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1.04 09:39

(43강) 속사람의 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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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4-19http://onlycross.net/videos/eph/eph-031419(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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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의 관심이 몸이 아니라 속사람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관심은 속사람보다는 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속사람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채 몸의 잘됨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에게 속사람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속사람이란 무엇일까요? 고후 4: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인간을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겉사람은 우리의 육신을, 속사람은 우리의 마음 또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겉사람이 낡아진다는 것도 몸이 늙어가는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겉사람을 몸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몸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의미의 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속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에 대해 감각이 있게 된 상태의 사람을 뜻합니다. 롬 8: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기 안의 죄의 법과 싸우게 되며 죄의 법이 자신을 삼키는 것으로 애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관심 자체가 겉사람으로만 향해 있기 때문에 속사람보다는 겉사람의 잘됨과 못됨에 마음을 두게 될 뿐입니다. 속사람의 잘됨보다 겉사람의 잘됨을 위해 살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겉사람은 죄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만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육신을 위해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과 거래 하는 것이 겉사람의 실상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단지 육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겉사람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죄를 책망하고 깨닫게 하고 우리 자신에게서 죄를 보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든 어떤 존재이든 영원한 사망의 사람일 뿐이며 그런 우리를 은혜로 이끄셔서 생명에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알게 합니다.

 

 

결국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 근거를 하나님의 사랑에 두는 것이 곧 속사람의 강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사람의 강건입니다.

 

 

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기도합니다.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계시게 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1:15절에서 에베소 교회의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 대해 감사의 말을 합니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그들 마음에 계시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들 마음에 더욱 강력하게 자리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주인 되셔서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셔서 좋은 것이 뭐겠습니까? 성격이 변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인 되신 삶에서의 좋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고 예수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쉽게 하면서도 그러한 삶을 원하고 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신다면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는 염려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인생을 주인 되신 예수님의 뜻대로 선한 쪽으로 끌어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심으로 인생의 참된 기쁨을 알게 됩니다. 세상으로 채워지지 않는 기쁨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기쁨을 위해서 속사람의 강건을 구하는 것이고 속사람의 강건으로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는 신자 됨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신자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들,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들을 알게 됨으로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게 되고 그리스도가 기쁨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삶의 방향과 방식들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세상을 향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고 속사람의 강건으로 인해 점차 하나님 나라가 소원이 되고 삶의 방향이 되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는 신자에게 소망은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것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속사람의 강건은 세상의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이 그리스도로 인한 부활 생명을 소망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게 되면 신비로운 능력이 주어지고 기적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기적을 가지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여겼던 참된 기적을 가지고 오셨고 그 기적으로 말미암아 감사하게 하고 찬송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신다면 그리스도의 함께 하심이 어떻게 드러나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이도 신앙생활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가신 길보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관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알고자 하기 보다는 ‘불렀으니 책임지라’는 식으로 신자 되었으니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그러나 신자는 나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부르시고 내 안에 계시고 나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로 가기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위해 속사람의 강건이 필요합니다.

 

 

신자가 힘이 없다면 그것은 참된 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동행하는 길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신자라 해도 그 믿음은 공허합니다. 힘이 없기에 늘 흔들리고 요동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일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보면서 ‘나는 믿음 없다’를 실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듯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는 바울의 마음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만족과 감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그럼에도 신자로써 만족과 감사가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미워하시며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믿음의 길로 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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