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3.15 00:05

(79강) 피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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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14-21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2142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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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2:14-21)

 

 

<설교>

 

◎ 불만투성이 인간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을 우리는 지상낙원이라고 부릅니다. 도둑도 없고 미워하는 것도 없고 살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것도 없고 먹고 살기 위해 수고롭게 일해야 하는 것도 없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과일만 먹고도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에덴동산이야 말로 천국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에덴동산이 지금도 존재한다면 여러분은 그곳에 갈 마음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곳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지금의 인간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세상과 삶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에덴동산에 대해서도 자신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비록 에덴동산이라고 해도 자신의 상상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과 삶이 주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현재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불만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의 인간이 에덴동산에 들어간다면 천국 같은 삶을 생각하기보다는 에덴을 개발해서 관광 상품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든지 아니면 리모델링을 해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에덴으로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즉 에덴동산이 우리들 눈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인간은 그 에덴동산에 대해 불만을 가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 어떤 인간에게도 불만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든 세상에게든 만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불만은 예수님이나 믿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또한 믿음에 대해서도 만족하십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에덴을 기대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천국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예수 믿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원하는 것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에 대해서도, 믿음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에는 전혀 기대를 갖지 않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힘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피하시는 예수님

 

여러분은 믿음이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좋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까? 어쨌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을 하는 세상 사람들의 기를 죽일 수 있는 그런 믿음으로 역사해 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주어지는 결과는 오히려 하나님도 예수님도 없는 것 같은 상황일 때 우리는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우리의 속성과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문제로 논쟁을 하신 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을 한다는 것을 아시고 그곳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바리새인들을 물리칠 능력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큰 우박이 그들에게만 내리게 하실 수도 있고, 그들이 멸시하는 문둥병이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바리새인들이 무서워서 도망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굴복시키며 예수님을 믿게 하려면 도망치지 말고 맞서면서 능력을 보여주시고, 그들 앞에서 그들의 믿음은 잘못된 것임을 외치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메시아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리새인들을 무릎 꿇게 하시는 그런 예수님을 우리가 원하고 믿음 또한 우리에게 그런 쾌감과 승리를 맛보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피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피하여 떠나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를 하십니다(15,16절). 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18-21절을 보면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2:1-4절의 메시아의 대한 예언으로써 예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를 죽이려고 의논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서 떠나시는 것이 어떻게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는 것이 될까요?

 

 

 

◎ 예언에 나타난 메시아

 

이사야 42:1-4절의 예언의 내용은 메시아가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분으로 오시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는 세상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오십니다. 즉 세상의 뒤통수를 치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인간의 상상과 기대로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오시고, 그로 인해서 세상 누구도 메시아를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강한 용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한 메시아를 신앙하는 결과에 대한 기대도 현실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벗어나 다윗의 영광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의 기대에 부응해 주는 메시아가 되려면 필히 세상을 이기는 강한 힘을 가진 용사와 같은 모습으로 와야만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선지자의 예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상상과 기대에 기초한 메시아일 뿐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점차 유대인들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모습만 보입니다. 심지어는 세례요한조차도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정도로 사람들이 기대한 메시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 또한 심판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자로 낙인찍힌 병자들을 가까이 하는, 도무지 그들이 상상한 메시아로서는 할 수 없는 일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보고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서 메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지에 대해 이미 예언을 하셨고, 예수님은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고 의논하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떠나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라는 내용일 것입니다. 이 구절을 근거해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예수님을 성경을 이용해서 자기 멋대로 만들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내용은 상한 갈대도 귀하게 여겨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끄지 않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를 말합니다. 당장 꺾어 버려야 하고 꺼 버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심판을 잠시 미루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심판을 미루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아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미루시는 것입니다.

 

 

18절 뒷부분에 보면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방이 알게 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메시아가 오는 것도 믿음으로 살지 않은 부정한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전하면서 심판과 멸망을 함께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정한 자로 취급된 병자들을 가까이 합니다. 심판을 받아야 하는 부정한 자를 가까이 하고 그들을 고치시는 것으로써 세상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병자를 고치신 것은 예수님은 저주 아래 있는 부정한 자를 위해 오셨음을 보여주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부정하고 더러운 자임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만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악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의를 믿지 않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이방에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택한 자가 죄인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바라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메시아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바리새인에게서 떠나십니다.

 

 

 

◎ 기대와 다른 신앙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바리새인들을 당장에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불의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죽이려는 바리새인들을 심판한 것처럼, 우리도 교회를 훼방하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항상 싸우고 이겨야 한다는 식으로 대항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절간에 돌을 던지는 것도 마치 예수님을 위한 투사다운 행동으로 보기도 하고, 복잡한 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당연한 싸움으로 여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대해 싸우고, 물리적인 힘으로 이기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힘을 자신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우월한 자리에 올라서는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 식으로 믿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 같지도 않고, 예수님이 신자에게 함께 하지도 않는 것 같은 미미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바리새인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고 피해 버리는 것처럼 맥 빠진 모습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을 상상한 적 있습니까?

 

 

믿음은 세상의 기를 죽이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피하시는 것은 비겁한 것이고 믿음의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맞서 싸우시고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이 믿음다운 행동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외적인 힘을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빙자해서 칼을 들고 세상을 이기는 방식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또한 예수님에게 악행을 행한 것을 기준으로 여기게 될 것이고, 자연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심판의 기준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심판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서도 벗어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재미없고 맥 빠진 것처럼 생각됩니까? 믿음이 힘이 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믿음을 향한 여러분의 생각과 기대가 버려져야 합니다. 믿음에 대해 갖고 있는 여러분의 생각과 기대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믿음에 대해 불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 믿음이 기쁨이 되고 힘이 될 수는 없습니다.

 

 

19절에 보면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 지르지도 않는 조용한 분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길에서 메시아의 소리를 듣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메시아를 메시아로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오신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사람들이 기대하고 생각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을 가시기 위해 바리새인을 피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을 심판했다면 아마 이스라엘 전역이 떠들썩했을 것이고, 심판이라는 예수님의 일로 인해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약하고 힘없는 자처럼 그 자리를 피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자를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강함을 세상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조롱할 것입니다. 그래도 신자는 조용하게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만을 바라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님은 죄인된 나에게는 생명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이 믿음 하나로 삽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이 흔들려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강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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