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12.14 09:47

(41강) 사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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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4-19http://onlycross.net/videos/eph/eph-03141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

 

‘신앙이 뜨겁다 메마르다’는 표현의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신앙이 메마르기보다는 뜨겁기를 원할 것입니다. 메마른 신앙은 열심이 없고 성령의 역사도 없으며 겨우 신앙의 명목만 유지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뜨거운 신앙은 내적 감동과 함께 열심이 있고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체험하는 신앙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메마른 것 보다는 뜨거운 것을 성령이 함께 하는 신앙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뜨거운 신앙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상태를 감정적인 것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은 동일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인간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되기 때문에 보편적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눅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동행하시면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후에 자신들에게 성경을 말씀해 주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된 제자들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경험한 마음의 뜨거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성경을 깨닫게 된 것을 뜻합니다. 성경을 깨달음으로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죄로 인해 예수가 죽으셨음을 알게 된 상태를 뜨거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 내용을 보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도의 기도대로 이루신다면 그래도 신앙이 메마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14,15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기도합니다. 사도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사도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아십니까?

 

 

사도는 로마의 감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노년에 갇혔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바울의 간절함은 자신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를 향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마음을 뜨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16절에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도하고, 17절부터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의 중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속사람의 강건, 즉 내적인 강건으로 말합니다.

 

 

속사람의 강건이 심리적으로 의지가 강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의지가 강한 것은 사람에 따른 기질적인 문제이지 성령의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적 조건으로 보면 바울은 예수님과 다를 바 없이 나약한 사람입니다. 때리면 맞았고 가두면 갇혔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모든 주어진 형편에 순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처지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안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서 나타난 속사람의 강건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내적으로 강건해지기를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간절함이 무엇으로 향합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고함을 지르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뜨겁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함이 무엇으로 향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만약 세상적인 문제와 소원에 집중된 간절함이라면 그들의 신앙은 뜨겁다고 하기보다는 메마르다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신을 향한 열망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박힌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같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둘 때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붙들리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한 기도는 외적으로 열정적인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도의 방향이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의 뜻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자신의 문제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어떤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건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원하는 현실이 따로 존재하고 세상에서 되고자 하는 여러분의 모습이 있다면 사도의 기도에 절실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와는 다른 마음으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도는 자기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을 삶의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열린 상태로 하나님이 전부인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도의 기도를 따라 우리의 신앙은 인생의 마지막 남은 순간까지 이 방향으로 나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뜨거운 열망에 의한 삶입니다. 이 열망이 감옥에 갇힌 사도를 붙들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어떤 삶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고 주만 바라보는 뜨거운 신앙의 삶을 살게 합니다.

 

 

빌 1:20절을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노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자신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있어야 할 영적 사움입니다. 이 싸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하나님을 자본주의의 신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존귀한 것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에 갇혀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일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향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물과 건강 등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것을 초월하여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는 천국을 소망하며 산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천국을 소망한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베푸신 풍성한 은혜임을 알게 되는 것이 신자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세상 가치에 붙들려 살아가면 알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풍요를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됨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삶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속사람의 강건입니다.

 

 

신자의 부요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입니다. 소유와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으로 알게 되는 부요입니다. 이 부요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과 동일한 원리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부요를 꿈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을 명목으로 꿈꾸는 인간의 헛된 환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참된 신앙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의 기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답을 사도의 기도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여러분께 그대로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부요와 풍성함의 은총이 넘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어떤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강건한 신자로 굳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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