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3.28 19:27

(54강) 하늘 위에 오르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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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7-10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0710(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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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사도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모두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2: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선물은 믿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량이라는 말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다름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각 사람의 믿음이 다른 이유가 이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신자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선물, 즉 믿음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에서는 각기 다름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받은 은혜가 같고 그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없던 것이 선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의 결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 결과, 즉 은혜임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열심을 믿음으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로 인한 차별 역시 믿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 사람은 잘하고 못하고의 차별이 존재할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무엇 하나도 우리 각자의 힘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선물의 분량대로 주신 은혜로 인한 것일 뿐이고, 못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 각 사람의 본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한 사도는 이어서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8절)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위로 올라가실 때 사망에 사로 잡혀 있던 우리를 사로잡으시고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는 11절에서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여러 직분에 대해 얘기할 때 항상 강조되는 것은 충성과 헌신일 것입니다.

 

 

충성과 헌신이 직분자의 당연한 덕목으로 요구되면서 정성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 믿음이 판단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직분 또한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반 신자에 비해 목사는 특별히 부름 받아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 부각시키면서 차별화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선지자도, 사도도, 복음 전하는 자도, 목사, 교사도 모두가 동일하게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에 지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로잡혀 있던 자를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이 하늘 위로 올라가시면서 사로잡으시고 선물을 주신 것뿐입니다.

 

 

결국 선물을 받은 자에게는 선물을 받을만한 자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도 사도도 누구라 할지라도 모두가 죄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영원히 사망에 사로잡힌 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물을 받은 것으로 자신을 자랑할 수 없고, 다만 선물을 주신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에서의 직분은 크게 오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직분은 하나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자질과 능력과 믿음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높고 나음의 차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7절)라는 사도의 증거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셨다가 하늘 위로 가시면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8절은 시 68:18절의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는 인용한 구절입니다. 68편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지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을 하나님의 승리의 결과로 여기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승리의 결과로 노래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전리품입니다. 만약 다윗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자신의 힘으로 여겼다면 자신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승리로 여겼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전리품 또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라고 말한 것이 그런 의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취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 곧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할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받은 선물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내용을 예수께서 이 땅 낮은 곳으로 오셔서 사탄과 싸우시고 승리하셔서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던 자기 백성을 구출하여 사로잡으시고 그리스도의 선물에 참여하게 하신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들이지 더 이상 죄에도, 죄의 삯인 사망에서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우리를 사탄이 다시금 사로잡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이고 율법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사람들이고 각 사람 모두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한 선물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신자의 믿음의 내용이 이것으로 채워진다면 교회는 한 몸의 관계로 나아갈 것이고 어떤 역할을 하든, 어떤 은사를 받았든 결코 차별로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직분도 은사도 여러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사로잡으시고 선물을 주기 위해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고 하늘 위로 올라가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목적이고 이유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한 존재로 함께 한다고 해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뭔가 하는 것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뭔가를 행하여 자기 믿음을 스스로 확인하려고 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충성, 봉사,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교인들에게 강조하고 교인들 또한 그것을 믿음이 있는 자의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사로잡혔던 자를 사로잡으셨다’는 말씀에서 그 모든 것이 믿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충성, 봉사, 헌신을 말하려면 교회가 아닌 그리스도께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께 하는 것을 교회에 하는 것으로 말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곧 교회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으시고 선물을 주시기 위해 낮아지시고 하늘로 가신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랑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를 받았다 해도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높이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신자의 본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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