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5.30 16:33

(63강) 참된 것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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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5-3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253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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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설교>

 

인간은 더러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만드신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 온 마음이 더러운 것으로 오염되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것으로 오염된 상태에서는 깨끗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깨끗하게 보인다 해도 실제로는 오염된 것들일 뿐입니다. 이처럼 오염된 더러운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을 옛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은 무엇일까요? 새 사람은 옛 사람과는 반대입니다. 따라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곧 새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더러운 사람이 깨끗한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새 사람을 인간 자체가 깨끗해지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으로 깨끗한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옛 사람으로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새 사람은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상태의 인간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새로운 것은 하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음으로 모든 더러움이 가려지고 깨끗한 자로 여김 받고 살아가는 것을 새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도덕과 윤리의 실천적 삶과 무관합니다. 도덕과 윤리도 결국은 오염된 옛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도덕과 윤리가 왜 새 사람과 무관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도덕과 윤리가 무시되는 듯한 의문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도덕과 윤리가 선한 것입니까? 선한 것이라면 인간은 도덕과 윤리로도 의로운 자가 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이 하늘의 한 의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도덕과 윤리가 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신다면 새 사람으로 사는 것과 무관하다는 결론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새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라는 새로운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새 사람에게서는 옛 사람에게는 없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덮으시고 죄 없다고 선언하시는 ‘용서’입니다. 따라서 새 사람을 입고 살아가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용서를 속에 품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 즉 그리스도의 용서를 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교회로 함께 하였을 때 그리스도의 용서가 어떻게 서로에게서 나타나고 증거되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25절을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안에서 서로 지체의 관계로 묶여 있습니다. 지체라는 것은 한 몸의 관계에 있음을 뜻하는데, 한 몸은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처럼 한 몸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교회가 서로 지체라면 그 지체로부터는 동일한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모든 더러움이 덮여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용서가 없이는 누구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서로 지체로 함께 한다면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의 용서를 알고 용서를 받았고 용서를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체가 함께 했을 때 나타날 것은 용서의 은혜이며 그것이 서로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 본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을 지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기 때문에, 즉 서로 한 몸, 같은 몸에 속에 있기 때문에 거짓은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지체는 서로를 이기기 위한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우월감, 자존심을 내세워 내가 낫다는 것을 보여주고 기를 죽여야 할 관계가 아닙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지체가 잘못되면 그것은 나에게도 고통으로 다가오는 관계입니다.

 

 

 그런 지체에게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참된 것을 말하기보다 거짓을 드러내고 거짓으로 이끌어 간다면 그것은 지체를 지체로 여기지 않고 나와 다른 몸으로 인식하며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거짓된 것이고 무엇이 참된 것일까요? 롬 3:4절에 보면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모두 거짓된 존재이기 때문에 참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옛 사람은 자신에게서도 참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참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만들어 내어 그것으로 타인과 비교하며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신앙이 그처럼 우월과 열등으로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은 사람은 다 거짓되다는 말씀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은 사람이 다 거짓되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자신에게서는 참된 것이 나올 수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자신을 사람은 더 거짓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는 무엇을 행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우월의 자리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행했던 자신을 성경의 증거를 따라 거짓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참되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라는 말은 ‘사람은 다 거짓되다’는 것을 알라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지체라 할지라도 모두가 거짓된 존재로 한 몸에 연결되어 머리되신 그의 의로 말미암아 동일한 은혜를 누리고 있는 처지에서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의 구분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신앙을 우월과 열등으로 구분하며 지체를 바라본다면 그것이 거짓을 버리지 않는 것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참되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참된 것을 말한다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말하라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와지는 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만 나와지는 참된 것들이며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서로 지체됨을 알고 지체의 관계로 함께 하며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한다면 인간의 실력과 힘과 자질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고 다만 하나님이 베푸시고 행하신 일들로만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모이는 지체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라는 관계로 모이실 때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이 참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 받았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여러분의 지체인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으로 존재함을 자신의 거짓됨을 보면서 실감하고 또 실감하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 돌리는 도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서로 지체된 관계를 무시하고 인간의 거짓됨을 드러내며 서로의 우월을 견주고 이기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훼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로 온전하게 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족함이 없기에 그리스도의 피로 지체의 관계에 있게 된 교회에는 부족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채우고 있음을 안다면 거짓된 우리에게서 나와지는 것으로 지체를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바울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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