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5.22 17:15

(138강) 부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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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23-33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222333.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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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설교>

 

◉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의 세계 ◉

 

하나님의 세계와 이 세상은 그 어떤 연계성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관계와 가치관과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혼란과 모순에 부딪히게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두개인들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칠 것인가 바치지 말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 날에 다시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부활에 대해 질문을 한 이유 역시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 자체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부활과 함께 영혼 불멸이나 천사의 존재 또한 믿지 않았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확인할 수도 없으며 논리적으로도 설명이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격을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세상의 반응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또한 보이지 않고 확인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냉소로 일관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성경이 언급하는 천국과 지옥의 문제, 부활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 차가운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세상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 그들이 말하는 ‘예수 정신’일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 정신을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기독교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죽으심 또한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문제든, 영적인 문제든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며 과학적으로 증거될 수 있는 것이라면 불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도 얼마든지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믿음이 필히 요구되는 것은 말씀의 세계나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이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신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문제는 이성과 논리로 접근하게 되면 모순과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구약에 명시된 시형제 결혼법을 문제 삼아 질문을 하였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몸에 장애가 있거나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고, 어린아이로 죽었다면 어린아이 몸 그대로 부활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또한 육신의 외모 그대로 부활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계십니까? 만약 사두개인들처럼 부활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을 문제 삼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 성경을 알지 못한 자의 오해 ◉

 

 

사두개인이 질문한 것은 말한 대로 시형제 결혼법으로 인한 부활의 모순입니다. 시형제 결혼법은 형이 결혼하여 후손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형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취하였다면 나중에 부활하였을 때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사도개인들의 문제 제기는 지극히 타당합니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결혼하였을 때 부활한다면 과연 누구의 아내로 살아야 하느냐는 의문은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한 억지 주장이라기보다는 세상의 상식과 논리에 어긋나지 않은 합리적인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 사회는 시형제 결혼법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사도개인이 제기하는 문제처럼 한 여자가 일곱 형제와 결혼을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음을 가정한다면 부활과 이 문제는 모순된 점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두개인의 문제 제기에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29-32)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의 답은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 오해하였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인간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부활의 문제뿐이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인간의 모든 문제가 오해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문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구원 등 모든 문제를 오해로 시작합니다. 오해로 시작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두개인과 같은 문제 제기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해의 원인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사두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대 교회 역시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오해에 파 묻혀서 말씀의 세계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해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으로 해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육체의 부활로 오해했습니다. 때문에 육체의 관계가 부활의 세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세계는 육체의 관계와도 무관한 세계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부활의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즉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 부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육체로 살아가는 모든 관계와 질서와 삶의 방식을 초월한 전혀 새로운 세계입니다. 육신과 상관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육신으로 관계한 모든 것은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집가고 장가감으로써 후손을 이어가는 방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부활에 대해 오해를 한 것입니다.

 

 

◉ 그들은 무엇을 몰랐는가? ◉

 

 

사두개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성경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잘 안다고 해도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미를 모른다면 그는 성경을 모른 사람인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맹점이 이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하고 성경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도 문제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하여 성경을 접합니다. 나의 복과 나의 구원에 중점을 두고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내 중심으로 사는 것 밖에 모르는 우리를 간섭하시고 다스리셔서 영적인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중심으로 사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의 세계로 끌어가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죽음이 없는 산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또한 자기 육체와 구원을 위한 능력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에 매어 있기 때문에 부활의 세계에서의 ‘나’의 문제에만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 문제와 같은 의문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구약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라는 뜻이 됩니다. 이삭과 야곱 또한 동일합니다. 그들은 분명 육신으로는 죽은 자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니라 산자입니다. 어떻게 죽은 자를 가지고 산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육신이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나는 방식의 부활을 생각합니다. 나사로처럼 무덤에 장사 되었다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로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활은 육신이 생존해 있는 현재와는 상관이 없는 부활일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이 죽어야 가능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죽음 이후에 일어날 먼 나중의 일로 밀쳐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미 산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육신의 죽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단지 육신을 벗는 것일 뿐,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부활의 세계에 속한 자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현실이 되어야 할 부활의 세계 ◉

 

 

부활은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또한 육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일뿐입니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보이는 것만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부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확실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깊이로 들어가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를 부활의 세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경을 안다면 관심은 부활의 세계로 향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른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삶이 잘되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복을 받는다.’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죽은 자들의 세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의 세계가 지금 여러분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삶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보이는 것들을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즉 세상에 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궁핍해도 부활의 세계를 향한 믿음이 있기에 부활의 능력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알아가게 되면 그 심령은 점차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소망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 소망이 살아있는 그 사람이야 말로 부활의 생명이 함께 한 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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