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9.06 08:31

(103강) 표적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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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4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6010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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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설교>

 

◎ 표적 보이기를 청함 ◎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신기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분으로 오셨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기적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적 자체에 관심을 둡니다. 그리고 기적을 비교하게 됩니다. 가령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는 것과 오병이어의 기적 중 어느 것이 더 세냐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은 것과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 그리고 칠병이어의 기적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기적을 그런 식으로 비교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한 것입니다. 이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청한 것은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메시아라는 분명한 증거를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는 그동안 행하신 기적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미 예수님은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소경, 벙어리, 귀머거리 등 장애인들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남자만 4천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가 남는 기적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를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기적을 많이 체험한 나라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은 세상에는 없는 만나를 하늘에서 내리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수는 60만 명이었고 만나가 내린 기간은 자그마치 40년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오병이어나 칠병이어 기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떡이 만나로 변한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일하지 않고도 평생 먹을 수 있게 하는 기적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들은 오병이어나 칠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들었으면서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오병이어나 칠병이어 기적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 모였던 무리들이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먹은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경험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다거나,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한다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군 천사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니 하늘에서 천군천사가 내려오게 하는 그런 것을 표적으로 요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이 표적을 보여줌으로 자신들로 하여금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믿도록 해줄 것을 기대하고 표적을 요구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표적을 보일 수 없을 것으로 자신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인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예수님에게로 향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예수님의 기적을 무시하기 위해서 표적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시험 ◎

 

 

표적 보이기를 청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예수님이 이미 보여주신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이미 표적을 보이셨다는 뜻이 됩니다. 표적을 보이셨지만 그 표적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표적을 표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표적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다른 것을 증거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합니다.

 

 

1절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표적을 청하는 의도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들어주고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신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표적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기대가 있습니다. ‘메시아라면 이래야 한다’는 자기들이 정한 메시아 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예수님의 행보는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 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무리 신기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능력 있고 강력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장애인이나 병자를 가까이 하고 그들을 고쳐주는 메시아가 아니라 로마 군대를 쳐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메시아라는 표적이 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의도로 자신이 원하는 표적을 보일 것을 청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 시대는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이 생각하고 인정할만한 표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신이 살아있다고 확인하고 인정할만한 놀라운 기적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표적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다만 그 표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에 표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표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은 자기 입맛에 맞는 표적다운 표적의 기준을 따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은 표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할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다른 사람과는 다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병이 들어도 죽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는 신자라면 병이 낫는 식으로 함께 하심이 다르게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항상 이런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함께 하심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요구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항상 함께 하십니다. 다만 다른 것을 기대하는 우리가 예수님이 나타내시는 표적을 표적으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함께 하심 또한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실감하며 살아가십니까? 막연하게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적을 보면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살게 하고 계심을 실감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실감이 없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을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눈앞에서 강이나 바다가 갈라지는 일이 있으면 실감할 수 있겠습니까? 꿈을 꾸고 복권을 샀는데 1등에 당첨이 되면 믿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강이 갈라지고 바다가 갈라져도 신기한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복권에 당첨돼도 운이 좋았기 때문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그런 표적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할 수도 없고,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잠시 동안의 호기심으로 끝날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아무리 놀라운 기적이라고 해도 매일 같이 보게 된다면 결국 시들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초자연적인 기적이라고 해도 표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요나의 표적 ◎

 

 

표적을 청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떤 표적을 구하는지를 잘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보여주는 참된 표적이 되지 못하고, 다만 요나의 표적만이 참된 표적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면 믿을 것이라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요나의 표적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지를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표적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요나의 표적으로 인해서 누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속하지 않았는가가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나의 표적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고 예수님께 마음을 두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은 따로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장차 이루어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으로 인해서 새롭게 창조되어질 새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부인하는 말씀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면, 요나의 표적으로도 예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은 다른 그 어떤 표적으로도 예수님을 깨닫고 믿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입니다. 설사 다른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요나의 표적에 나타난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요나의 표적이란 무엇일까요? 요나의 표적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이실 참된 표적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뜻이 됩니다. 맞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말고 참된 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온전히 증거하는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요나의 표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요나가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고 요나가 그러한 자신을 스올에 내려간 것으로 말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도 연관은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표적인 단지 물고기 뱃속에 삼일동안 갇힌 것이라면, 요나의 표적은 그러한 체험이 없는 우리와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행한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경험하게 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경험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을 스올의 뱃속으로 표현합니다. 스올은 죽은 자의 세계를 뜻합니다. 즉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갇힌 것을 죽음의 세계에 갇힌 것으로 여겼고,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요나를 인도하셔서 죽음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것은 자신이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은 자임을 알 때 인간은 당당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이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결과였음을 보게 되기 때문에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표적이 유일한 참된 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죽은 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그러한 경험을 한 자신을 높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예수를 믿게 할 만한 다른 표적을 구한다면 그는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보다는 눈에 보이는 표적을 믿음의 증거로 삼고자 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속한 자일뿐입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하게 하신 것처럼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죽은 자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며 죽은 자일뿐이다’는 것을 알게 하는 현장으로 우리를 끌어가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보게 하고 더러움을 보게 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나름대로 깨끗하다고 여겼던 내가 말씀 앞에 세워지고 보니 속에서 끊임없이 더러움을 토해내고 있는 죽은 자였을 뿐임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덮으시고 깨끗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한다는 것으로 감격해 하고 기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예수님만이 자신을 영원히 배부르게 할 떡이 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배부름을 얻고자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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