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6.21 20:02

(92강) 그물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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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47-50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3475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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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47-50)

 

<설교>

 

◎ 유대인들의 구별의식 ◎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들어 보면 아마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던 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가르침 받고 믿어왔던 천국관이 있고, 메시야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이나 메시아에 대한 내용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중심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구별의식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철저하게 구별 하셨으며, 그 구별을 지키는 것이 곧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심판을 받아야 할 더러운 자였을 뿐이고, 메시야가 오시면 즉각적으로 심판이 시행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이기에 이방인과 함께 하는 천국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이러한 유대교적 사고방식은 제자들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베드로가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내려오는 환상을 봅니다. 그 그릇에는 율법에 더러운 것으로 규정된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소리가 들입니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면서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이 환상이 무슨 뜻인 줄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만나고 고넬료를 만나게 된 과정들을 통해서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알고 십자가를 믿는 제자로 복음을 전하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유대교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한 당시의 베드로를 생각해 본다면 유대인들의 구별 의식은 참으로 강했고 뿌리가 깊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에서도 유대인들의 구별의식에 전혀 맞지 않은 천국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천국은 바로 이것입니다. 좋은 씨만 뿌려져서 좋은 곡식만 자라난 상태가 그들의 천국관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라지를 등장시키고, 가라지를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십니다. 물론 곡식까지 뽑을 것을 염려해서 함께 두라고 하셨지만, 유대인들에게 곡식과 가라지는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에 혼동될 이유가 없었고, 따라서 당장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좋은 곡식만 남겨 두는 것이 그들이 생각한 천국이었습니다. 따라서 가라지 비유는 유대인들에게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천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제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도 유대교적 사고방식이 뿌리 깊이 있었기 때문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13장에 등장하는 여러 비유들 가운데 유독 가라지 비유에 대해서만 설명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른 비유는 모두 이해를 했는데, 가라지 비유만 이해를 못해서 설명을 부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비유보다도 곡식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는 가라지 비유가 구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설명을 요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세상의 끝 ◎

 

오늘 본문의 비유도 가라지 비유와 비슷합니다. 주인의 뜻에 의해서 좋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추수 때에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처럼, 그물에 온갖 고기가 가득하지만 그물을 물가로 끌어내게 되면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못된 고기는 버린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내어 풀무불에 집어넣는 심판으로 말씀합니다.

 

 

추수 때가 되기 전에 밭에는 좋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처럼, 그물에 온갖 고기가 함께 섞여 있는 상태가 비슷하고, 추수 때에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처럼 그물을 끌어내어 못된 고기를 버린다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의미의 비유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는 말씀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 다릅니다. 가라지 비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는 좋은 곡식과 함께 가라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가라지를 뽑아 버릴 권세가 종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뽑아 불사르는 것은, 추수 때에 천사들에 의해서 되어질 일입니다.

 

 

가라지 비유에 비해서 그물 비유는 그물에 못된 고기가 있다는 것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중점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에 못된 고기도 함께 잡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못된 고기는 그물을 물 가로 끌어내면 자연히 골라내어 버려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물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은 골라내는 심판의 과정을 끝으로 누가 천국 백성인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물에 좋은 고기와 함께 못된 고기도 들어있지만 그물이 바다 속에 쳐져 있을 때에는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물을 물가로 끄집어내게 되면 못된 고기는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못된 것을 내어 버리는 심판을 끝으로 천국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는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의심 없이 굳게 믿고 있는 유대인들의 신앙을 뿌리째 흔들어 버리는 엄청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믿고 의심치 않았던 것은,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고, 율법을 받은 민족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실천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들 외에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사람들이 없고, 율법대로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가 봐도 자신들 외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한 천국은 그처럼 자신들의 의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예수님에 의해서 주도되는 선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지고 천국은 바로 그들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외적인 종교 생활을 기준으로 한다면 유대인은 분명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지만 천국 백성은 종교 생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의 은혜에 마음을 두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의 선택 행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물에 갇힌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해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자기 의가 아닌 예수님의 은혜에 마음을 두고 사는 그가 좋은 고기로 드러날 것이고, 반대로 예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의에 마음을 두는 그가 못된 고기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은 못된 고기가 좋은 고기로 여김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판은 필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구분하는 심판이 있어야 세상이 어떤 착각에 빠져 살았으며, 부지런한 종교 행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고,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자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쳐 놓으신 그물 안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물을 물가로 끄집어내게 되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 작업에 따라 그릇에 담길 자와 버릴 자로 드러나게 됩니다.

 

 

인간이 세상을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물에 들어 있는 고기일 뿐입니다. 자신이 의도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마음껏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물 안에서 허용된 자유일 뿐입니다. 즉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산다고 해도 그물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망각하면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잊게 되고, 결국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기준을 둔 삶에 매진하게 될 것입니다.

 

 

◎ 신자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 ◎

 

세상에 임한 천국은 아주 작아서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큰 나무로 자랄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큽니다. 천국은 세상 속에서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능력으로 숨어 있는 것처럼 천국은 신자를 부풀게 하는 능력으로 함께 합니다. 그래서 신자를 천국이 임해 있다는 증거물로 나타나게 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천국으로 오신 예수님이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활동하실 수밖에 없는 것은 천국은 인간의 노력이나 힘과는 무관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요건을 인간이 스스로 생산하여 갖출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택한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활동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준이 되는 요건은 예수님에 의해서 주어질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요건을 하찮게 여기고 항상 나를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활동하시면서 천국이 무엇이며, 인간이 생각하는 천국기준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신자는 예수님을 보배로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소유 전부를 판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보배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이 함께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얻고, 예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자로 살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보배로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기준에서 가치 있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고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자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의로움은, 예전에 자신이 율법에 갇혀서 행했던 의로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에 의한 자신의 의가 십자가와 원수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하늘에 속한 것의 가치를 아는 신자만이 자신의 모든 소유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기뻐하고 배부름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환경도 외적 조건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늘의 것의 가치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것의 가치를 안다면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귀한 보배가 됨을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천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앎으로써 천국을 보게 되고 천국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유대인들처럼 더 이상 율법에 메일 이유가 없습니다. 율법을 실천하여 자기 의를 쌓아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아들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배로 믿는 신자 역시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세상의 가치 있는 것을 얻고자 하고, 그것을 힘으로 여기는 사람도 등장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나라를 자기 백성에게 선물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나라의 가치를 아는 그가 복된 자입니다. 그 나라의 가치를 아는 것으로 신자는 이미 모든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여전히 예수님의 선물의 가치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보다 세상의 것에 메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로 낙심하지 않으며 부활의 능력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천국을 드러내는 증거물이 되도록 우리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해 때로 손해 보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신자인 여러분께 남은 것은 우리의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오래 참음으로 말씀의 봉사자의 자리에서 증거자로서의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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