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8.12 16:22

(15강) 육에 속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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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설교>

사도 바울의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절)는 말 그대로 성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령 받은 사람이 곧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기독교인과 성도를 구분하여 말합니다. ‘기독교인=성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국어 사전에서는 기독교인을 ‘기독교를 믿는 사람’으로, 성도는 ‘기독교 신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과 성도에 대한 세상의 이해이며, 기독교인조차도 이러한 이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물론이고 기독교조차도 성도에 대한 이해가 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못한 현실입니다.

 

 

이로 인해서 스스로 성도라 자처하면서도 정작 성경이 말하는 성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다만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인의 길로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을 성도의 삶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누군가가 여러분께 ‘당신은 육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불쾌감이 들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신자는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는 맹목적 지식에 의해 불쾌감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로 자처하고, ‘나는 영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하면서도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누구를 가리켜서 육에 속한 사람으로 지칭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이런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영에 속한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말하면서 영에 속한 사람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롬 8:5,6절을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은 인간을 육신과 영으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육에 속한 자와 함께 영의 속한 자가 있는 것이고, 영에 속한 그들은 곧 고전 15:48절의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라는 내용처럼 하늘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신자 또한 육에 속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엡 2:5,6절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한 것처럼 신자라 할지라도 그 본질은 진노의 자녀이고 죽은 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육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롬 5:10절의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모든 일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즉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을 때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죽은 자에서 산 자가 된 것이고, 흙에 속한 자라는 신분에서 하늘에 속한 자의 신분을 얻은 것이고, 육신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변화, 신분의 변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지 않는 말입니다. 영에 속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자에게 주어진 은혜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육신에 속한 사람에 대해 언급하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로 지칭했습니다. 그 말은 고린도 교회가 죄의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늘에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는 성도로서 육신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특정 사람에게 속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그로 인해 분쟁과 분파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시 말해서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모습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로 인정되는 교회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갈등하며 당황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에게서 도무지 성령 받은 것 같지 않고 믿음이 아닌 것 같은 모습들이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거룩한 성도답지 않은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모습들로 인해서 성도라는 존재성에 대한 회의와 의심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고린도 교회에 분쟁과 분파 등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이상합니까? 그런데 그러한 교회를 향해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로 지칭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본질은 죄에 속한 자이고 죽음의 존재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고 하늘에 앉힌바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육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당황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영에 속했다는 것은 육에 속한 자로부터 나왔다는 것이기 때문에 육에 속한 자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입니다. 영에 속했다는 것을 육의 세계와의 결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신앙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육에 속한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부정적인 행동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성령 받음이나 성도됨에 대하여 확신이 희미해지면서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동일하게 발생하는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여러분께 문제가 있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애당초 성도의 존재를 성도 아닌 사람보다 나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 잘못이며 그것을 성령 받음으로 이해한 것이 문제입니다.

 

 

신자가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성도로 여김 받지만 육에 속한 자라는 본래의 본성은 그대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자신에게서 육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고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던 내용이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문제없는 교회가 되게 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의 내용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바울은 교회의 문제를 책망하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인데 분쟁하고 분파를 만들고 자기를 자랑하면 되는가? 그것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니까 성도답게 행동해서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라는 생각만 하고 살아가면 된다’라는 취지로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 것이라면 16장까지의 긴 편지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몇 줄의 내용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교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분별이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서 말한 분별은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참된 것은 참된 것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즉 무엇이 육적이고 무엇이 영적인가를 아는 것을 분별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 하나님이 행하신 영적인 일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영적인 일은 성령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오심의 목적은 인간의 변화에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처럼 믿음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아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적인 일들을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육이 중심이 되어서 육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속성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적인 일과 충돌된다는 것을 까맣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성령을 받았다면서 왜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분별하지 못하고 육의 속성에서 나타나는 자신들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드릴 수 있는 답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그 즉시로 모든 지식과 앎에 대한 변환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육에 속한 자로 살아온 습성이 있고 종교적 문화도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시고 고넬료는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청하기 위해 욥바로 사람을 보냅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이 담긴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보여주면서 잡아먹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반응은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먹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했습니다. 즉 성령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각 나라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회개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베드로가 여전히 유대교 전통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즉시로 기존의 습성과 지식과 앎의 변역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인해서 기존의 앎에 대한 갈등이 있게 되는 것이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잘못에 눈을 뜨게 되고 복음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진리의 길을 점차 분명하게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받은 성도라 하여 육에 속한 사람의 습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3: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신에 속한 자는 언약 밖에 있는 멸망의 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되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일을 분별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의 습성에 의한 것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그리고 신자라 하는 우리를 향한 지적이기도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령 받은 신자의 모습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다시금 십자가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절)는 말처럼 십자가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고 성령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16절). 따라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보기에 세상의 헛됨을 아는 것이고 육신의 가치 또한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습성은 세상으로만 향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육에 속한 것임을 알기에 나 같은 자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일을 분별하는 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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