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8.26 16:19

(17강) 육의 사람

조회 수 234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전 3:1-4http://onlycross.net/videos/co1/co1-03010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설교>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교회가 좋은 교회, 교회다운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물론 어떤 교회를 좋은 교회, 교회다운 교회로 생각하는지를 따져 봐야겠지만 무엇 때문에 좋은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좋은 교회, 교회다운 교회를 추구하는 그 내면에는 좋은 교회에 속한 교인이라는 것으로 자기의 옳음을 증거하고 자기 자랑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세상이 인정하고 알아주는 좋은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자기 자존심이 세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교회로 만드는 것을 목사로서의 자기 능력을 보여주는 자존심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성을 배경으로 생각해 보면 고린도 교회가 ‘나는 바울’‘나는 아볼로’라고 하면서 사람을 따라 분파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특정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자신 역시 그 사람의 인기와 가치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두고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3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2:14절에서 육에 속한 사람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3절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말에 대해서 ‘그러면 고린도 교회는 교회가 아니란 말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육신에 속한 자라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고,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교회가 아니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지적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고치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 의를 세우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바울의 의도를 곡해하여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만 고치면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육신에 속한 자의 생각입니다.

 

 

바울은 2:14절에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하시는 일을 어리석게 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사람은 자신이 신앙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으로 하시는 일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신앙으로 인정되는 행함을 동원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신자 됨을 증거하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을 육신에 속한 자가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 분별하게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나타나는 증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관심 두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신이 일하고 봉사함으로써 신자 됨의 증거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거의 모든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라 할지라도 결국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따라서 신자라는 신분으로 무엇을 행한다 해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행함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행함이라 해도 신자 됨의 증거물로 인정되기에는 너무 가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예 의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똑같이 성경을 보는데 해석의 방향은 전혀 다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육신의 시각으로 읽고 해석하면서 육신을 중심으로 한 내용으로 변개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간의 육신을 잘되게 하시는 것으로 고집하기에 육신에 어울리는 성경 해석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 5:20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이 육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성경 곳곳에서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령 시 14: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선언은 시 53편에서도, 롬 3:12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롬 7:18). 이처럼 성경은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못 박아 선언함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을 신자다운 증거로 복을 받는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생각에 의한 성경 해석의 결과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에게서는 의가 나올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일생을 율법만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자기의 삶으로 여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우리에게 가능할까요? 결국 예수님은 인간의 그 어떤 실천도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의가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자답게 되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육신에 속한 자의 생각일 뿐입니다. 선한 일을 행함으로 신자다운 신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일하심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함에 초점을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말하고, 예수 안에서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 말했으면서도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한다’고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바울의 이런 말은 우리에게 혼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들이고 사람을 따라 행하는 수준에 있다면 처음부터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거룩한 성도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비록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아직도 육신에 속했다고 하고 어린아이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또 다시 ‘그러면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육신에 속한 자, 육의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육과 영을 구별하여 고린도 교회가 계속해서 육의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란 것이 증명될 뿐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즉 바울은 육과 영의 문제를 ‘교회냐 교회가 아니냐’는 판단을 위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대함과 같이 한다는 것도 지금은 육신에 속한 자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모든 문제를 고치고 어른과 같은 모습을 보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을 그러한 뜻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하심과 그리스도의 일하심으로 드러나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일하고 사람이 드러내어야 할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초점을 두는 육신에 속한 자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도로 부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시작한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신앙 수준이 어린아이 같은 상태에서 좀 더 향상 되어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런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자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부모가 어떤 희생과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로부터 베풀어진 것보다는 자신이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합니다. 이러한 어린아이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말씀을 경험해 가면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부모의 희생과 사랑 때문임을 이해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 어른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린도 교회는 어린아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희생과 사랑에 의해서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바울에게’나는 아볼로에게‘라고 하면서 사람을 따라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그러면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자’라고 한다면 그것이 여전히 성령의 되어진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 육신에 속한 자의 생각으로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의 되어진 영적인 일을 분별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별로 인해서 ‘나는 주님의 희생과 사랑에 의해서 존재할 뿐입니다’라는 고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2:13절에서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사람을 따라 행했다는 것은 바울을 따를 것인가 아볼로를 따를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어느 사람에게 속할 것인가의 문제는 자기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성령을 받지 않은 육에 속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것, 즉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분별하여 아는 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육신에 속한 자, 육의 사람, 어린아이 등 여러 말로 표현하면서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2절)고 말합니다.

 

 

대개 보면 젖과 밥을 수준이 낮은 복음의 내용과 수준이 높은 내용으로 구분하여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어린아이처럼 수준이 낮아서 수준 높은 복음을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준을 낮추어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모든 내용이 수준 낮은 젖과 같은 것이고 나아가서 고린도전서의 모든 내용이 수준 낮은 젖이라는 것입니까? 복음의 내용은 수준 높은 것과 수준 낮은 것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복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복음을 말하는 사람의 지적 차이에 의해서 전달되는 문장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성경이고 복음이기 때문에 어떤 말이든 십자가를 증거 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어린아이가 먹는 젖과 어른이 먹는 밥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젖이든 밥이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과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육의 사람으로 행하는 고린도교회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의 체험이 많았습니다. 은사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자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 행하는 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으로만 드러나는 것에 대한 책망인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완성의 세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였고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였으며 생명을 얻은 자로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십자가로 주어진 완성된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타인보다 좀 다 나은 모습으로 드러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십자가를 알지 못한 육신에 속한 자들의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이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모든 것이 너희가 되고자 하는 것보다 더 존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분별하고 알아서 십자가로 감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해서 육의 사람으로 행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점차 육의 사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영적인 모습만 드러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서는 수시로 육의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영과 육을 분별하게 되고 자신이 육신에 속한 자임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십자가와 상관없이 ‘나는 영적인 존재다’라고 자기를 높이는 것이 곧 십자가를 훼방하는 육의 모습이라는 것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육의 사람으로 행하는 것이 있다 하여 구원 문제로 걱정하지 마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의 존귀함에 온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영적 사람입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18
2010.01.01 121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18
2017.05.06 120 고린도전서 (1강) 부르심을 받은 자 신윤식 4141
2018.08.25 119 고린도전서 (67강) 피할 길 file 신윤식 3068
2017.05.20 118 고린도전서 (3강) 완전한 나라 신윤식 3066
2017.08.12 117 고린도전서 (15강) 육에 속한 사람 신윤식 3007
2017.05.13 116 고린도전서 (2강) 견고하게 하시리라 신윤식 2957
2017.10.07 115 고린도전서 (23강) 자신을 속이지 말라 신윤식 2897
2017.06.10 114 고린도전서 (6강) 십자가의 도 신윤식 2867
2017.06.03 113 고린도전서 (5강) 십자가와 분쟁 신윤식 2823
2017.09.23 112 고린도전서 (21강) 터와 공적 신윤식 2818
2017.05.27 111 고린도전서 (4강) 주와 더불어 신윤식 2696
2017.06.17 110 고린도전서 (7강) 전도의 미련한 것 신윤식 2667
2017.06.24 109 고린도전서 (8강) 능력과 지혜 신윤식 2624
2017.07.01 108 고린도전서 (9강) 주 안의 자랑 신윤식 2544
2019.09.07 107 고린도전서 (120강) 저주와 은혜 신윤식 2533
2017.08.19 106 고린도전서 (16강) 그리스도의 마음 신윤식 2519
2017.07.15 105 고린도전서 (11강) 하나님의 능력 신윤식 2514
2017.09.30 104 고린도전서 (22강) 하나님의 성전 신윤식 2466
2017.09.16 103 고린도전서 (20강) 자기의 상 신윤식 2410
2017.08.26 » 고린도전서 (17강) 육의 사람 신윤식 234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