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9.27 08:28

(106강)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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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8-20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6182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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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설교>

 

◎ 교회는 인간에 의해 세워지지 않는다 ◎

 

사람들은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건물에 사람이 모여서 예배라는 의식을 행하는 그것을 교회라고 일컫습니다. 은석교회 역시 겉으로는 그러한 교회 중에 하나로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교회가 그런 것이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본다면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신 교회가 세상이 교회라고 일컫는 그런 수준의 것이라면 굳이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말씀을 할 필요 없이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가 사방 곳곳으로 가서 예배당을 세우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교회를 세우라고 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예수님이 세우시겠다는 것은 사람에 의해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이나 사람들이 모여서 행하는 예배 의식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예배라는 의식이 있다고 해서 다 교회로 인정되는 것은 아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가 건물이나 예배라는 의식, 즉 인간의 종교 행위로 성립되는 것이라면 인간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교회에 대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르게살기 위해서 교회를 찾기도 하고, 정신적 안정을 위해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복을 받아서 어려운 형편에서 탈출하기 위한 기대를 가지고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와 심리를 이용하여 교회만 오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가 있다는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신 교회가 이런 것일까요?

 

 

그런데 더 위험한 것은 소위 개혁이라는 것을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많은 이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여러 가지 악습을 제거함으로써 참된 교회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이들은 현대 교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봉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그렇게 해서 바람직하고 민주적인 교회를 만듦으로써 마치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참된 교회가 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도 인간의 이념과 사상에 의해서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바람직한 모습에 도취되어 그런 교회에 출석함으로써 자신이 바른 신자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도덕과 선에 가려서 인간의 참된 본질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의도에 의해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연 예수님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야 교회와 교회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분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예수님에 의해서만 세워질 수 있다면 사람이 원하고 의도하는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부터가 이미 잘못된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만이 교회를 세우실 수 있음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어떤 것입니까?’라는 물음이 있어야 하고, 인간이 의도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님을 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하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이 처음 언급되는 것이 이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직접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 말씀을 토대로 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오랜 세월동안 신, 구교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구교, 즉 가톨릭은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한 반석을 베드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의 첫 교황인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에게 천국열쇠라는 권세도 이양되었으며 따라서 가톨릭만이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참된 권세를 가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교(기독교)에서는 반석은 베드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열쇠 또한 베드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은 혈육적인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심으로 되어진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고백하게 하신 것은, 베드로의 신앙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말한 대로 베드로의 고백은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을 반석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한 것은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사도의 고백이 기초가 되어서 그 고백에 따라 예수가 누구신가를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세워진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필요로 하는 교회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혈육적 시각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혈육적인 시각에서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각기 자신에게 필요한 예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예수를 얘기하게 됩니다. 그래야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필요로 하여 하나님이 세우시는 교회가 아니라, 혈육에 의해서 세워지는 단지 기독교라는 이름만 붙어 있는 종교 단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구의 교회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소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이 책임지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교회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누구든 교회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긴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교회에는 오직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 일치된 예수님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예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 이끌려 가는 관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를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는 죽음의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고, 죽음이라는 것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단의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죽는다는 것이 목숨이 끊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패도 곧 자신의 죽음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는 세상은 성공하고 살기 위해서, 또한 자신의 영광과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목사는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교회를 부흥시켜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그것을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삼고자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자리하신 예수님의 교회와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알게 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라면 교회가 부흥되지 못한 것을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은석교회의 문을 닫게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면 반드시 번성하고 부흥되어야 한다는 것은 혈육에 의한 욕심이고 고집일 뿐입니다. 이러한 욕심이 자리하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 천국 열쇠 ◎

 

 

이제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9절)고 말씀합니다. 물론 베드로 개인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가 교황에게 계속 계승되었다는 가톨릭의 주장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풀이한 잘못된 해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것이라면 23절에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 열쇠를 주셔 놓고 이어서 사탄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열쇠를 주셔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다고 말하는 것은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것 또한 혈육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임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행함에 따라 복이 주어지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부터 혈육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데 어떻게 혈육에 의해서 나오는 행함으로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을 실천하는 자신들의 행함이 마치 천국 열쇠가 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또한 율법을 실천하는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백성들이고 하나님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연결 중심에 자신들의 의지에 의한 실천과 행함을 두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열심과 행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것이 곧 복을 받는 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을 때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것이 음부의 권세에 지배를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항상 자신을 보면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자 하는 것 자체가 음부의 권세에 지배를 받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바라볼수록 자신의 죽음, 실패, 무너짐 등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살기 위한 길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천국 열쇠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 의해서 신자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인다는 것은 나의 뜻과 하늘의 뜻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신 바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그 뜻에 일치된 길을 소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것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하나님은 신자가 구하는 것을 이루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반석 위에 세우고자 하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이 알고 있고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놀라운 그리스도의 몸이고 공동체입니다. 교인 수가 적고 재정이 적다는 것 때문에 아쉬워하고 실망해도 될 그런 혈육적 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중심이 되고, 그 마음에 예수님이 자리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혈육에서는 나올 수 없는 믿음으로 교회됨이 증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능력과 도덕으로 교회됨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인간이 세우는 교회는 교회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그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천국 열쇠가 있다면 그것으로 뭘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복을 구하는 용도로 사용하겠습니까? 천국 열쇠에는 그런 용도도 없거니와 만약 그런 의도가 있다면 그에게는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 열쇠가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천국의 문을 열고 비참함에 있고 죽어가는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로 부름 받은 신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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