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6.06 19:41

(64강) 분을 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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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5-3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2532(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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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설교>

 

오늘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6,27절)는 구절을 중점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구절에서 조금 이상하게 다가오는 것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분을 내는 것은 괜찮지만 죄를 짓는 것은 안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즉 분 내는 것과 죄 짓는 것을 구분하여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 또한 해가 지기 전까지는 분을 품고 있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리기에 이 또한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31절의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는 구절에서는 분냄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과는 맞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을 죄가 되지 않는 분냄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의로운 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분을 내신 것처럼 진리로 인한 분냄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분냄을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그처럼 죄가 되지 않는 의로운 분냄이 가능한지가 의문입니다. 복음으로 인해 분을 낼 수는 있지만 진심으로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복음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복음에 대해 분을 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까지도 나의 지식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명목으로는 복음에 대한 토론이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지식을 비교하고 우월을 따지는 길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복음을 아는 신자라면 누군가가 비복음의 말을 하고 모습을 보인다 해도 분냄보다는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고 복음을 아는 것 또한 자신의 의가 아니고 자신 역시 복음에 붙들려 있음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분냄보다는 자신을 향한 분냄이 먼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는 의로운 분냄과 죄가 되는 분냄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의로운 분냄이 죄가 되지 않는다며 허용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분을 의로운 것으로 포장하는데 힘을 쓰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5절에서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체의 관계에서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을 내는 것 자체가 죄라는 뜻이 아니라 분냄으로 인한 다른 죄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분내는 것은 죄가 아니니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분내는 것만 보지 말고 분냄으로 인해 어떤 죄에 빠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분을 낸다면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손해를 본다거나, 뜻대로 되지 않은 모든 일에 분노로 반응합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을 덮고 있음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분을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분을 내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을 내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서 분노가 나오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분을 내고 있는 자신이 자신의 모든 더러움과 악함과 허물을 덮고 있는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자신 스스로 외면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이고 서로가 지체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고 화해하라는 뜻일까요? 해가 지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하루가 지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해가 져서 하루가 지나기 전에 분노를 풀어라는 뜻이겠습니까? 분노는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겉으로는 화가 풀린 것처럼 할 수는 있어도 속으로는 분노를 안고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따라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는 것은 분을 오래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오래 잊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이 말씀드린 것처럼 마귀로 틈을 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에 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게서 어떤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까? 그 은혜와 사랑을 아십니까?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은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고 손해 보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생각하기보다는 은혜와 사랑만 말합니다. 마치 크림빵에서 단 크림만 먹고 빵은 버려 버린 것처럼 은혜와 사랑을 취하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외면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냄이 있을 때 그 분냄이 오래가는 것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냄이 있다면 그 분냄이 정당한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여러분의 입장에서 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의 은혜 안에서 물으십시오. 과연 정당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백 번 천 번 여러분의 분이 정당하고 잘못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십자가의 피의 은혜 안에서 정당하다고 인정될 우리의 분냄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용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로 인해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지체의 관계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띠 띠어져 부름 받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사랑에 띠 띠워진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띠 띠고 계신 그 손을 놓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지체의 관계로 함께 하여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분노하게 하는 누군가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로 행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은총을 받았는가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서로 지체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는 서로 지체의 관계에서 살아갑니다. 때문에 교회는 자기의 신앙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가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로만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의 옳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새 사람을 입은 자로 함께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분을 내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지체의 관계로 함께 생명의 길로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을 가는 교회로 인해 증거되어야 하는 것은 지체의 관계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아니고 누구도 아닌 우리를 지체의 관계에 있게 하신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지체의 관계로 증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이 이에 해당됩니다.

 

 

교회는 모든 폭로된 부끄러운 자의 관계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으시고 빛으로 일으켜 세우신 은혜에 마음을 집중하게 됩니다. 오직 그 사실 하나를 마음에 두고 주를 바라보는 것이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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