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4.12 23:18

(82강) 선이 내는 말

조회 수 559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 12:33-37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2333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3-37)

 

 

<설교>

◎ 옳은 일도 옳다고 인정 안하는 인간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까지 싫어진다고 합니다. 말이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조건 싫은 것입니다. 옳은 말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옳은 말을 하는 그가 싫고, 행동 역시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옳은 말인데도 거부하고, 옳은 행동인데도 틀렸다며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인간의 이러한 모습은 정치인에게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여당과 야당은 마치 서로 반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안에 대해 반대합니다. 저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의 안에 대해 인정을 하고 칭찬하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내 놓은 안이 어떻든 상관없이 반대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는 것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의 반응이 그와 같습니다.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얻어 한 것으로 비판을 합니다. 귀신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말에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이 하신 일을 비판함으로써 예수님을 군중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27절의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는 말씀을 보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바리새인의 아들들도 행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아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도 귀신의 왕의 능력을 힘입어 한 일로 비판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한 일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 또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안되는 일임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일을 행하십니다. 더군다나 듣지 못한 사람을 듣게 하고 말하지 못한 사람을 말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인정을 하고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마음을 두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오직 자신들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하나하나는 껄끄러운 내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과의 수많은 대화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반박하지를 못했습니다. 항상 할 말을 잃고 물러가야 했고, 속으로 분노하며 죽이려는 악한 마음을 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을 하지 못한 것은 그 말씀에 틀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말씀은 인정했어야 합니다. 옳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거부해도 예수님이 하신 일은 거부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힘입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9장에 보면 예수님이 중풍 병자를 고치셨을 때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9장에도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일이 있는데 무리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며 놀라는데 바리새인들은 그 때에도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쫓아낸 것으로 비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한 일을 본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하늘로서 온 권능이 아니면 안되는 것으로 인정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밀쳐내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까지 거부하고 귀신의 능력이라고 비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거역하고 모독한 것이 됩니다.

 

 

◎ 악은 악을 내어 놓는다

예수님께서 ‘열매로 나무를 안다’는 말씀을 합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열매는 성령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사람을 고치신 일입니다. 바리새인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성령의 권능으로 인정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예수님이 싫다고 해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 만큼은 성령의 권능으로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평소에는 성령의 권능으로 여겼던 일을 예수님이 행했다는 것 때문에 귀신의 왕을 힘입어 한 것으로 매도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열매는 인정했으면서도 나무는 좋지 않다고 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34,35절)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악한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악하니 선한 말을 할 수 없고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내어 놓은 것으로 말씀합니다. 결국 바리새인의 말에 의해서 그들의 마음에 가득한 것은 악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말하고, 율법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이 그들 마음에 선이 있어서 선에 의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 가득한 악을 가리기 위한 가장된 말이었을 뿐입니다. 만약 그들의 마음에 선이 있고, 선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말이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성령의 권능으로 인정을 하는 말을 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아는 바대로 행하는 것이 됩니다.

 

 

고전 12: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는 안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는 성령의 강권하심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가 그러한 고백을 한다면 그 사람을 보기 전에 먼저 그러한 고백이 성령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그같은 고백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내가 너는 미워하지만 네가 한 말은 성령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고백이니 성령이 네게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일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선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싫은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그 말까지 부인해 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 말도 다 거짓말일거야. 겉으로만 믿는 척 할 뿐이야’라는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이것이 악한 것이고 이 악은 마음에 악이 가득하기에 나오는 열매인 것입니다.

 

 

제가 성경 말씀을 전했을 때 자주 들었던 반박 가운데 하나가 ‘당신 말은 맞지만 그렇게 하면 교회가 안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성경에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말 대로 하면 교회가 부흥이 안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는 말이라면 받아들이고 그 말대로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의 속에는 진리도 예수님도 없고 오직 교회만 가득하다는 결론이 됩니다. 때문에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런 사람들에게 선한 것은 진리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가득한 악이고, 악은 ‘당신 말은 맞지만 그렇게 하면 교회가 안된다’는 악을 내어 놓을 뿐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도 악으로 가득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신 예수님의 일을 보고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만 자기들이 싫어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무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싫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설사 초등학생이 하는 말이라고 해도, 그 말이 복음이라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를 세워서 복음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선이 내어 놓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싫은 사람의 말은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가 아무리 진리를 말하고 복음을 말해도 싫은 사람의 말이기에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트집 잡을 궁리부터 합니다. 이것이 악한 것입니다.

 

 

◎ 선한 일과 악한 일

36,37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한 말이 곧 나에 대한 심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안에서 일어날 참된 생명의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어둠이 물러가는 빛의 사건입니다. 그것을 귀신이 쫓겨 가고 말 못한 사람이 말하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듣게 되는 것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생명의 사건이고 하나님의 선하신 열매고 권능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들은 독사의 자식으로 악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악을 내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귀신의 일로 모독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보고도 주를 시인하지 않는 그 말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선한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악한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또한 예수님이 부활의 영으로써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선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현장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선하신 일이 악한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항상 주의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은사를 받은 사람이 병 고치는 일을 했을 때 그 일을 시인하고 하지 않는 문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에 누군가가 병을 고치는 일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예수님이 행한 일과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썩어질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것으로 증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것은 성령의 선한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어둠에 갇혀 있는 우리를 구출하시어 빛을 보게 하시고 빛에 대해 증거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일입니다.

 

 

이러한 선한 일이 마음에 가득한 신자라면 선은 그를 통해서 선한 것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삶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감사와 찬양이 계속되는 것이야 말로 선한 것이고, 그것으로 그의 마음은 선이 가득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악한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자를 고통으로 밀어 넣으면서 ‘믿음은 결국 헛된 것이다’는 의심과 갈등으로 밀어 넣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삶만을 생각한다면 믿음은 아무런 힘도 도움도 못 된다는 흔들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따라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는 우리를 세상의 것으로 풍요로운 삶을 주기 위해 생명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을 안겨주기 위해 오셨고 그 일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하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는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음으로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은 삶에 대한 세상의 시각과 원칙을 가지고 신자를 판단하고 조롱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에게는 세상과 다른 삶의 시각과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그리스도가 함께 하지 않은 것은 곧 어둠이고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호화로운 인생을 누렸다고 해도 부활의 주가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죽음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사람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고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생명의 영이 함께 한 자로서 삶의 질이 어떻든 상관없이 다만 생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일입니다. 선한 일은 인간이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가득한 선이 내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선이 가득한 신자는 고난과 어려움에서도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 부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능히 감사함으로써 주님께 속한 자로 살고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있어야 하는 선한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이 듣고자 하지 않은 것을 들으며,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면서 세상과는 다른 길을 살아온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님의 오심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믿지 않고, 다만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기를 힘쓰고, 예수님을 알기를 힘쓰면서 참된 길을 가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았음이 주님이 오셨을 때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당장 눈 에 보이는 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늘의 생명에 속했다는 그 하나만으로 이미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일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06
2010.05.24 431 골로새서 (22강) 신자로 사는 것 신윤식 5623
2010.09.20 430 마태복음 (105강)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신윤식 5621
2010.06.28 429 마태복음 (93강) 천국의 제자 신윤식 5621
2012.06.24 428 누가복음 (16강) 요셉의 아들 신윤식 5615
2010.08.09 427 마태복음 (99강) 소경의 인도 신윤식 5610
2010.07.19 426 마태복음 (96강) 오병이어 신윤식 5609
2010.04.12 » 마태복음 (82강) 선이 내는 말 신윤식 5595
2011.02.06 424 마태복음 (124강) 천국과 부자 신윤식 5585
2011.01.30 423 마태복음 (123강) 부자의 근심 신윤식 5584
2011.01.02 422 마태복음 (119강) 불쌍히 여김 신윤식 5584
2010.08.23 421 마태복음 (101강) 영광을 돌림 신윤식 5578
2012.09.23 420 누가복음 (29강) 백부장의 믿음 신윤식 5576
2010.11.01 419 마태복음 (111강) 이르지 말라 신윤식 5564
2011.04.10 418 마태복음 (133강) 권위의 문제 신윤식 5556
2012.05.06 417 누가복음 (9강) 어린 예수님 신윤식 5555
2010.12.19 416 마태복음 (117강) 교회와 죄 신윤식 5553
2012.07.22 415 누가복음 (20강) 나병 환자와 예수님 신윤식 5551
2010.09.13 414 데살로니가전서 (14강) 예수 안에서 자는 자 신윤식 5549
2011.10.30 413 마태복음 (157강) 죽으심에 대한 반응 신윤식 5545
2010.07.05 412 마태복음 (94강) 고향 사람의 배척 신윤식 553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6 Nex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