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12.07 09:53

(40강) 담대함과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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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2-13http://onlycross.net/videos/eph/eph-03121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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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설교>

 

신자가 에베소서 1장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이것은 약속으로 주어졌고 약속의 성취와 실체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워진 몸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로 이미 부족함이 없는 충만의 상태에 있습니다. 교회가 이미 충만의 상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교회는 세상의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세상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교인 수가 적거나 재정이 열악하다고 해서 ‘교회가 어렵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말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잣대로 우리 스스로를 저울질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가치는 모두 땅에 묻어 버린 채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고 차별하는 길로만 나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있는 복된 선포들을 놓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한 구절에는 신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복에 거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달려졌는지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열심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의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2절에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기대하고 원하는 것들이 따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악함입니다.

 

 

만약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우리의 섬김은 모두 헛된 것으로 끝날 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가짜이며 우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눈이 뜨이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우리의 운명은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죄인 된 나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만으로도 크신 은총을 입은 것이며 나를 붙들어 하늘의 비밀을 알아가게 하신 것이 곧 무한한 복의 세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깨닫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됩니다. 교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은혜와 사랑을 크고 무한한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고 찬송하기 위해서 모이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세상이 알지 못한 것을 알고 있고 세상 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12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은혜와 사랑은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다는 것이 은혜와 사랑이 되는 것은 인간은 본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늘 실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지성소가 있었고 그 곳은 하나님에 의해 허락된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지성소를 보면서 하나님과 단절된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었다는 바울의 선언이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안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믿게 된 것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문제에서 요구되는 우리의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확인하고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고 완성하신 하늘의 모든 복을 아낌없이 베푸셨음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 있다면 우리는 생명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을 내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을 요구하신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랑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희생을 원하신다면 내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요구하셨고 그리스도로부터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곧 담대함과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자신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악함과 불의함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보는 것은 늘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와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보는 것은 불안과 염려를 초래할 뿐입니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을 때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의 의라는 완전과 완성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셨음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환난에 대해 낙심하지 말라는 것은 바울의 환난에 에베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환난에 밀어 넣으시면서 까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붙잡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요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생한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를 복음에 붙들어 놓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베소 교회의 영광입니다.

 

 

신자의 담대함과 확신은 감정적인 느낌이나 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난 왜 확신이 없지’라고 의아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고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일에 공짜로 함께 참여 되어 있다는 것만 놓치지 마십시오. 이것을 놓치면 놓치는 것만큼 본인에게는 큰 손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은 부족함이 없는 충만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충만의 세계에서 충만케 하신 분으로 인해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로 모이는 이유고 교회의 영광입니다. 사람 수나 재정, 그리고 교회의 활동들이 교회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영광은 동일합니다. 예배당 크기나 사람 수와는 상관없이 동일한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때문에 차이가 없고 차별이 없으며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에서 충만의 상태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을 인생을 여러분이 원하고 기대하는 세상의 것으로 담고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설사 여러분이 원하는 것으로 가득 담는다고 해도 만족과 행복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일 뿐입니다. 결국 또 다시 부족함을 느끼고 채우기 위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이 크신 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힘은 우리를 담대함과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힘이라는 것은 세상이 힘으로 여기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그리스도도 힘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것도 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힘으로 여기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었다는 말씀에서 신자가 왜 복된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를 깊이 깨달으십시오. 그 복이 여러분의 심령을 풍성하게 하고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 것과 상관없이 부요하고 충만한 믿음의 길로 가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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