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06.29 10:03

(19강) 구원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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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4-7http://onlycross.net/videos/eph/eph-0204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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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설교>

 

  기독교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일 것입니다. 인간의 공통적인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 문제나 자녀 문제를 포함해서 당면한 자신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도우심만 있다면 일시에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도무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감할 수 없는 상황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심히 믿어도 일이 꼬이는 경우가 많고 믿지 않는 사람의 인생이 더 잘 풀리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구원의 문제에 마음을 두고 하늘을 소망하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각이 없다면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기고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을 위한 신앙에 머물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보고 체험하는 신앙을 원합니다. 자신이 보고 체험하는 것보다 확실하고 사실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실함과 체험이 있다는 곳에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 열광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했다 할지라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인간의 속성이 달라지는 것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속성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입니다.

 

 

6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하는데 하늘에 앉을 자격이 없는 우리가 하늘에 앉힌바 된 것은 순전히 예수 안에 부름 받은 덕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에게 함께 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앉는 것은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놀랄 만한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도 하늘에 앉힌바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체험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집니다. 우리의 업적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실증적인 현실로 증거 되지 않습니다. 하늘에 앉힌바 되었기 때문에 삶의 형편이 나아진다거나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세상의 복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하다면 가난은 그대로일 것이고 병든 몸이라면 병든 몸도 역시 그대로입니다. 우리 안의 미움과 시기와 경쟁 등등의 속성 역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았고 하늘에 앉힌바 되었다고 해도 구원 받기 전의 인간의 악한 속성은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중요한 것은 구원이 인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물론 변화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구원에 담긴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고 그 은혜와 사랑을 깊이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인한 신자의 변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의 악함이 드러나고 있는 자신으로 인해 실망하기보다는 계속 확인하고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허물로 죽은 자입니다. 아무 가치가 없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멸망의 세계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것이 마땅한 피조물입니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생명에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생명에 속하게 된 우리는 이미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고 거룩과 의로움으로 옷 입은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늘에 앉힌바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악한 속성을 품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실상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신 이 일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악한 속성이 제거된 상태로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은 7절에서 밝힌 것처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부름 받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성령으로 우리의 악한 속성을 누르시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경쟁이 사라지고 이웃을 돕고 봉사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일에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신자에게 선행을 요구합니다. 물론 신자는 선행을 힘써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비난 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다만 신자의 선행을 칭찬하고 박수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선행은 신자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믿음과 상관없이 누구나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행을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보다는 아예 새로운 인간을 만드셔서 은혜를 나타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문제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풍성한 은혜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귀의 유혹에 빠짐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그를 살리시는 방식으로 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은혜를 나타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아가고 감사하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 신자는 세상보다는 은혜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됩니다. 은혜 아래 있기에 땅의 것이 없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웃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이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세계로 부름 받았고 예수 안에서 천국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땅의 것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 풍성하신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을 때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은 풍성하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긍휼과 자비를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게 되는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은혜를 알게 하셔서 은혜를 나타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은 자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렸다는 말씀을 보면서도 살 가치가 없는 자신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실상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고 내 놓을 것이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를 부르시고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신자는 이 은혜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알아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죽음에서 건지시고 생명에 속하게 하신 은혜와 사랑을 깊이 누리셔야 합니다.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채워지고 그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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