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5.16 19:54

(61강) 옛 사람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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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17-24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1724(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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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설교>

 

오늘은 22-24절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옛 사람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본래적 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옛 사람을 22절에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19절의 말씀과도 연결해 보면 옛 사람은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옛 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대개는 옛 사람의 행위, 즉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악한 행위를 벗어 버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전의 죄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을 옛 사람을 벗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으로 예전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고치거나 버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위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이지 인간의 본래적 속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인간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욕심으로 행하는 것이 그에 해당됩니다. 욕심으로 행하는 것은 더러운 것이고 인간의 마음 전체에 배어 있는 상태에서 드러나는 습관입니다. 이러한 욕심을 벗고 욕심이 없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혹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또한 자식에 대한 욕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할지라도 결정적으로 자신을 향한 욕심에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에게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자기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과 자기 영광을 목적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죄를 짓지 않는다거나 예전에 행했던 행위를 고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의의 기준으로 여기는 윤리와 도덕일 뿐입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은 행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24절을 보면 새 사람을 입는 것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것으로 말합니다. 따라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우리의 뜻과 의지로 실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되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옛 사람을 벗게 하시고 새 사람을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치 우리의 실천을 요구하는 것처럼 ‘벗고 입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신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윤리와 도덕적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옛 사람을 벗는 것은 새 사람을 입은 자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옛 사람을 벗는 것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을 입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옛 사람을 벗은 것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십상입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간증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대개의 간증에는 예전의 행실을 버리고 고침으로 해서 복을 받은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일 성수를 하지 않던 사람이 주일 성수를 하게 되고, 십일조를 하지 않던 사람이 십일조를 하고, 술 담배를 하던 사람이 하지 않음으로 사업이 잘 되고 돈을 벌고 가정이 평안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간증을 들을 때 그 모든 것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평안하지 못하고 힘든 일을 겪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결국 현대 교회에서 행해지는 간증은 교인들을 자극하여 본을 받게 함으로 교회의 배를 채우려는 의도가 강한 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간증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 말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옛 사람을 벗는 것에 집중하여 목사가 지시한 대로 실천하는 교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의 간증은 간증이 아니라 사탄의 놀이일 뿐임을 알자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그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셔야 하는 것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이 아직 새 사람을 잊지 않았으니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하늘의 생명에 속하게 된 신자가 새 사람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즉 생명에 속하게 된 것과 새 사람을 입는 것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란 것입니다. 생명에 속하게 되었기에 새 사람을 입은 것이고 새 사람을 입었기에 생명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옛 사람에 대해서는 바울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즉 바울은 옛 사람 벗는 것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죄의 몸이 죽어서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율법과 상관없는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옛 사람을 벗으라는 말은 율법과 상관없는 세계로 인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 사람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는 율법의 실천으로 의롭고 거룩한 자로 여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고 거룩한 자로 여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에 의해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입니다.

 

 

따라서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은 아직 새 사람을 입지 못했으니 입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새 사람을 입었기에 현재의 삶이 새 사람을 입은 자로 나타나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율법과 상관이 없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었기에 예수님의 피로 누리게 된 자유를 나타내는 것이 새 사람을 입은 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삶이 됩니다.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을 도덕적 실천으로 이해하고 도덕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율법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율법에 매어 살아가는 옛 사람의 습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서 행함이 보이지 않을 때 불안해하고 결국 자기 행함을 통하여 신앙의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이 모든 것이 자기 의로 향할 수밖에 없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옛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의는 증거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제 아무리 율법의 실천을 끌어낸다고 해도 우린 여전히 불의와 허물로 가득한 존재일 뿐입니다. 한순간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 거룩 앞에서는 늘 나의 불의와 허물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되는 것까지 하나님의 의와 거룩 앞에서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 예수님의 피의 은혜에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령이 새롭게 되고 새 사람을 입은 자로 살아가는 신자입니다.

 

 

죄를 볼 때마다 실감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옛 사람으로 존재할 때는 보이지 않던 죄가 낱낱이 보임으로 도무지 자신을 의롭다 할 수 없을 뿐이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율법과 상관이 없는 세계에 속하게 되었음을 믿으며 율법을 따라가지 않고 예수님의 은혜를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 새 사람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길로 힘써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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