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9.30 15:09

(22강) 하나님의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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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3:16-17http://onlycross.net/videos/co1/co1-031617.wmv

 

<본문>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설교>

기독교인의 신앙 목적은 자신의 복과 구원에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의 목적에서 복과 구원을 제하면 아예 신앙의 이유와 의미를 상실해 버리는 것이 현대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기의 복과 구원을 위한 신앙을 신앙이 아닌 것으로 말하면 불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물론 성경이 복과 구원에 대해 말하기는 하지만 복의 본질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구원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닫아 버린 채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성경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이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고, 믿음이 있다면 그는 이미 구원에 속한 자라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구원에 속한 신자가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속했다 해도 예수를 바라보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고린도 교회를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로 지칭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신앙의 주체를 인간으로 생각한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14,15절)는 내용을 인간은 누구도 자기 공적으로 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공적으로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공로로 인한 것이며 불, 즉 심판에서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당초 인간의 공적과 무관한 구원이기에 인간의 죄로 인해서 구원이 취소되는 것 또한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신자가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자기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이 취소되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일하심.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모든 일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복과 인간의 공로가 아닌 십자가로 드러난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초점이 맞추어질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성경에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성경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일반 기독교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성경을 자기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의 원리를 자신의 복과 구원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16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이 말이 수긍되십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예루살렘에 건축된 건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전이 무너지고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전이라 불리는 건물을 무너뜨리신 것은 건물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생각하고 건물이 중심이 된 신앙생활을 부정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성전을 무너뜨리신 것으로 보이셨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때 그 성전은 건물, 즉 예배당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배당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칭한다면 그것은 유대 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 신앙은 특정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곳을 정해진 날과 시간에 찾아가서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유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제사장이라는 특정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규례로 세우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특정 장소에 건물을 건축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날에 제사장이라는 특정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규정하신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무너뜨리심으로써 성전 신앙 자체를 깨뜨려 버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제사 규례를 세우시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셔서 오직 그 곳에서만 제사를 행하게 하셨으면서도 또 다시 성전을 깨뜨려 버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전이 문제가 된 것이라면 처음부터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지 않았으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건축하게 하셨다가 무너뜨리시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일컫는 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인 것이 사실입니다.

 

 

삼하 7: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성전은 하나님을 잘 모시고자 하는 다윗의 뜻으로 시작합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다윗의 뜻을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하는 특별한 신앙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윗의 말을 이용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즉 예배당을 잘 지어 바쳐야 한다는 그야말로 사기극을 펼치기도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기의 생각을 나단 선지자에게 말한 것은 자기 생각이 옳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위주의 신앙입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도 선한 것으로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자기 위주의 신앙입니다.

 

 

다윗의 뜻에 대해 하나님은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1-13)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거할 집을 짓겠다는 다윗의 뜻을 거부하시고 대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는 뜻을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스데반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행 7:46-48)라고 증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지은 집에 하나님을 모시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나님이 지은 집에 자기 백성을 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은 사람의 손, 즉 사람의 행위와 노력과는 무관한 오직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집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시는 행하심에 의한 결과물, 열매로 존재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주지시키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의 성전다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만 자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각기 사람을 추종하며 분파가 발생한 것은 교회가 사람에 의해 되어지는 것으로 착각했었음을 알게 합니다. 바울을 따르거나 아볼로를 따르면 고린도 교회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교회가 사람에 의해서 되어 진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바울의 말에 의해서 성전이면서도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어 자신들을 성전으로 세우신 하나님으로 감사하지 않고 사람을 추종하고 자랑하는 잘못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바울의 말이 수긍이 안된다면 그것은 성전의 의미와 성전다움을 자신에게서 찾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인데 나는 속마음이나 행동 모든 것이 거룩하지가 않다. 이런 나를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기에 바울의 말을 들어도 관심이 가지 않거나 수긍이 되지 않고 스스로 성전 됨을 밀쳐 내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어 지으신 집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로 집을 지으시고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살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집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이 세워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게 하시면서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된 교회가 성전으로서 할 일은 사람의 손으로 성전을 성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전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고 높이는 것임을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니까 성전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손을 거룩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7절)고 말합니다.

 

 

신자는 성령을 받음으로 자신의 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 것이 자신의 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만을 보여주고 증거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 받음의 특징이며 이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나의 일을 도와주시겠지’라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기 위주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집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고 영광이 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그 길을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이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이 가야할 길, 가고자 하는 길을 따로 세우고 계획할 필요가 없이 예수님이 가신 길을 바라보면서 그 길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이끌어 가시는 길임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것이 성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복과 구원에 목적을 둔 신앙이라면 이러한 내용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너무 하나님의 일하심에만 치우쳐서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알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인간에게 심고 물 주는 일을 맡겼다고 하면서 심고 물 주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고 물 주는 일을 행한 대로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는 말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고 물 주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부인되어야 하는 것은 모릅니다. 사람이 심고 물 주는 일을 해야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도 있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계산일뿐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심고 물 주는 것을 못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을 세우시고 아볼로를 세우셔서 심고 물 주는 일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을 깨닫고 심고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만 고스란히 남겨지고 자랑되어야 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라는 것만 기억한다면 성경을 알아감에 있어서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니라”는 말을 들으면 ‘성전을 더럽히지 말아야지’‘성전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거룩하게 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고, 결론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거룩도 우리 스스로 지켜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더러운 우리는 언제나 더럽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말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들 손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고린도 교회가 하는 일은 성전이면서도 성전을 더럽히는 것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사람이 추종하고 높일 사람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다만 십자가만 마음에 남아있는 그가 성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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