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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09:48

(109강) 유월절과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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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설교>

 

◉ 소유보다 존재 ◉

 

기독교인들 가운데 신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지에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내게 있다면 그 믿음으로 인해서 반드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된 것도, 나아졌다고 할 만한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 신앙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자기 상식 안에서 생각하는 결과입니다.

 

 

신자에게는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변화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에 대해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성경과 다르면 알 수가 없고 실감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변화와 현상은 소유에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두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되는 것에 삶의 모든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신자는 소유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존재지향적인 사람이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소유지향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소유하는 것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유지향적인 삶은 소유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지만 불안과 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늘 더 커다란 소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신자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됨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존재가 아닌 소유에 관심을 두고 있고 하나님의 일하심이나 사랑과 은혜도 소유를 근거로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소유의 증가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확실한 증거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소유의 증가는 눈으로 확인하고 실감할 수 있지만 존재의 변화는 볼 수 없고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가치를 소유에 두는 사람에게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막연하고 공허한 말로 들리는 것입니다.

 

 

소유는 아무리 증가한다고 해도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존재의 변화는 생명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됨으로만 가능한데, 존재의 변화는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에 있던 자가 연합된 관계로 회복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예수님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곧 생명이며 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존재됨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소유를 향한 집착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 유월절과 예수님 ◉

 

본문의 내용도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가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 세상에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유월절을 먹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을 먹는다는 것은 어린양을 먹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기를 원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유월절의 완성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로 가십니다. 이것을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예수님이 유월절을 이루심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으신 것을 ‘최후의 만찬’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고 희생의 길로 가신 예수님으로 인해 제자들이 어떤 존재가 되어 세상에 머물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희생이 우리를 어떤 존재가 되게 하였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 중 마지막 재앙에서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을 면하고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을 왜 이렇게 번거롭게 하셨을까요?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아도 이스라엘 민족은 제외하고 애굽의 장자만 골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여 그 피를 보시고 피가 없는 집을 치시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설사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도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재앙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존재 근거가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어린양의 피입니다. 혈통적 의미에서의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의 아브라함의 후손만이 이스라엘로 일컬음 받게 될 뿐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하고 죽음에서 건지며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성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현재의 여러분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내가 나 된 모든 일의 내막을 담고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의 믿음이 믿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내용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라는 존재보다도 소유에 집착을 하며 신앙을 소유 증가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들이 창세기부터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에 무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예수님이 준비하신 유월절 ◉

 

8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고 하십니다.

 

 

유월절 식사 준비에는 어린 양이 있어야 하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과 쓴 나물과 포도주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행길에 있었던 제자들에게는 그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이라도 있으면 양과 포도주 등 필요한 것을 구입하여 유월절을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9절에 보면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유월절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유월절 준비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모든 일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어 유월절을 준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타셨던 나귀 새끼를 구하는 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움직인 것뿐입니다.

 

 

성경이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과의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는 것부터 모든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제자들은 단지 예수님 말씀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으면서 유월절을 지키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지 제자들이 한 것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바로 이것을 가르치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신앙을 인간의 행함과 연결하여 이해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거나 게으른 신앙, 또는 수준 낮은 신앙으로 치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있어야 참된 신앙으로 인정합니다. 신앙의 문제에서 인간의 역할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증거물로 존재하는 것에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제자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실천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실천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 내로 들어갔고 사람을 만났고 유월절을 먹을 방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월절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확인하는 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뭔가를 실천하여 예수님의 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인해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은혜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은혜를 입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유월절 식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준비하심으로 예수님과 함께 먹은 것을 마지막으로 유월절 식사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신 후의 문제까지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만약 유월절 식사가 반복된다면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후에는 제자들이 유월절을 위해서 직접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유월절을 먹지 않는다면 제자들의 준비, 다시 말해서 제자들의 행함 또한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유월절을 이루신 예수님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8절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유월절에 마시는 잔, 즉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다시 마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피 흘리신 죽으심으로 유월절이 완성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뭔가 해야 할 일을 남겨두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예수님을 위해서 뭔가를 준비하고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예수님이 완벽하게 이루신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그 몸을 우리에게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기존의 우리의 몸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더럽고 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받았다면 다릅니다. 예수님의 몸은 거룩하고 따라서 예수님의 몸을 받은 자도 거룩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 새 언약의 나라 ◉

 

19-20절에 보면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내 몸이라고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을 주시며 내 피로 새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근거로 하여 성찬식을 행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성찬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찬식을 행함에 있어서 이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본질적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형식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몸을 주시고 피를 주시는 것은 그들에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몸과 희생으로 뭔가를 이루어야 하는 나라가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가 성찬식을 행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믿는 믿음의 세계는 우리의 몸과 희생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고 이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일을 이루셨기에 우리의 몸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린 다만 예수님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할 뿐입니다. 모든 일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믿고, 그것을 우리의 존재됨에서도 확인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의 일을 증거할 뿐입니다.

 

 

만약 누구든 인간이 이루어야 할 것이 있음을 주장한다면 그는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를 파는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룟 유다인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몸과 피를 받았음을 무시하고 자기 몸과 피, 즉 자기 헌신과 희생을 앞세워 예수를 상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의 헌신과 희생을 보시고 나를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새 언약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신자는 새 언약 속한 신분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존재입니다. 때문에 새 언약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증거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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