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09.14 09:53

(29강)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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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19-2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2192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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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설교>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기 전에는 육체로는 이스라엘 밖에 있었던 이방인이고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도 외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삶은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절)는 말로 증거합니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고 권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바울이 생존했던 당시로 돌아가서 바울이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본래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사람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알기 전의 일이지만 유대의 전통 신학을 부정하고 예수가 메시아고 그 메시아를 너희가 죽였다는 말에 분개해서 죽인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이 이방인에 대해서도 유대인의 전통적인 시각으로 대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방인을 향해서 너희도 외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며 권속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종교적 규례였습니다. 때문에 이방인이 유대인과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유대인이 요구하는 종교적 규례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 규례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 막은 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담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허물어졌다고 합니다. 예전의 바울이라면 할 수 없는 말을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면서 십자가 안에서는 유대인, 이방인의 구분이 없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불편한 관계입니다. 조상 대대로 유지되었던 이 관계가 쉽게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초대교회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신자로 들어오게 되면서 서로의 불편 관계를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늘 불안한 상태의 관계로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교회의 상황을 묵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바르게 증거 될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누구든지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 이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모든 자에게 미치는 동일한 복음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고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하는 것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공로에 붙들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는 공로가 있고 이방인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방인보다 유대인을 더 특별하게 대하신다고 믿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 받음을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모이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중요하고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 된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만 자랑되고 높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혹 인간의 공로가 자랑되고 그것으로 서로의 신앙이 담이 생긴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훼손하는 것일 뿐입니다.

 

 

20절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고 합니다. 동일한 터 위에 세움을 입었고 동일한 분이 친히 모퉁잇돌이 되시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들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완전한 화평에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동일한 성도요 동일한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동일한 관계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들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는 동일한 백성이라는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새로운 주의 백성들이 들어오고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보내실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격이 다르고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 우리가 잊지 말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의 모임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지어져 갑니다.

 

 

21,22절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합니다.

 

 

지어져 간다는 것은 아직 완성체가 아님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타난 모습을 전부로 여길 수는 없습니다. 지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손으로 짓는 것은 성전이 아니라 그냥 건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이 지어가시는 성전으로서의 교회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시는 교회로 완성되는 그 날이 되면 교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된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계속 하나님에 의해 지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지어가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즉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라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도 처소가 되기 위해 지어가시는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가 지어져가는 처소의 요소가 되는 것이고 여기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여러 형태의 긴장과 대립과 분열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고 해도 교회가 진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머물러 있다면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해소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빈부격차, 지식의 격차, 사회 지위의 격차 등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담이 되어 불편한 관계가 되고 경쟁하고 다투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평강은 단순히 인간관계의 화목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합니다. 그러한 차별이 인간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음을 알게 될수록 교회는 하나의 관계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죄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수시로 문제를 드러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교회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어가시고 때가 되면 완성된 영광의 하나님의 처소로 드러난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어져 가는 과정에 있으면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로 하여금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은혜에 머물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알게 하면서 우리를 지어가시고 교회로 세우시며 영광된 교회로 완성하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외형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 하는 일에만 온 마음을 집중할 뿐입니다.

 

 

교회는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것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다만 하나님이 지어가신 다는 것만 생각하며 서로 돕고 함께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교회됨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하나님께 나올 수도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너와 나의 구별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의 관계로 굳건히 지어져 가면서 하나님만 찬양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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