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12.12 16:49

(116강) 천국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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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8-14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808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설교>

 

◎ 어린아이와 천국 ◎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은 매우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자들과 같은 질문만 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즉 제자들처럼 ‘천국에서 누가 크냐’라는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입니다.

 

 

사실 질문 자체만으로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큰 자로 높임 받기 때문에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라고 묻는 질문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보셨던 것이고, 천국은 바로 그러한 속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인간됨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큰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라는 말씀은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아니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인간됨에는 현대 교회가 중요한 신앙행위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설사 바리새인을 무색하게 할 만한 열심이 있다고 해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됨을 자기를 낮추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자기를 낮춘다고 할 때 여러분 나름대로 이해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낮춤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은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어떻게 자기를 낮춥니까? 아이에게는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자기를 낮추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만 있는 특성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특성은 자신의 노력과 열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일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아이가 부모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아이들 세계에도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의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부모 덕분에 주어지는 혜택일 뿐이지 자기 노력의 결과물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에게 없는 것이 자신에게 있고 다른 아이보다 잘산다는 것을 자랑할 수는 있어도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수고해서 얻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낮춤이란 일한 것이 전혀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고 살아간다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천국인가 지옥인가 ◎

 

 

제자들의 질문에서 예수님이 문제 삼으신 것은, 제자들의 인간됨으로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자를 영접하기는커녕 오히려 실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심각성을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8,9절)는 말씀으로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정상적인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이 낫습니까? 신자라면 누구나 전자를 원할 것입니까? 그 말은 천국을 위해서라면 육신의 한 지체를 버리는 것도 아깝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육신보다는 천국 문제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겠지요.

 

 

이러한 신자는 육신보다는 천국을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하지만 천국보다 육신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면 그는 자연히 육신을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자신보다 작은 자를 업신여기는 인간됨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 천사와 작은 자 ◎

 

 

10절을 보면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작은 자를 그냥 작은 자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자에게는 천사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대면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천사가 작은 자에게 함께 하고 그를 지키고 보호하고 있다면 작은 자는 더 이상 작은 자가 아니라 존귀한 존재입니다.

 

 

가진 사람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물인 자기 것으로 자랑합니다. 이것이 육적인 사람이고, 이런 사람의 눈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신보다 능력이 없는 자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일한 것이 없이 주어진 것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 앞에서 우리 모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죄 용서와 구원을 얻은 존재일 뿐입니다. 항상 죄를 즐기고 죄에 끌려가는 우리를 성령을 보내셔서 다스리시고, 천사가 함께 하게 하셔서 돌보심으로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그런 존재일 뿐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관계에는 큰 자 작은 자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사의 보호를 받고 있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작은 자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라고 해도 ‘나보다 작다’라는 의식이 없이 함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지체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비록 어린아이라고 해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의미 ◎

 

 

12,13절을 보면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전도를 독려하기 위한 내용으로 미화하여 선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자가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는 심정으로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일단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행동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한 마리의 양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목자에게는 모두가 귀한 양입니다. 그러므로 더 귀하고 덜 귀하다는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내 버려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선 것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양을 귀히 여기는 사랑을 말하고자 한다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버려둘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우리에 넣어두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것이 더 합리적이고 양을 사랑하는 모습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백 마리의 양 가운데 한 마리의 양이 지니고 있는 실제적 가치는 별로 크지 않습니다. 즉 효율성을 따진다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때문에 아흔아홉 마리를 위험에 방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을 위해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일은 잠시 미루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자에게 한 마리의 양은 단지 가치를 따져 계산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양이라는 관계를 완벽하게 해주었습니다. 만약 그 한 마리가 없다면 목자의 양은 백 마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즉 한 마리로 인해 백 마리의 의미가 충족된다는 점에서 한 마리는 참으로 존귀한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가치로 따져 평가합니다.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는 가로 따지며 필요하지 않는 존재는 가차 없이 도태합니다. 없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구조 안에서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이 오늘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5천만 명인데 한 사람이 죽고 4999만 명이 된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4999만 명으로도 대한민국은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세상의 계산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갈 자를 모집하고 자격시험을 쳐서 합격 여부를 따지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택한 그들을 부르셔서 오직 은혜로 구원하시는 방식으로 천국을 채우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이 채우기로 정하신 그 수가 채워지는 것이 곧 충만이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를 잃은 상태에서 단지 아흔아홉으로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아흔아홉이 있다고 해도 하나가 없음으로 인해서 천국은 충만을 잃은 것이 됩니다. 그래서 천국은 숫자를 따지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별 볼일 없는 너 하나는 없어도 된다’는 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때문에 작은 자 하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천국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천국정신과도 상관이 없는 것이기에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 교회와 천국 정신 ◎

 

 

교회는 천국 정신으로 모이고 천국 정신이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작은 자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라는 윤리적 문제가 아닙니다. 비록 작은 자라고 해도 그 하나가 없음으로 인해서 내가 온전하게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관계입니다.

 

 

우린 때로 어떤 사람에 대한 불쾌한 마음으로 인해서 그가 떠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진다면 그런 마음은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천국에서 한 사람이 단지 숫자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완전케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자라고 해도 그가 있음으로 천국이 완벽히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아는 것이 천국 정신입니다.

 

 

여러분에게 천국 정신이 살아있는 그것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천국 정신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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