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2.15 09:33

(49강) 한 소망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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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4-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04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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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설교>

 

본문 4절을 보면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신자는 부르심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에 의해서 존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게 되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께 마음 두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그 부르심을 받아들인 결과인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것이 곧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르심을 받아들인 것 또한 하나님의 은총임을 생각한다면 신자 됨에는 인간의 그 어떤 것도 효력이 될 수 없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인간이 신을 선택할 때는 자기 목적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신을 선택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한 채 자신이 신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자기 목적을 가지고 신을 찾는다면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과 신앙 아닌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신자 된 것이라면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부르신 이유와 목적이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가장 먼저 하나님에 대한 자기 목적을 내려 놔야 한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것이 부르심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되었으니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권위와 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도직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모든 신자는 사도를 포함하여 동일한 신분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은 각기 다르다 해도 분명한 주어진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나타내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것이 됩니다.

 

 

이처럼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신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사람의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여 정당화 한 것일 뿐 성경을 통해 증거 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목사의 말이 하나님의 뜻으로 변개되어 강요되는 것이야 말로 교회가 벗어나야 할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가 교회를 향해서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의 소망은 접고 하나님이 부르신 한 소망에 뜻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이 제아무리 정당하고 선하게 보인다고 해도 관심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소망인 것입니다.

 

 

신자가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막연한 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있으니 죽어서 천국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천국을 소망한다면 삶은 소망하는 천국을 향한 간절함이 담겨져 나타나야 합니다. 사도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배설물로 여겨져야 하고, 삶의 모든 일들도 사소한 것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로서 천국을 소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단지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남겨두기 위해 부르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르심이 그런 뜻이라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자로서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은 너무 빈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자리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동일한 소망 아래 있는 것이고, 이 소망은 변하지 않고 우리에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한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불러 낸 자기 백성에게 여러 가지의 소망과 뜻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에게 효도도 잘하고, 신앙도 좋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아들을 원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신자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신자 되었음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마 하나님의 소망을 생각하고 그 소망에 자기의 뜻을 두고자 하는 신자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의 뜻, 나의 소망을 위해 살아왔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내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소망에 뜻을 두는 신자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를 불러주신 분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택하시고 예정한 자들의 본질적 실체는 죄로 인해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를 살리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늘에 앉히신 놀라운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임을 주지한다면 신자는 자기 이름, 자기 영광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지만 그 생각은 하나로 통일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죄로 인해 죽은 자라는 신분으로 저주의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름 받았음에도 죄를 끊지 못하는 연약함에서,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에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도 누구하나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못하고 다만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만을 자랑하고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 있고 어떤 체험을 했든 분명한 것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자격이 없음을 잊지 않는다면 외적인 그 어떤 다름도 차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만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정신으로 통일되어야 하고 이것이 교회됨을 향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소망 안에서 그리스도로 함께 기뻐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지체의 관계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내 기준에 의한 판단으로 인해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을 부르셔서 교회로 모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소망으로 자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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