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4.05 08:23

(55강) 봉사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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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1-1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11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설교>

 

신자는 하나님께 택함 받고 부름 받아 하나님의 계획 아래 살아가도록 예비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자기의 삶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계획에 붙들려 있는 삶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이 신자 됨의 위치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신자 됨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해 있을까요?

 

 

신자에게 자기의 삶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해도 자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래적 성품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를 위해 선악과를 먹은 후 모든 인간은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불러내신 하나님의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자신을 부인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아래 있게 된 것 자체가 기쁨이 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는 무엇을 해도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타인이 자신을 봐주고 인정해 주는 것에 관심 두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해 복을 받게 되는 것에는 더더욱 관심 두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행한 일이 자랑이 되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을 모든 일이 잘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는 지금은 힘든 현실이라고 해도 은혜 아래 있기에 결국 좋은 현실로 바뀌게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아래 있다는 말에 대한 고질적 오해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신자가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세상에 보냄 받은 신자로서의 길은 이미 하나님의 뜻에 의해 확정되어 있고 그 길로 인도 받으며 완성된 세계로 나아감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떤 현실과 자신의 어떤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모든 것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가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가 하늘 위로 오르신 그 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관심 두어야 하는 것은 선지자, 사도 등의 명칭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 각기 역할을 맡겨 세우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12절의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게 하신 이유가 각자 개인의 삶의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봉사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봉사를 한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나를 불러 세우셨고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셨기에 하게 된 것 뿐 임을 안다면 그것이 곧 은혜 아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공로가 없는 봉사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봉사의 의미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봉사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로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세운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관심을 두십니다. 따라서 교회가 부흥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관심은 아닙니다. 교회 부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교회 부흥이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말은 자신의 관심사로 성경을 이해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불러서 어떤 일을 맡기셨든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을 부르셨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일의 결론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집중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고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인간이 아닌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들이 선지자, 사도,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입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이든 모두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불순종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이 불러 주지 않으면 영원한 사망에 갇힐 자들입니다.

 

 

11절에 언급된 직책들은 모두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침으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계급적인 위치가 아닌 것입니다. 즉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라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신 말씀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역할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목사를 가르치는 자로 바라보며 가르침을 받는 자의 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주께서 부르신 뜻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2절에서 말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도의 온전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 안에 있는 것이 성도의 온전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심을 증거함으로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던져지면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불의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기능이며 이 일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 된 관계로 세워져 감을 뜻합니다. 인간관계로 돈독해지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교통되는 관계로 세워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관심을 그리스도께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잘된다, 못 된다는 것도 헛된 말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교회가 잘못 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라면 잘됨과 못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때문에 교인수가 증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일에 나의 영광, 나의 이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만 일하십니다. 따라서 누구든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것으로 자기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부르신 뜻에서 어긋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서서 교회를 바라보십시오. 과연 인간이 세우고자 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 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너무 멀어져 있음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시각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났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죄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사망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실감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부름 받음이 기쁨이 되며 그 기쁨의 근원이 되는 주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봉사의 일입니다. 또한 그것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 일에 뜻을 두는 것이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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