비판과 판단으로만 나아갈 것입니다. 주를 바라보는 것이우리 인생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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